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에 밤사이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9일 오전 동안구 비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이 침수됐다. 사진은 물이 찬 지하 1층 주차장의 모습. 연합뉴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밤 서울 서초구 강남빌딩에서 1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실종자는 11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 폭우를 통해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인 지하주차장이 위험한 공간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폭우 때 침수된 지하주차장은 배수가 잘되지 않고, 빠른 유속으로 사람을 위협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한다.
1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실종자가 발생한 서초구의 지하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차수판’은 기록적인 폭우 탓에 무용지물이 됐다. 차수판은 지하실 침수를 차단·지연시키기 위해 주차장 입구에 마련된 일종의 차단벽이다. 서초구청은 ‘우면산 산사태’가 있었던 2011년부터 지하실을 설치하는 신축 건축물에 차수판 설치를 의무화했다.
실종 사건이 발생한 주차장의 차수판은 높이가 성인의 허리 아래에 머물렀다. 폭우로 불어난 물은 약 1m 높이의 차수판을 넘어서 지하주차장으로 쏟아졌다. 차수판 일부가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지하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건물 관리인은 “(지상이 침수된 뒤)10분이 채 되지 않아 빗물이 지하에 차올랐다. 침수로 차량도 떠밀려 다녔다”고 8일 밤 상황을 전했다.
행정안전부 고시로 ‘지하 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이 있어 지하 공간에 배수구와 배수펌프, 집수정을 설치해야 하지만 이는 모든 건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토목환경공학)는 “지하공간은 경사도가 있어서 물길이 빠를 수밖에 없다”며 “차수판은 물론 주차장 유입구 주변의 배수로를 크게 확보해 이중 장치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일 실종자가 발생했던 서초구 빌딩 지하주차장의 차수판. 곽진산 기자
지하주차장 등의 지하 공간에서의 침수피해는 꾸준히 발생했다. 지난 2003년 대풍 매미로 인한 해안범람으로 지하주차장과 지하상가가 침수돼 12명이 사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인천시 청주시 빌딩 침수 등 지하공간의 침수피해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이는 지하주차장이 지대가 낮아 물이 흘러들어오기 쉽고 한번 물이 들어오면 ‘거대한 하수구’가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면 입구의 유속이 빠르고, 배수 처리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방재관리연구센터의 2020년 연구(‘대피경로 산정을 통한 초고층 건축물의 침수대피 방안에 관한 연구’·한국재난정보학회)를 보면, 지상의
침수 높이가 60㎝인 상황에서 지하 공간은 수위가 5분40초 만에 높이 75㎝~90㎝에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하 공간은 침수 시 출입문을 열고 계단을 통해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피 시에도 주의해야 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4년 펴낸 실증분석 보고서(‘실증실험기반 시설물 설계기준 개선’)를 보면, 계단 중앙부의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대피 시 좌·우측의 벽을 잡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동할 때는 슬리퍼나 하이힐 등의 신발보다는 맨발이 더 효과적이다. 또 바닥과 밀착이 되지 않고 내부로 물이 찰 우려가 있는 장화도 벗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물살을 거스르면서 이동할 때는 발을 물에서 빼고 성큼성큼 걷는 것도 필요하다. 지하출입문 안에 위치할 때는 수심이 40㎝ 이상 차오르기 전에 대피하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60㎝ 이상의 수위가 되면 성인 혼자서는 출입문 개방이 어렵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폭우 시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는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면서 “차량 침수뿐 아니라 인명 사고도 날수 있다”고 했다. 조원철 교수는 “폭우 시 물이 30㎝ 이상 찼다면 (지하주차장에)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구경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한편, 애초 서초구 릿타워 지하주차장에서도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서초소방서는 13일 저녁 “릿타워 지하층 전체를 수색하였으나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초소방서는 실종자 오인 신고로 결론을 내렸다.
8일 오후 1시39분 서초소방서 대원들이 실종자를 수색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인근 릿타워 지하주차장에 구명보트를 투입하고 있다. 곽진산 기자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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