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아파트 중개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공인중개사법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이 법을 적용해 재판에 넘겨진 공인중개사들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조직폭력배를 처벌할 때 적용하는 ‘범죄단체’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다.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전경세 판사는 지난 8일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중개사 및 중개보조원 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검찰은 10개 사무소 소속 공인중개사 등이 ‘잠사모’(잠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동산모임)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입 자격과 회칙 등을 정한 뒤, 이를 어긴 공인중개사에 대해 ㄹ아파트 매물 등에 대한 공동중개(다른 사무실 공인중개사들이 매도·매수인을 연결해 계약 체결)를 막고, 비회원과 공동중개를 하지 말라고 강요한 혐의 등으로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이 사건은 2020년 2월 시행된 부동산 중개 담합 처벌 조항을 처음 적용해 기소한 사건으로도 주목 받았다. 공인중개사법은 ‘단체를 구성해 중개를 제한하거나 단체 구성원 이외의 자와 공동중개를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해 담합 행위를 규명했다며, 대검찰청이 2021년 우수 업무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이 공인중개사법에서 제한하는 ‘단체’를 구성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전 판사는 “단체(잠사모) 의사 결정을 위한 임원 등이 누구였는지 등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일부 피고인이 주변 공인중개사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단체 구성 정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영업장소가 가깝고 동종 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모두 단체 활동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단체 구성 요건을 전제로 한 검찰의 공소 사실을 전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전 판사는 무죄 법리를 구성하며 2020년 중고차 판매 사기단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범죄집단’에 대한 법리를 처음 설시하면서 ‘범죄단체’에 대해서는 “다수가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 목적으로 구성한 계속적 결합체로서 단체를 주도하거나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통솔 체계’를 갖춘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전 판사는 이를 근거로 “단체는 집단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단체를 사회적 실체로 규정짓는 요소가 증명돼야 단체의 현존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 쪽에서는 법원이 단체 의미를 지나치게 좁혀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형법 등에선 조폭을 잡기 위해 ‘단체’와 ‘집단’을 구분하는데, 공인중개사법에서까지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좁혀 해석한 것같다. 담합 행위 처벌을 위해 상급심에서 법 해석을 달리하거나 입법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검찰은 항소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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