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에서 열린 ‘선감학원 국가폭력 사건 피해소송 법률대리인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선감학원 피해자와 가족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정권 시절까지 ‘부랑아 교화’를 목표로 아동들을 격리·수용했던 선감학원의 피해자들이 국가 책임을 물으며 처음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경기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대책협의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는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에 자리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에서 ‘선감학원 국가폭력 사건 피해소송 법률대리인 설명회’를 열었다.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변호단 단장 강신하 변호사는 “선감학원이 1942년 개원해 1982년 폐교했고, 이제 40년이 지났는데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활동을 통해 국가 차원의 사과와 정확한 피해조사가 되어 피해자들의 한이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부지가 있던 이곳에도 폭우가 내렸지만 선감학원 입소 경험이 있는 피해자들와 가족 100여명은 강당을 꽉 채웠다. 6∼13살 어린 나이에 선감도에 격리된 뒤 수도권은 물론 강원도 춘천, 강릉, 광주광역시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피해자들이 노인이 돼 다시 선감도에 모인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이곳에 수용됐던 안아무개씨는 “선감학원 사건은 어린 아동을 국가에서 무차별하게 잡아다가 인권유린을 한 것이다. 그 뒤의 트라우마로 가정생활에서도 폭력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등 여러 피해가 많다”며 “이 사건은 장성한 성인이 아닌 아동에 대한 학대사건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선감학원에 11살 때 들어와 6년을 격리됐던 정아무개(65)씨는 “사실 이곳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밖에서 나무 긁는 소리가 나면 날 때리려는 소리 같아서 겁이 난다”며 “굴 껍데기가 깔린 바닥에 머리를 박고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살아 나가야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이들은 1년6개월에서 최대 11년까지 선감학원에 격리돼 있었다고 응답했고, 1942년생부터 1970년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 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도 200여건에 달했다. 선감학원 대책협의회 김영배 운영위원장은 1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은 약 10년 세월 동안 선감도의 아픔을 이야기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에 나이가 많은 피해자들은 계속 세상을 떠났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뒤 연고가 사라져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장례도 대책협의에서 치러주고 있다”며 “선감학원에 끌려오면서 모든 교육과 단절된 채 성장하다 보니 사회생활의 제약도 컸다. 피해자들의 처지와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옛 선감학원 원생들이 묵었던 기숙사 모습. 현재는 경기도가 임대주택으로 활용해 거주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예지 기자
선감학원 대책협의회와 피해자들은 이 사건을 조사 중인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나오는대로 소송 준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의 인권침해로 인한 피해사실과 국가의 불법행위를 공식 인정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국가 배상을 요구할 문이 열리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여부는 오는 9월 결정될 전망이다. 선감학원 전체 피해자 규모는 최소 4691명으로 추정되나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피해자는 현재까지 173명가량으로, 대책협의회는 소송에 참가할 피해자들을 계속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발굴 속도는 더디다. 오는 12월까지 진실화해위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규명 접수를 받고 있지만, 선감학원에서 퇴소한 뒤 노숙자 신세로 떠돌거나 피해 사실을 밝히는 일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리인단의 이영기 변호사는 “옛날 피해자들과 연락을 아직 주고받는 분들은 진실화해위 신청을 독려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민변은 장완익 변호사와 하주희·이동준 변호사 등 10명의 대리인단을 꾸려 선감학원 운영 책임이 있는 경기도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배상 청구액은 피해자별 수용 기간과 피해 정도에 따라 논의를 거쳐 책정하기로 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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