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쁨양이 2일 오후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오빠 이기정씨와 함께 방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정오의 태양이 쏟아질 때면 기쁨이와 기쁨이 가족에게도 그제야 잠이 찾아온다. 2일 낮도 그랬다. 기쁨(14)이는 집 안 탁자 위에 초콜릿 과자 8개를 올려놓은 채 놀고 있었다. 기쁨이는 수십분 동안 손으로 과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줄을 맞췄다. 옆에서 그런 기쁨이를 바라보는 둘째 오빠 이기정(20)씨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기쁨이가 어느 순간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동작은 멈췄고, 기쁨이는 졸기 시작했다.
기정씨는 기쁨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쁨이 많이 졸렸어? 방에 들어가서 자야지.” 기정씨는 기쁨이 볼에 얼굴을 비비며 입맞춤을 했다. 일어나기 귀찮아하는 기쁨이를 안은 채로 끌고 침대까지 갔다.
기쁨이는 이내 잠이 들었지만 기쁨이 엄마와 오빠는 안심할 수 없다. 기쁨이가 이따금 ‘케켁’ 하고 기침을 할 때마다 불안하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불면의 밤…“하루가 전쟁”
이름은 이기쁨, 별명은 ‘이쁨이’. 7남매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예쁨을 받는 여섯째 기쁨이는 ‘아픔’을 갖고 태어났다. 산부인과에서는 기쁨이 심장에서 ‘심잡음’(혈액이 이동할 때 심장에서 나는 소리)이 들린다고 했다. 기쁨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찾은 대학병원에서 기쁨이는 선천적 심장질환과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광주에서 살던 기쁨이는 생후 100일을 앞두고 서울 내 대학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도 한 차례 더 심장 수술을 해야만 했다. 모두 한 달 넘게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기쁨이는 각별한 돌봄이 필요했지만 그 몫은 늘 엄마에게 돌아갔다. 7남매의 아빠는 가족에게 무심했고 집 밖으로 나돌았다. 20대인 셋째가 태어났을 무렵 부부가 함께 하던 식당도 장사가 어려워 오래전에 폐업했다. 아빠는 돈이 생길 때마다 노름으로 탕진했고, 집에 들어와서도 누워 있기만 했다. 아빠는 현재 가족들과 함께 살지 않는다. 간간이 일자리를 구하는 아빠는 가족에게 전혀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빠의 근로소득 때문에 기쁨이네 가족은 최소한의 생계비를 수급받으며 살아간다. 기쁨이 이모의 도움으로 버티는 중이다.
재작년 찾아온 코로나19는 기쁨이의 건강을 더 나쁘게 했다. 코로나로 다니고 있던 특수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게 된 기쁨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학교에서 받던 운동 치료도 받지 못하게 됐고, 다운증후군의 영향으로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설상가상으로 기쁨이가 가장 많이 따르던 둘째 오빠 기정씨가 직업군인이 돼 집을 떠나며 기쁨이의 우울감이 커졌다.
가장 괴로운 것은 수면 장애다. 2019년 심장 수술 이후로 계속 잠이 들지 못했던 기쁨이는 지난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고서부터 불면증이 심해졌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곧잘 밤을 꼴딱 새운 채로 등교했고, 방학인 지금도 밤을 새우고 한낮에 겨우 잠이 들기를 반복한다.
기쁨이 가족은 현재 광주의 한 상가주택 꼭대기 층에서 살고 있다. 집 바로 앞이 도로변이라 밤낮으로 차와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는 조금만 창문을 열어도 굉음이 집 안으로 흘러든다. 청각이 예민한 기쁨이는 소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집 안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가족들이 깜박 잠에라도 든 뒤 홀로 집 밖을 나간 기쁨이를 경찰 지구대에서 데려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7남매를 홀로 길러온 엄마였지만 점점 힘에 부쳐갔다. 밤새 기쁨이가 어질러 놓은 집을 치우기 시작하면 다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치우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독박육아를 해왔고, 거기에 혼자 기쁨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번아웃이 온 거 같아요. 치워도 치워도 온갖 물건을 던져 놓으니, 치워서 뭐 하나 생각이 드는 거죠.” 기쁨이 엄마는 수시로 밭은 숨을 내쉬었다.
기쁨이 집에 있는 모든 수납장은 텅 비어 있었다. 수납장에 물건을 넣어도 기쁨이가 모두 꺼내놓기 때문이다. 온갖 물건과 버리지 못한 쓰레기들이 집 안 곳곳에 놓여 있었다. 가재도구와 식재료도 바닥에 덩그러니 있었다. 가끔 엄마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장을 보러 나가지만, 차마 요리할 힘이 나지 않아 외부에서 받아 온 도시락과 과자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식기 위에는 뽀얀 먼지가 앉아 있었다.
