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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두 아들…억대연봉 전 남편은 ‘나 몰라라’

등록 2023-04-06 06:00수정 2023-04-06 15:11

[나눔꽃] 청각·지적·자폐성 중복 장애 형제
한 달 치료비 112만원…억대연봉 이혼남편 양육비 안 보내
어휘 공부 중인 엄마(46)와 태용(가명·14)이가 오리 그림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어휘 공부 중인 엄마(46)와 태용(가명·14)이가 오리 그림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집에서 만난 태일(가명·19)과 태용(가명·14)이는 엄마(46)와의 어휘 연습에 한창이었다. 엄마를 둘러싸고 앉은 형제는 엄마의 입 모양에 집중한 채 “오리”라는 말을 하려고 애를 썼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발음이 뭉개졌지만, 아이들은 반복해서 엄마를 따라 했다.

이날 15분가량의 어휘 연습 시간 내내 형제들 사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엄마를 향해 크게 입을 벌리며 말을 하는 태용이를 보며 엄마도 끝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 10∼20분의 어휘 연습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아직 단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도 발음하지도 못하지만, 아이들은 매일 제게 그림을 짚으면서 말을 해달라고 해요. 이렇게 연습을 하고, 치료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아이들이 간단한 말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태일·태용 형제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첫째인 태일은 생후 3개월 때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딸랑이를 흔들어도, 문을 세게 닫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준 책에서 딸랑이를 흔들면 아기들의 고개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태일이는 아무 반응이 없는 거예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청각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엄마는 믿고 싶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로 찾아간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청각 장애란 판정을 받고 나서야 아이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했다. “검사를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집은 있지만, 안에 들어있어야 할 달팽이관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어요. 희귀하기도 하고, 나중에 ‘인공와우’ 수술을 하는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죠.”

믿고 싶지 않은 일은 5년 뒤에 다시 일어났다. 5년 만에 태어난 둘째 태용이 역시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배 속에 있을 때도 형이랑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혹시 몰라 검사를 받아보니 형이랑 기형 구조가 똑같더라고요.” 두 형제는 생후 15개월째에 체중 10㎏을 넘기자마자 전기 자극으로 소리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엄마는 4시간 동안 수술방에 아이들이 들어가 있던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술 이후 아이들의 귀에는 엄마가 붙인 테이프 자국이 늘 남아있다. 인공와우 기계가 떨어지지 말라고 엄마가 붙인 테이프의 자국이다.

태일(가명·19), 태용(가명·14) 형제가 평소 착용하는 ‘인공와우’ 기계.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태일(가명·19), 태용(가명·14) 형제가 평소 착용하는 ‘인공와우’ 기계.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엄마는 “절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농학교에 진학해 수화를 배워 의사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제가 가진 것은 청각 장애만이 아니었다. 태일이는 7살 때 지적장애를, 태용이는 4살 때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판정받았다. 형제는 2∼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 언어를 모방할 순 있지만,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특수학교에서 배운 수화로 “집에 가자”, “그만”이라는 건 표현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의사소통은 어려웠다. “아이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고, 위험한 것은 위험하다고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답답할 때가 많네요.”

그래도 아이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하지만 형제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서 무너진 건 엄마가 아니라 가정이었다. 아빠는 둘째 태용이마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아이들의 아빠가 될 수 없다. 아빠를 하기 싫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둘째는 멀쩡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니 마음이 완전히 떠난 것 같았다. 지난 2016년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리고 결국 이혼하게 됐다”고 했다. 억대 연봉자인 남편은 이혼 후 매달 200만원가량을 양육비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빚이 많은 탓에 지금까지 한번도 양육비를 주지 못했다. 부양의무자로 등록된 전 남편의 연봉이 1억원을 넘다보니 엄마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지만, 정부로부터 주거급여도 받을 수 없다. 두 형제를 키워내는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됐다.

