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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집중력 높여주는 음료’ 택했나…강남3구 ‘ADHD’ 약물처방 많아

등록 2023-04-08 06:00수정 2023-04-08 21:03

공부하는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공부하는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학원 가는 길목에 정장 빼입은 아저씨들이 에너지드링크라고 하면서 음료를 나눠 준 적도 있어요. 길거리에서 나눠주는게 그렇게 위화감 있는 일은 아니었고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마약을 넣어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6일 밤 10시30분께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임아무개(18) 군은 학원 근처에서 기능성 식품 판촉 행사가 활발히 열렸다고 말했다. 임군은 “특히 오후 5시반부터 6시쯤 이것저것 나줘주는 경우가 많은데, 배가 고픈 시간이라 받아서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분위기를 통해서 범죄자들이) 이익을 얻으려 했던 게 기분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피의자 2명(왼쪽)과 이들이 나눠준 마약 음료수(오른쪽). 강남경찰서 제공
지난 3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피의자 2명(왼쪽)과 이들이 나눠준 마약 음료수(오른쪽). 강남경찰서 제공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건네고 학부모들을 협박한 ‘마약 음료수 사건’이 발생해 시민들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6~7일 <한겨레>가 만난 학생들은 학원 근처에서 ‘머리 맑아지는 약’과 같은 건강기능식품 행사가 잦았다고 입을 모았다. 근처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한 학생(17)은 얼마 전에도 ㅈ제약회사에서 ‘기억력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며 건강기능식품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마약 음료 사건 발생 뒤 대치동의 유명한 커뮤니티에는 “아이에게 (마약음료) 기사를 보여주니 이런 걸 받아왔다며 건강식품 샘플을 주더라”며 “찜찜해서 모두 버렸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특히 범죄를 저지른 일당들은 “집중력 높이는 음료”라며 ‘메가 에이디에이치디(ADHD)’라는 상표가 붙은 마약 음료수를 건넸는데 교육열이 높은 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에선 의사 처방이 필요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치료제가 학생들의 집중력 향상을 위한 각성제로 쓰이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53)는 “대치동 학부모들이 에이디에이치디약을 구하기도 한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마약범죄를 저지른 게 너무나도 충격적”이라고 했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2021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제 처방은 서울 25개구 안에서 송파구(8.8%), 강남구(8.7%), 노원구(6.4%), 서초구(6.0%) 차례로 많았다.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와 강북에서 학원가가 밀집한 노원구를 합치면 서울 전체에서 30% 가까운 처방이 이뤄진 것이다. 가장 적게 처방 받은 곳은 금천구(24위·1.5%)와 중구(25위·1.1%)로 상위권 자치구와 격차가 컸다.

에이디에치디 치료제(메닐페니데이트) 처방이 학업부담이 큰 10대에 집중되는 경향도 확인됐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메틸페니데이트 처방인원은 52만7000명으로, 이중 37%(19만9000명)가 10대였다. 이를 처방받은 10대는 2017년 3만3000명에서 2021년 4만4000명으로 증가 추세다. 이보다 앞선 2011~2016년엔 메틸페니데이트의 처방 건수는 약 10% 감소했으나, 만16~18살에 해당하는 연령대에서는 모두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마약 음료 사건으로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신아무개(16)군은 “길거리에서 물티슈나 포스트잇을 나눠주면 그냥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조차 의심스럽고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학부모인 서아무개씨는 “최근엔 너무 무서워서 아이들한테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받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한다”고 했다.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남권에 거주 중인 한 학부모는 “아이들도 건강에 좋은 음료라고 했으면 관심이 없었을 텐데,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니 혹 하는 마음에 마셨을 수 있다”며 “주변에서 부모들이 집중력 강화 알약 같은 걸 먹이는 것을 종종 봐왔다. 부모들의 욕심도 문제”라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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