엄마의 건강도 함께 나빠지고 있다. 최근에는 족저근막염이 생겨 발끝이 찌릿찌릿한 고통이 찾아왔다. 지난해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기도 했다. “급하게 운전하다가 그만 사고가 났어요. 기정이를 비롯해 7남매를 키우다 보니 늘 혼자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라 마음이 조급해져요. 기쁨이도 언젠가 제 손을 떠나서 스스로 살아가야 할 텐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아요.”
이기쁨양이 2일 오후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기쁨양은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급격하게 체중이 늘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쁨이 가족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가 좀 엄하게 키웠어요. 아이들이 아빠 같은 모습으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특히 막내한테 제일 미안해요. 언니가 아파서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언니가 건강해야 가족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서운하지 않을까 싶어요.” 막내인 소망이는 잠자리로 쓰던 매트리스마저 기쁨이에게 빼앗겼으나 군소리 없이 집 안 구석에서 잠을 청한다. 일찍 철이 들어 기쁨이에게는 ‘언니 같은 동생’이다.
기정씨도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평소에도 남매 중 기쁨이를 가장 잘 챙겼다.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지만 휴가를 나올 때마다 기쁨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자 고민이 깊어졌다. 엄마는 혼자 기쁨이를 돌보느라 너무나도 지친 상태였다. 기정씨는 결국 전역하고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쁨이를 돌보기로 했다. “기쁨이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지금 함께하지 않으면 평생 마음의 한이 될 것 같다”는 게 기정씨의 생각이다. 기정씨는 직업군인 생활을 하며 살뜰하게 모아온 돈으로 생계비를 보태고, 동생들에게 몰래 용돈까지 챙겨 준다.
올해 신학대학에 진학한 기정씨는 학교 수업이 없는 평일 온종일 기쁨이 옆에 머무르며 기쁨이를 보살핀다. 면역력이 나빠 몸에 염증이 생기기 쉬운 기쁨이를 매일 한 시간 가까이 씻겨주기도 한다. 기쁨이가 버거울 법도 한데, 그저 오빠의 눈에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이다.
이기쁨양을 비롯해 7남매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 다운증후군이 있는 기쁨양은 소리에 민감해 큰 도로변에 위치한 이 집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로 집 안 살림을 어지럽힌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현재 기쁨이 가족에게 가장 급한 것은 오랫동안 쾌적하게 살아갈 집이다. 이전에도 시끄럽다는 이웃 주민의 민원이 자주 들어오고, 집 안을 매번 청결하게 유지할 수 없어 빈번히 전셋집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현재 사는 집에서는 소음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집 내부 환경도 기쁨이네 7남매가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 본래 상가 건물로 지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고, 4층 집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기쁨이는 한번에 계단을 오르지 못해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지금은 방치되고 있는 3층 집에서 30분 동안 숨을 고른 뒤 4층 집으로 올라간다.
엄마는 기쁨이가 다니는 병원과 막내의 학교가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다. 물론 괜찮은 집을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보증금도 현재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기적이 일어나서 기쁨이가 조금 더 건강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바람이다.
기쁨이가 건강해지면 더 많은 경험을 시키고 싶다. 축구를 했던 언니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막내처럼 예체능과 관련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막연한 마음이 있다. 최근에는 수영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티브이를 별로 안 좋아하던 기쁨이가 올림픽 수영 경기는 꼬박 챙겨 봤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관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니까 거기를 꼭 다니게 해보고 싶어요. 음악도 좋아하니까 피아노도 가르쳐보고 싶고요. 이것저것 시켜보고 싶은 건 많은데 당장은 몸도 아프고, 사정도 여의치 않으니 꿈만 꾸고 있죠.”
발을 딛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운 집에서도 희망은 남아 있다. 거실 한가운데 쌓인 마스크 봉지 사이에 기쁨이 형제자매가 손글씨로 쓴 듯한 종이가 하나 뒹굴고 있었다. 요일마다 기쁨이에게 누가 약을 주고, 누가 씻길지를 정해놓은 글이었다. ‘거실이나 음식물은 다 같이 정리한다. 기쁨이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 씻긴다.’ 누군가에게는 구겨진 종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기쁨이 가족에게는 함께 잘 살아 보고 싶은 절실함이 담긴 종이다.
이기정씨가 2일 오후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동생 이기쁨양을 달래고 있다.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한 기쁨양은 무기력과 가벼운 짜증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기쁨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기쁨이네 가족의 주거지원비와 생활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1천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기쁨이네 가족과 같은 어려운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기쁨이네 가족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굿네이버스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모녀가 ‘로이-디에츠 증후군’이 있는 은별이네 가족(가명)의 사연(<한겨레> 2022년 7월8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783만원(8월9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158분의 후원자가 “은별이 파이팅”, “은별가족 힘내세요”라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굿네이버스는 “은별이와 어머니를 위해 따뜻한 손길을 전해주신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은별이네 가족의 재활치료비, 주거유지비, 생필품 지원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또한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은별이네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은별이네 가정에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