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조합원 등이 2일 오전 강원도 춘천 동내면 강원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 양아무개 지대장 사건은 윤석열 정부와 강원경찰청의 노조 탄압 기획 수사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며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건폭몰이’에 항의해 분신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지역 간부 양아무개씨가 2일 끝내 숨진 가운데 노동계에선 건설현장의 ‘조합원 채용 요구’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관행을 외면한 검찰과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결과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계절적 실업을 반복하는 건설 노동자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보장한 정상적인 노조활동까지 불법으로 내몬다는 비판이다.
검경이 ‘건폭몰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건설노조 쪽 간부들에 적용한 핵심 혐의는 ‘조합원 채용 강요’다. 건설노조 쪽이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를 채용할 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을 우선해서 뽑으라고 건설업체에 요구한 게 불법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난 2월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승조 한국노총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연합노련) 위원장은 노조 조합원 채용과 관련해 ‘공동강요’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에 숨진 양 지대장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봐도, 공사업체들이 “손해 발생이 두려워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
반면 노조 쪽은 그동안 건설노조가 건설업체와 합법적인 교섭을 벌여 체결한 단체협약에 근거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단체협약상 ‘채용 차별 금지’ 조항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배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을 ‘채용 강요’로 본다는 것이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서류전형이나 면접과 같은 채용 절차가 있는 다른 산업과 건설산업의 인력 공급 구조는 전혀 다르다”며 “건설현장 채용이 정말 문제라면 고용절차나 규정을 마련하면 되는데 그런 시스템은 마련하지 않은 채 사용자 쪽 이야기만 듣고 강요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직업안정법이 정한 인력공급 주체이기도 해서 조합원 채용 요구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실제 양 지대장의 혐의와 관련해 ‘피해자’로 언급된 공사업체 3곳은 기존에 건설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곳으로 알려졌다. 건설산업의 노사관계는 일반적인 기업별 교섭 체제와 달라서 건설노조가 2년에 한차례 지역별, 업종별 사업자단체와 단체협약을 맺고, 사업자단체에 참여한 업체의 개별 공사현장에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건설노조 간부들이 단협을 체결한 공사업체의 현장을 찾아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노조법이 보장하는 활동이라는 게 건설노조 쪽 입장이다.
이번에 양 지대장 등 건설노조 강원지역 간부 3명에게 적용된 ‘공동 공갈’ 혐의는 노조 쪽이 공사업체를 협박해 ‘노조 전임비’ 등의 형태로 ‘금품 갈취’를 했다는 것이다. 노조 간부들이 건설업체에서 받은 노조 전임비를 형법상 공갈 혐의의 핵심 구성요건인 ‘금전적 이득’으로 본 셈이다.
반면 노조 쪽은 이런 수사기관의 시각은 상용 근로자 중심으로 설계된 타임오프(노조 전임자 유급노동시간) 제도와 건설 노동자가 현장을 수시로 옮겨 다니는 현실을 외면한 주장일 뿐이라고 본다. 양 지대장 등을 법률 대리하는 김진 변호사는 “타임오프제는 계속 고용이 보장되는 상용직 노동자 중심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어서 그대로 적용이 불가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3개월, 6개월 수시로 현장을 옮겨 다니는 건설 노동자들의 특성을 반영해 건설노조와 사업자단체가 노조 전임비와 관련한 근거 규정을 단체협약에 두고 있다”며 “노동부도 이런 전임비 지급 방식에 대해 한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 공갈 혐의를 적용한 것은 수사기관이 노조법에 무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풀타임으로 노조 전임자를 두기 어려운 건설업체 특성상 현장별로 노조 전임자를 두는 게 유리해서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이고 이들이 상급노조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노동부 해석과 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건설현장에서 고용과 관련된 교섭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노조가 교섭 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압력을 가하는 행위를 협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노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