연극 ‘갇힌 사람들-끝나지 않은 노래’ 배우들이 24일 태안문화원 아트홀에서 리허설하고 있다. 이 연극은 한국전쟁 당시 태안반도에서 죽임을 당한 1천여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고 화해와 상생을 메시지를 전한다. 태안문화예술곳간 우리동네 제공
한국전쟁 개전 초기인 1950~1951년 사이 민간인 1000여명이 학살당한 충남 태안에서 지역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화합과 상생을 염원하는 연극을 선보인다.
태안문화예술곳간 우리동네는 25일 저녁 7시와 26일 오후 3시에 태안문화원 아트홀에서 연극 ‘갇힌 사람들-끝나지 않은 노래’(연출·각색 가덕현)의 막을 올린다. 정낙추 작가(전 태안문화원장)의 단편 ‘죄인’을 극화한 이 연극은 태안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죽음을 앞둔 종순이 한국전쟁기에 겪은 가슴 아픈 생애를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연극은 종순의 삶을 시집가기 전, 남편 학살, 임종 전 등 세부문으로 나눠 3명의 종순이 무대에 오른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결혼한 종순은 출산하고 평범한 삶을 살지만 전쟁은 모든 걸 바꾼다. 보도연맹원인 남편이 죽임을 당한 뒤 종순도 죽을 처지에 놓이는데 동네 주정뱅이가 살려준다. 빨갱이로 낙인찍힌 종순은 주정뱅이에게 추행당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하고 그와 같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산다.
전쟁과 이념은 평범한 종순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고 죄인으로 만든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의 질곡을 견디며 살아온 종순의 비극적인 삶은 지금도 진행형인 남과 북의 분단,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이 전쟁이 완전히 끝나는 날 눈을 감을 거예유.” 종순은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며 되뇐다. 종순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 사회 모두의 바람이 되고 현실로 이뤄지는 날 비로소 사상의 억압과 전쟁의 공포에 갇힌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태안의 비극은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의 오랜 조사를 통해 발굴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태안’(감독 구자완)이 제작됐다.
가덕현 연출자는 이달 말 퇴직을 앞둔 교사다. 30여년 동안 태안에서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면서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 뮤지컬 등을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은 기반과 공연 여건이 취약한 태안에서 태안사람들이 태안의 아픔을 보여주고 치유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 태안의 문화예술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평수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은 “예술은 자위나 독백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공동체의 것이 된다. 이 연극은 태안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진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석희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장은 “73년 전 경인난리(한국전쟁)때 태안 인구의 5%가 넘는 1100여명이 국가공권력에 희생됐다. 그때 죽은 이들이 묻힌 땅에서 역사의 진실을 찾는 일은 우리의 몫”이라며 “상처받은 사람만이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 이 연극이 태안의 변화를 견인하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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