엄마(46)의 입모양을 보면서 발음을 따라하는 태용(가명·14)이.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엄마(46)의 입모양을 보면서 발음을 따라하는 태용(가명·14)이.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건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태일이가 태어나고 19년 동안, 태용이가 태어나고 14년 동안 엄마는 편견과 맞싸워야 했다. 태일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미용실에서 쫓겨난 이후로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꺼리게 됐다. 식당을 가더라도 이따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태용이와 낯선 사람도 반갑다며 안는 태일이 때문에 엄마는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덩치가 커지고, 힘으로 아이들을 통제할 수도 없게 되면서 엄마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언젠가 엄마가 더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을 때 아이들이 자립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언론에 나오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안타까운 선택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제가 가면 키워줄 사람이 없거든요. 아이들이 방치될까 봐 걱정이에요. 주변에선 ‘시설에 보내라’고 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떨어지고 싶진 않아요.”

지난 2017년 눈앞에서 본 시설 장애인에 대한 폭력은 이런 생각을 더 굳히게 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4년 동안 사이버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수강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실습을 갔던 시설에서 원장이 아이들을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그 시설은 아이들이 먹고 자며 온종일 생활하는 곳이었어요. 근데 원장은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원장실로 아이들을 데려가 창문이며 문이며 모두 닫고 마구 때리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겹쳐 보였어요. 일부러 나중에 제가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지켜보려고 선택한 곳이었는데…”

결국 엄마는 형제가 조금이라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형제는 주 3회 언어치료를 받고, 2번은 특수체육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 달 112만원에 달하는 아이들 치료비는 그대로인데 수입은 급감했다. 엄마가 하루 2시간 장애인활동보조사로 일하며 버는 한 달 150만원과 형제 이름으로 나오는 장애수당·양육수당·장애연금 등을 다 합해도 수입은 268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태일이가 지난해 성인이 되면서 78만원가량의 정부 지원금도 끊겼기 때문이다.

최근 태일이가 뇌전증 판정을 받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지난해 8월에 차로 이동하던 중에 갑자기 태용이가 소리를 지르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의식을 잃고 몸을 떨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깜짝 놀라 119를 불러 병원에 갔어요. 의사는 잠을 잘 못 자는 게 원인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태일은 하루에 2번 뇌전증약을 먹게 됐다. 같은 해 2월 인공와우에 문제가 생겨 1200만원을 들여 재수술까지 했다.

벽에 붙여놓은 어휘 연습 그림.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벽에 붙여놓은 어휘 연습 그림.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형편이 어렵지만, 엄마는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생활비에 ‘적자’가 나는 달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치료를 줄일 수밖에 없다. “생활비 적자가 나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아이들 치료를 한두 번씩 빼게 돼요. 치료 병원에 ‘오늘은 치료를 가지 못한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아이들에게 ‘돈 걱정 없이’ 치료를 해주는 게 엄마의 소원이 된 이유다.

엄마는 아이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치료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변화가 없어 보여도 엄마는 날마다, 해마다 변해가는 아이들을 느낀다. “제 주변엔 치료해도 아이들이 진전이 없다며 포기하는 장애 아동 부모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보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요. 태일이만 해도 지난해까진 말을 하지 못했는데, 올해부턴 그림을 보고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면, 엄마는 새로운 꿈을 꿔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목격한 폭력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시설이 아닌 “태일·태용과 같은 중복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주간보호센터”를 만드는 꿈이다. 엄마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부모 4명과 함께 주간보호센터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재원도 없어 그냥 계획이자 희망일 뿐이지만, 언젠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태일·태용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하나은행 188-910030-69104, 예금주: 사회복지법인밀알복지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밀알복지재단(1600-0966)으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밀알복지재단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태일·태용이네 가정의 의료비와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태일·태용이네 가정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15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태일·태용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장애아동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굿네이버스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선아(가명)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2023년 3월7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1769만1459원(4월4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304분의 후원자가 “선아야 건강하게 잘 크렴”, “선아 어머니 힘내세요!” “지하방에서 벗어나길”이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굿네이버스는 “선아와 어머니가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선아네 가정의 주거환경 개선비, 생필품 지원비, 긴급 생계비로 전달됩니다. 선아네 가정을 위해 소중한 나눔을 실천해 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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