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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프로당구 흥행 공신 피아비 “나를 위한 12시를 만들겠다” [인터뷰]

등록 2023-01-10 16:25수정 2023-01-11 02:35

[2023 올해도 뛴다] 캄보디아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
당구를 통해 인생 2막을 연 스롱 피아비는 새해엔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창금 기자
당구를 통해 인생 2막을 연 스롱 피아비는 새해엔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창금 기자

“마스크 껴도 다 알아봐요.” “난리 났어요. 수원에선 밥 공짜예요.” “캄보디아 노동자가 저 때문에 사장님이 잘 해주신대요.”(웃음)

끝없이 이어지는 얘기가 신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 좋고, 동포들 자신감 생겨서 기쁘고, 어려운 사람 도와줘 행복하고…. 모든 게 마치 동화 같다. 눈까지 내렸으니 마음은 더 들떴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피비에이(PBA) 5차 투어에서 만난 캄보디아 결혼 이주 여성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 이야기다. 그는 “눈 좀 보세요”라며 손이 차가운지도 모르고 만지고 놀았다.

아마추어 최강자 출신 피아비는 여자프로당구에서도 슈퍼스타다. 피아비는 2022~2023 시즌 투어 첫 대회 우승을 포함해 통산 3승을 거뒀다. 프로 5회 우승의 김가영(하나카드)과 함께 부동의 양강으로 꼽힌다. 김현석 해설위원은 “피아비의 실력은 검증돼 있다. 한국 여자당구의 흥행몰이에는 피아비의 존재가 있다”고 밝혔다.

2019년 출범한 프로당구 피비에이(PBA)가 룰, 복장, 용어 개선 등으로 당구의 이미지를 혁신했고, 프로당구는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이런 외형적 성장 뒤에는 피아비 같은 특급 선수들의 존재도 우뚝하다. 실력뿐 아니라 팬 친화적인 모습, 경기장 밖 사회활동까지 스타로서의 자질을 갖췄다.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눈을 뿌리고 있다. 김창금 기자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눈을 뿌리고 있다. 김창금 기자

피아비가 집념의 당구를 펼치는 배경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도 있다. 당구 선수로 유명해지면서 캄보디아 어린이를 도와온 그는 “캄보디아 국민 잘 먹고, 잘 사는 것 보고 싶다. 당장 동네에서 아이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후원사인 에스와이의 도움으로 기술학교(직업훈련소)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충북의대 홍보대사인 그는 캄보디아에 의료지원도 하고, 동료 여자당구 선수들과 함께 캄보디아 팬들을 위한 방문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농사만 지어오신 부모님들에게 새집 지어줘 효도하는 것도 꿈이다. 지난해 6월 시즌 첫 투어인 블루원리조트 경주 대회에서 부모님이 관전하는 가운데 우승컵을 안은 것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는 “아빠, 엄마가 늘 걱정해준다. 유튜브로 경기하는 것 보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코치도 해준다. 아빠는 눈을, 엄마는 따뜻한 봄을 좋아해 계절이 엇갈리지만, 새해엔 두 분에게 눈 구경 꼭 시켜드리고 싶다”고 했다.

파워, 정교한 설계, 노련미를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 피아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 당구만 잘하는 거 아니다. 남편 만나기 전에도 한국말 배우고 운전면허도 캄보디아에서 땄다. 경기장은 내비게이터 켜고 직접 운전해 다닌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당구 선수로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것은 물론이다.

남편 따라 당구장에 처음 간 그는 처음에는 포기할 마음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남편 잔소리는 많고….”

하지만 대회 나가 성적을 내고, 주변에서 알아보는 이가 많아지면서 의욕이 커졌다. “나 자신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는 그는 지나친 경기 몰입으로 당구공의 적중 여부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이원리조트배에서도 8강에서 탈락하자, “대회를 위해서 하루 10시간씩 연습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는 성숙하게 받아들인다. 피아비는 “옛날엔 지면 마음속으로 울었는데, 지금은 고생했다고 속으로 칭찬하고 위로한다. 패배는 아프지만 상처받으면 몸도 힘들다”고 했다. 초심을 돌아보는 것도 정신력을 강하게 만든다. 그는 “당구를 치지 않았다면 아마 남들처럼 공장에서 일하거나, 애 낳고 그랬을 것 같다”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훌륭하고 멋있고, 당구를 통해 좋은 일 많이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당구연맹 이사인 그는 조카 2명에게도 당구를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창금 기자
피아비가 지난해 12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창금 기자

지난해 9월부터 한국에서 처음 정착했던 충북 청주를 떠나 경기도 수원에 새로운 터를 잡은 것도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이다. 후원사의 도움으로 오피스텔에서 캄보디아 친구와 함께 지내고, 전용 당구장도 마련됐다. 피아비는 “에스와이 회장님이 정말 많이 도와준다. 당구장에 카메라도 설치해 부족한 기술을 반복해서 되돌려보면서 연습할 수 있다”고 했다.

동네 식당에 가면 알아보는 팬에게 “저 피아비예요”라고 인사하며 당구를 홍보한다. “피아비가 (텔레비전에) 나오면서 잔소리 많았던 사장님들이 잘해준다”는 동포 노동자들의 말을 들을 땐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기자가 “마음이 착하다”라고 하자, 그는 “저 천사예요”라며 깜찍하게 답한다.

10년 이상 당구 외길을 달려온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지나 보니 인생이 아주 슬프다. 처음엔 우승하고, 바쁘게 살면서 정신없었다. 요즘엔 장례식에 가면 캄보디아의 나이 드신 친척분들이 많이 생각난다. 이제는 나도 날 사랑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위한 12시를 만들고 싶다”는 속담을 들려줬다. 정오의 햇빛 아래 모든 것이 밝게 잘 보이듯, 새해에도 햇빛처럼 우승이 쏟아지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못 말리는 피아비다.

정선/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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