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유골들은 손목이 묶인 채 켜켜이 스러져 백골이 됐어요.”
맹억호(75)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은 28일 오전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옛 방공호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관련 유해발굴 현장에서 “참담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개전 초기인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부역혐의자로 몰려 희생된 이들이 집단 매장된 곳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7일 개토제를 지내고 이날까지 1차 발굴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유해발굴은 이곳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유해수습에 앞서 발굴 현장을 공개하고 73년 전 당시 집단학살 정황이 고스란히 남은 유골 최소 40구와 유품들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유골은 20~40대의 건장한 남성들로 폭 3m, 길이 14m의 방공호를 따라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자세로 발굴됐다. 이들의 손목은 군용 전화선인 삐삐선으로 감겨 있었고 학살 도구로 보이는 에이(A)1 소총 탄피 57개와 탄두 3개, 카빈총 탄피 15개, 일본 99식 소총 탄피 등도 발견됐다. 발굴단은 단추, 벨트, 신발 39개 등 희생자들의 유품도 회수했다.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한국전쟁기 부역혐의 희생자들로 추정되는 유골이 켜켜이 쌓인 채 발굴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발굴을 맡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이곳의 희생자들은 신발을 신고 있고 단추 가운데 대학 글자가 있는 등 고학력, 간부급으로 추정된다. 얼마나 쏴 댔는지 유골은 40여명 정도인데 탄피는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박 명예교수는 “다음 달까지 발굴한 유골을 수습하고 인류학적 감식을 통해 나이, 성별, 신체특징, 사망원인 등을 가려 부역혐의자 희생사건과 연관성을 밝히고 또 다른 아산 부역혐의자 희생사건의 매장지로 알려진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에서 유해발굴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은 아산시와 아산유족회는 지난해 5월 이곳에서 시굴을 해 성인의 허벅지뼈 등 유골 일부와 탄피 등을 발굴하고 진실화해위에 유해발굴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목격자, 관계인 등을 조사해 1950년 10월4일 온양경찰서가 정상화된 뒤 군·경과 우익단체가 밤마다 좌익부역 혐의 관련자와 가족 등 40~50명씩 성재산과 온양천변에서 학살했고, 1·4후퇴 시기인 51년 1월에도 좌익부역 혐의 관련자와 가족들에게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고 모이게 한 뒤 수백명을 집단학살했다고 발표했다.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부역혐의 희생자 유골들, 군용통신선인 삐삐선으로 묶여 있고 유골 주변에서 학살 도구로 추정되는 소총 탄피들도 발견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그러나 아산유족회는 이곳에서 성인 남성 유골 40여구만 발견된 점을 들어 추가 발굴을 해 노인과 여성, 청소년, 어린이 등 수백명이 묻힌 장소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억호 회장은 “희생자 발굴을 마무리한 뒤 정부가 공권력에 의한 국민 학살을 사과해야 한다. 또 정부는 이곳을 보존하고 추모와 교육 현장으로 활용해 희생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발굴기관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도 “유족회 주장은 정황상 신뢰도가 높고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훈기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은 “방공호 길이가 1㎞ 정도였다는데 개발 등으로 많이 훼손됐다. 이번 발굴은 남은 방공호의 4분의 1 정도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성인 남성들의 유골만 확인돼 추가 발굴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