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18일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의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했다. 위법 논란 속에 감사원이 공소장 수준의 감사 결과를 공개하며 검찰에 수사요청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지난 7월 검찰 공개수사가 시작되고 석달여 만에 첫 구속영장 청구일 만큼 긴급성이 떨어지는 사안인데,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은 국회 국정감사를 받는 당일 영장 청구라는 전례를 찾기 힘든 수사 방식을 택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논란을 일부러 키우는 듯한 검찰 수사 방식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이날 낮 12시30분께 서욱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경청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조사 내용이나 혐의 소명 정도,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 인멸 가능성 등을 우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이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3일 서 전 장관을, 14일 김 전 청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해 사건 수사에서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던 검찰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 청구에 나설 수 있었던 데는 감사원의 서해 사건 감사 결과 발표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감사원은 위법 감사 논란 속에 검찰 공소장 수준의 조사 내용을 감사위원회의 의결 없이 공개하고 이튿날 관련자 20명을 검찰에 수사요청했다. 그러면서 2020년 9월23일 서 전 장관 지시로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에 기록된 서해 사건 관련 보고서 60건이 삭제됐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검찰은 여기에 더해 9월24일 서 전 장관이 국가안보실과 공모해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고 한다. 김 전 청장은 이 사건 당시 해경 총책임자였다. 감사원은 김 전 청장이 숨진 공무원의 구명조끼에 한자가 적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나는 안 본 거로 할게’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오전부터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해 사건 등 전 정권을 겨냥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를 두고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과 ‘정당한 수사’라는 국민의힘 사이 난타전이 벌어지는 도중에 검찰이 돌연 장관급 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때문에 여야 충돌이 불가피한 사건의 경우 출석 조사 일정이나 압수수색 및 영장 청구 날짜, 기소 시기 등을 적절히 조정하며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는 수사 방식을 택해왔다. 검찰 수사실무에서도 긴급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런 ‘원칙’을 적용해 왔는데, 이날 서 전 장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이같은 원칙과 전례를 모두 무시한 것이다. 앞서 감사원의 서해 감사 착수와 감사 내용 공개를 두고 검찰 수사를 돕기 위한 ‘청부감사’ ‘피의사실공표’라는 의혹이 일었는데, 검찰은 감사원 수사요청 나흘 만에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하며 이런 의혹에 불을 지른 셈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 사건 첫 구속영장 청구라는 점에서 사전에 대검찰청은 물론 법무부에도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감사원이 검찰 예상보다 자세한 내용을 발표해 주요 관계자들끼리 서로 말 맞추기가 이뤄질까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더라도 이들에 대한 신병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이유와 발부 가능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감사원이 정부 내부 문건 등 핵심 증거 등을 모두 확보한 데다 지난 7월부터 공개수사에 들어간 검찰 역시 두달 가까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정권 장관급 인사들이 도주할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어서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안보라인 수사는 혐의가 성립하는지부터 의문스럽다. 피랍 사건을 월북으로 돌린 것도 아니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초기 판단 과정을 문제삼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민간인 신분이라 더 이상 군 내부망 등에 접근할 권한도 없고 도주 우려도 없다는 점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의아하다”고 말했다.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도주 우려 가능성이 높지 않아 영장 발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영장이 발부되면 당시 국무위원의 혐의가 상당 부분 입증되는 셈인데, 이를 근거로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를 확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임명된 뒤 ‘거물’을 상대로 청구한 첫 구속영장인 만큼 기각될 경우 수사 동력이 상당 부분 꺾일 수 있다”고 짚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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