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를 한 뒤 피해자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군대에 강제 징집되거나 녹화·선도 공작을 통해 프락치(망원)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가 2921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진실화해위는 “국방 의무라는 명목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정권 유지 목적으로 전향과 프락치를 강요 당했다.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경제·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23일 오전 ‘강제 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사건 진실 규명을 신청한 조종주씨등 187명을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를 시작으로 1기 진실화해위 등을 통해 일부 진상 규명 시도가 있었지만, 1971년 위수령 발령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체적인 피해자 규모와 개인별 피해 사례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2021년 5월 이 사건 조사개시를 의결한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5공 당시 국군보안사령부)의 개인별 존안자료 및 1981~88년 선도대상자(특수학적변동자) 명단을 비교 대조해 강제 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피해자 2921명 명단을 확인했다. 기존에 알려진 1980~84년 강제 징집(1152명), 녹화사업(1192명) 피해자보다 많다. 진실화해위는 위수령 발령(1971년), 긴급조치 9호(1975년), 계엄포고 10호(1980년), 5공화국 출범(1981년) 이후 등 모두 4차례 대규모 강제 징집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체포·구금, 고문과 구타를 당한 상당수 학생들은 군 조사 뒤 사상 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5공화국 시기 강제 징집은 국방부·내무부·병무청·법무부·문교부·대학 등이 총동원된 조직적 합작품”이라고 했다.
군 관련 자원 활용 방안을 담은 보안사의 ‘좌경의식화 불순분자 대상 대공활동지침’(1982. 5. 17.). 문건에는 △입대 6개월 이내자를 소환 및 협조자로 만들어 불순 서클 자료 파악 및 근원 개발 △6개월 이내 제대 예정자를 협조자로 만들어 제대 후 학원 내 문제 서클 근원 개발 및 침투공작 활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보안사 대공처가 만든 ‘특수학변자(ASP) 심사 및 순화계획 보고’(1982. 11. 17.) 문건. 특수학적변동자는 “대학 재학생 중 내무부 장관이 결정한 소요관련자”라고 명시돼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에서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프락치 강요 공작이 지속됐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녹화공작 담당 부서인 국군보안사 심사과가 폐지됐지만, ‘선도대상자’ 명단 중에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10월 입대자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프락치 강요 공작은 1990년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보안사가 만든 ‘군입영 대상 문제학생 관리지침’(1986. 1. 15.). 보안사가 심사과 폐지로 녹화공작을 중단한 뒤에도 ‘선도업무’로 프락치 강요 공작을 계속했음을 보여준다. 대학이 문교부로 징계결과 보고를 하고, 지원 보안부대에선 사령부에 관심 대상자 발굴보고를 하라는 지침 등이 담겨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강제 징집과 녹화공작 인권침해의 (책임은) 과거 내무부 치안본부와 보안사령부에 있어 두 기관을 계승하는 부처(행안부 및 행안부 경찰국, 국방부)에 사과를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락치 강요 과정에서 의문사한 이들에 대한 진실규명 및 책임자를 가려내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정 위원장은 “의문사 사건들에 대한 자료를 수차례 찾아 보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관련 사건을 좀더 치열하게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 사건 조사를 맡은 박강형 조사관은 “녹화공작 가해자로 볼 수 있는 보안부대 요원 조사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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