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지에서 피해자들이 개토제에 앞서 묵념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바닷가 자갈들도 우리하고 놀고요. 푸른하늘 저녁별도 우리하고 놀지요. 많기도 하구나 우리들의 동무들. 정답게 잘 자라라 선감학원 어린이들.”
선감학원에 강제수용됐던 어린아이들은 축축한 흙바닥에 친구들의 주검을 묻으며 이 노래(선감학원가)를 불렀다. 1960∼1980년대 ‘부랑아 단속’ 명분으로 대부도에 딸린 작은 섬 선감도에 설치된 선감학원으로 끌려가 매일 노역과 구타에 시달렸던 원생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파도에 휩쓸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를 묻는 일은 선감학원 원생들의 몫이었다.
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900㎡ 규모의 경기 안산시 선감동 산 37-1 지역에 암매장된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유해 확인을 시작했다. 국가기관이 직접 유해 발굴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개토제를 연 뒤 시굴 작업에 들어갔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인권유린을 당한 희생자들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못 이겨 탈출을 시도하다 죽어갔다”며 “전면적인 선감학원 유해발굴 사업이 조속히 추진되도록 관계 당국에 촉구드린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매장지인 이 자리는 농경지 바로 옆, 일상생활의 (장소)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것이었다”며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화해가 가능하다. 오늘 개토제에서 많은 사실들이 확인돼 그 힘에 의해 화해의 단초가 잡히기를 기원한다”는 추도사를 남겼다. 김훈 작가는 옛 선감학원 터에 지어진 경기창작센터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게 됐다.
26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지에서 유해발굴팀원들이 시굴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이날 이곳을 찾은 이아무개(62)씨는 자신의 손으로 묻었던 친구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한겨레>와 만난 이씨는 “탈출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친구를 내가 묻었다. 새벽에 떠내려온 친구의 얼굴과 팔에 소라가 들러붙어 그걸 떼어내니 빨갛게 부어오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친구가 아직까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말을 잇지 못하던 이씨는 “그런데도 누구 하나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1970년 10살 때 수원역 앞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온 이씨는 11살 되던 해 친하게 지냈던 친구 ‘망치(별명)’를 묻어 주었고, 1975년 선감학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마음이 아플 때, 친구 생각이 날 때마다 이씨는 선감도에 온다.
시굴에 나선 한국선사문화연구원 발굴팀은 유해가 훼손되지 않도록 포클레인 등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호미와 삽으로 흙을 걷어내며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했다. 피해자들은 당시 주검이 발견돼도 적절한 장례를 치르지 않고 원생들을 시켜 주검을 거적으로 말아 매장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구타와 영양실조로 숨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바다에 빠져 사망한 아동들이 이곳에 매장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30일까지 시굴 조사에 나서 암매장된 유해가 발견되면 국가 및 지자체에 전면적인 유해 발굴을 권고할 계획이다.
26일 진실화해위가 시굴에 나선 ‘선감학원 아동인권 침해 사건’ 유해 매장 추정지.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