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감사원이 13일 저녁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감사 결과를 기습 발표한 것은 형식도 내용도 모두 고약하다. 감사 착수 자체가 위법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감사위원회의에 사전 보고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사무처가 작성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을 택했다. 분명한 증거도 대지 못한 채 전 정부 인사 20명을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며, 사실상 피의사실 공표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을 공개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나 감사원의 앞으로 모든 감사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릴 뿐인 행태가 몹시 유감이다.
감사원은 보도자료에서 2020년 9월 사건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로 공무원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을 속단하고 이에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등의 혐의가 확인됐다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20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수십건의 자료 삭제 지시 등도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 월북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증거나 판단을 내놓지 못했다. 감사원이야말로 불충분한 근거에 부정확한 추론을 덧대어 전임 정부 찍어내기에 첨병 노릇을 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14일 오후 <동아일보>에 핵심 내용이 보도되자 미리 준비했던 A4 18장짜리 보도자료를 낸 것이나, 이에 앞서 <조선일보>에도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가 ‘월북몰이’를 했다는 핵심 내용이 보도된 것 역시 언론 플레이가 있지 않으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정작 감사위원들은 보도자료를 보고서야 감사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해 사건의 결론을 뒤집은 해경 발표 바로 다음날 감사원이 전격 감사 착수를 발표한 이유에 대해 ‘새벽에 뉴스를 보고 못 참아서 감사를 건의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사무총장 개인감정으로 18명을 투입해 57일간 대규모 감사를 벌인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감사원은 ‘상시 직무감찰’은 감사위원회 의결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고위 공직자 20명을 수사 요청한 중대 사안으로 드러났다. 이미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떠들썩하게 감사 결과를 공개한 것은 수세에 몰린 정부를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야권에선 유 총장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의 문자메시지를 들어 감사원이 대통령실과 유착해 전 정권을 타깃 삼아 벌인 정치감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지 않도록 증거에 입각해 사건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