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가족의 사연이 보도된 후 많은 후원자들이 모인 덕분에 이들 가족은 일상생활을 회복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기쁨이(가운데·가명) 가족과 교회 목사(오른쪽). 기쁨 양 어머니 제공
엄마와 같은 희귀 질환을 앓는 아이, 고작 7살에 어려운 수술을 몇 번을 이겨낸 아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발레라는 꿈을 잃지 않은 청소년….
2022년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1~11월)은 전국 곳곳의 도움이 절실한 아홉 가정을 만났다. 집집마다 사연은 많았지만, 이들에게는 ‘도움받을 용기’를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부터 14년째 진행해오는 사회공헌 캠페인인 ‘나눔꽃’은 <한겨레>와 구호·시민단체들이 함께 성별·연령·국적을 가리지 않고 도움이 꼭 필요한 가정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많은 시민들이 건네는 도움의 손길을 이어줬다. 올해는 굿네이버스·대한적십자사·밀알복지재단·월드비전·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캠페인에 함께했다.
쉽지 않은 용기를 낸 아홉 가정에 돌아간 후원금은 돈 이상으로 이들에게 꿈과 더 큰 용기를 줬다. 나눔꽃 캠페인 8월(대한적십자사)에 소개된 열네살 기쁨이(가명) 가족은 “살아갈 힘”과 “행복”을 말했다.
기쁨이는 7남매 가족 중 여섯째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선천적 심장질환과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아 생후 100일 무렵과 초등학교 5학년 때 두 번 심장 수술을 해야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쁨이는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수면장애가 심해져 집안을 어지럽히고 다니는 등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기쁨이를 홀로 키워온 엄마는 오랜 돌봄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엄마를 돕기 위해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던 둘째 오빠 이기정(20)씨는 전역을 택했다. 그는 신학대학에 진학하며 학교 수업이 없는 평일에는 온종일 기쁨이를 돌보고 있다.
기쁨이 가족의 사연이 보도된 후 187명의 도움으로 후원금 935만1672원이 모였다.
덕분에
기쁨이 가족은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있다. 도로변에 있는 지금 집은 소음이 심해 기쁨이가 잠을 설치기 일쑤고, 상가건물 내에서도 가파른 계단을 통해 4층까지 올라가야 해서 기쁨이가 외출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기쁨이 엄마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마땅한 매물이 많지 않아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지만 7남매 중 성인이 된 아이들과 기쁨이를 비롯한 미성년자 아이들을 구분해서 두 집에서 사는 등 여러 방식을 고민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쁨이의 학교와 가깝고, 건강에도 도움되는 쾌적하고 넓은 집을 찾는 것이 엄마의 소망이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기쁨이 치료비 걱정이 한시름 덜어졌다. 기쁨이 엄마는 “기쁨이에게 좋다는 치료는 모두 다 받게 해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망설여왔다”며 “지금은 비만과 당뇨 등 다양한 합병증 치료도 충분히 받고 있다. 먼 병원까지 치료를 다닐 때 드는 교통비 걱정도 조금은 덜게 됐다”고 말했다.
기쁨이의 수면장애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며칠 밤을 새우고 지쳐 잠든 까닭에 학교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기독교인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기쁨이가 낫길 바라며 금식 기도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기쁨이는 지난 10월부터 한 달 가까이 잠을 충분히 자며 체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전보다 잠을 더 자니 요즘에는 표정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우리 기쁨이 예뻐졌다’는 말을 수시로 해요. 물론 소소한 걱정은 있어요. 기쁨이가 제일 좋아하는 둘째 오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으면 오빠를 기다리느라 현관문을 열어놓고 잠도 자지 않거든요.” 엄마는 기쁨이를 돌보느라 아픈 곳이 하나둘씩 늘어가지만, 기쁨이가 조금이라도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면 기운이 샘솟는다. 내년에는 기쁨이가 학교에도 더 자주 나가는 등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언젠가 수영이나 피아노 같은 다양한 경험도 하길 바란다.
‘나눔꽃’ 보도 이후로 기쁨이 가족도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엄마는 특히 타지에서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는 넷째 아이에게 기숙사비와 용돈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사실 기쁨이를 만나러 오셨던 8월은 우리 가족이 너무 지쳐 있을 때였거든요. 그때쯤 기쁨이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예전에는 남에게 도움받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도 이후에 많은 분이 도와주시고 응원하는 걸 보면서 저도 힘을 얻었고, 우리 아이들도 도움받은 만큼 남에게 도움 주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전보다 자존감도 올라갔다고 해요.”
기쁨이 엄마는 장애인 자녀를 둔 모든 가정이 따뜻한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우리 집 유행어가 하나 있거든요. ‘기쁨이가 건강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 자주 외치다 보면, 내년에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8월 오빠 이기정씨와 동생 이기쁨양(오른쪽). 백소아 기자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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