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중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들이 정근식 위원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 규정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24일 결정으로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 일가의 불법 축적 재산을 환수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사건을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하여,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분명히 했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인정된 만큼 그동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은 피해 입증의 부담을 다소 덜게 됐다. 현재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에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은 모두 4건으로, 피해자 47명이 참여하고 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문슬기 변호사는 “부당한 공권력 개입 여부가 공식적으로 규명된 만큼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피해 입증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들은 진실화해위의 추가 조사에서 개개인의 피해 사실이 규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진실화해위의 발표는 8월까지 진실 규명을 신청한 544명 가운데 1차 191명의 피해를 인정한 것이다. 신청자 개개인의 피해 사실이 모두 규명되지는 않았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정지원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개인이 청구한 민사소송인 만큼 추후 발표되는 개인 피해 입증 내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현재 손해배상소송을 원하는 피해자 70명 정도가 추가로 있다”고 전했다.
이날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논평을 내어 “정부와 국회는 아직 신청조차 하지 못한 피해 생존자들을 발굴하는 작업과 함께 피해자가 소송하지 않고 일괄 배상 및 명예회복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을 모색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권고에선 빠졌지만, 피해자들은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 일가의 불법 축적 재산 환수’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안창근 변호사는 “정부와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해 박 전 원장 일가의 불법 축적 재산 환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1992년 형제복지원과 함께 운영하던 정신요양원이 폐쇄된 이후에도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부산시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용역 최종 보고서’를 보면 박 전 원장은 1996년 부산시로부터 허가를 받아 형제복지원 건물이 있던 주례동 부지를 227억원에 매각했고, 1995년 호주에 회사를 설립하고 12억원을 들여 골프연습장을 매입하기도 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박 전 원장 일가의) 불법적으로 취득한 재산 환수나 책임자 형사 처벌 문제는 2차 또는 3차 진실 규명 과정에서 언급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에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적합한 예산을 보장하고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산시 민생노동정책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이번 규명 내용을 토대로 의견 수렴을 거쳐 피해자 지원을 위한 후속 조처들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형철 부산시의원은 “부산시에서 추진 예정인 1억원 규모의 피해자 의료비 지원 강화에 더해 이번 규명으로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실태조사와 명예회복 등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지난 6월21일 부산시의회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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