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지난달 29일 압사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의 모습. 연합뉴스
무고한 시민 156명이 행정 당국과 경찰 지휘부의 무관심 속에 희생된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압사’ 위험을 감지했다.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사람이 깔렸다”는 첫 신고가 들어왔던 10시15분보다 3시간41분 앞선 이날 저녁 6시34분, 박아무개(52)씨는 경찰 112신고 센터에 전화를 걸어 현장의 위험을 가장 먼저 알렸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개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이날 저녁 6시께 퇴근 후 남편, 중학교 2학년생 딸과 함께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던 해밀톤호텔 인근 삼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박씨는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나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이 빽빽히 삼거리 골목을 메우고 있어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클럽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 이태원역 방면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과 이태원역에서 올라오려는 사람들이 얽혀 난리통이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인파에 휩쓸려 가족들과 찢어진 박씨는 겨우 해밀톤호텔 안쪽으로 몸을 피해 호텔 내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박씨는 “호텔 밖으로 나와보니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참사가 벌어졌던 골목길로 올라가는 걸 봤다. 아무래도 사고가 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미 그때 박씨의 머릿 속에는 ‘압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박씨는 곧장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공개한 당일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박씨는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것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그는 “차마 무서워서 그 단어를 입에 담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신고를 하며 나도 모르게 압사라는 말을 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의 가족들은 인파를 뚫고 곧 박씨와 합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가 났던 그 내리막길을 통해 그곳을 빠져나온 박씨의 남편은 아직도 그날의 공포를 떨치지 못했다. 박씨는 “남편이 내려오다가 딸 아이를 놓쳤다고 한다. 나중에 뉴스를 보면서 ‘만약 그때 이런 사고가 났으면 나는 정말 못 살았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왜 사전에 충분한 경찰을 배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신고를 받고서라도 뭔가 조치를 취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며 “과연 구청과 경찰이 최선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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