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피의자 2명(왼쪽)과 이들이 나눠준 마약 음료수(오른쪽). 강남경찰서 제공.
강남 대치동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중국에서 범행을 꾸민 일당 2명의 신원을 파악하고 중국 공안에 수사 공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음행사를 가장해 고등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마시게 한 아르바이트생이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활동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 음료를 배포한 아르바이트생 2명도 이 음료를 마신 정황도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10일 한국 국적 20대 이아무개씨와 중국 국적 30대 박아무개씨를 이번 범행을 꾸민 ‘윗선’이자 일당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마약음료 제조책인 길아무개씨는 중국에 있는 친구 이씨의 지시로 마약음료 병과 판촉물, 인형 등을 택배로 건네받아 마약음료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중국으로 출국한 상태이고, 또다른 방식으로 범행 가담 사실이 확인된 박씨 역시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범행을 기획하고, 마약 제조와 전달, 시음회 기획, 중계기(중국 인터넷전화 번호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바꾸는 장치) 설치·운영, 학부모 협박 등을 서로 알지 못하는 여러 사람에게 맡겨 ‘점조직’ 형태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중국에 있는 일당 2명에 대해선 중국 공안에 공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들 2명 역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보고, 이들을 검거한 뒤 배후까지 밝혀낸다는 방침이다.
또 ‘던지기’ 수법을 이용해 국내에서 마약을 공급한 또 다른 용의자 ㄱ씨도 전날 밤 검거했다. 중국 국적인 ㄱ씨는 이 사건과는 다른 혐의로 지난 4일 수원 중부경찰서에 검거된 상태였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관련 증거를 바탕으로 이번 사건의 혐의를 시인 받았다. 아울러 경찰은 ㄱ씨가 중국에 있는 중국 국적의 ㄴ씨 지시를 받아 필로폰을 길씨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국제 공조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마약음료를 전달받고 학생들에게 나눠준 아르바이트생 중 20대 여성 1명이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어, “이번에도 해보지 않겠느냐”며 범행을 제안받았다는 점도 확인했다. 다만 이 아르바이트생은 음료에 마약이 든 것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 아르바이트생 포함 아르바이트생 2명은 마약인지 몰라 이 음료를 마셨고, 그 중 1명에게서 마약류 투약 증상도 일어났다고 한다.
마약제조책인 길씨는 마약음료 총 100병을 제조했고, 이 중 18병이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경찰은 미개봉 상태의 음료 36병을 압수했다. 나머지 44병은 중국에 있는 일당이 아르바이트생에게 폐기하라고 해 버렸다고 한다. 협박전화는 총 7건으로 확인됐다. 협박범이 “1억원을 달라”고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길아무개씨,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씨 등 2명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다. 길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우유에 마약을 섞는 방식으로 마약음료를 제조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전달한 혐의 등을 받는다. 김씨는 중계기를 설치한 혐의 등을 받는다. 마약음료를 건넨 아르바이트생 4명은 경찰에 자수하거나 검거됐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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