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3시간여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등 위험 징후를 알리는 시민들의 신고가 112 신고센터에 11건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가운데 4건의 신고에 대해서만 현장에 출동했다고 한다. 안전대책 미비로 156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를 두고 정부·여당이 책임론 차단에만 주력하는 가운데, 경찰이 시민들의 다급한 구조 요청에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경찰청이 1일 공개한 112 신고 녹취록은 참사 당시 급박했던 사고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위험 징후 신고가 11건 접수됐다며 신고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을 보면, 29일 참사 발생 3시간여 전인 오후 6시34분 신고부터 ‘압사’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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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는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통제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다”며 경찰의 현장 통제를 요청했다. 이에 경찰관은 “경찰관이 출동해서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후로도 현장의 급박한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듯 경찰에 접수됐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 너무 소름 끼쳐요. 아무도 통제 안 해요.”(10월29일 저녁 6시34분) “사람들 밀치고 난리가 나서 넘어지고 다치고 하고 있거든요.”(저녁 8시9분)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이거 사고 날 것 같은데, 위험한데.”(저녁 8시33분)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어요. 거의 아수라장이에요.”(저녁 8시53분) 사고 발생 소식이 전해진 밤 10시15분 최초 소방신고 4분 전인 10시11분에 접수된 마지막 신고에는 신고자의 비명까지 담겨 있었다.
특히 경찰은 11건 가운데 8건을 ‘긴급 출동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코드0’과 ‘코드1’로 분류하고도, 단 1건만 현장에 출동했다. 긴급 출동이 요구된다고 분류한 나머지 7건은 현장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전화 상담 등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 출동은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던(‘코드2’) 초기 신고에만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사건 발생 한 시간여 전인 밤 9시2분 신고 이후로는 현장에 추가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첫 신고 이후 현장 출동한 세 건에서 인근 시민을 통제했다고 하지만, 비슷한 신고는 속출했고 오히려 사고 직전 급박한 상황에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의 미흡한 대응을 인정하며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사과했다. 윤 청장은 이날 ‘이태원 사고 관련 경찰청장 브리핑’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에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수본은 이날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를 수사의 독립성이 보장된 특별수사본부로 전환했다. 경찰청도 특별수사본부 설치와 별개로 이날 이태원 지역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감찰에 착수했다.
윤 청장은 이날 ‘경찰 스스로 철저한 규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지적에 “수사 대상 범위 등과 관련해서는 개정된 형소법에 따르면 경찰 수사 권한 범위 내”라고 답했다. 지휘부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현안 해결과 사고 수습 향후 대책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나중에 결과가 나왔을 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이 됐건 그에 상응한 처신을 하겠다”고 했다.
한편,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이날 오후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과 서울시 등 유관기관의 대응이 부실했다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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