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동취재사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전직 국정원장 2명을 함께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결국 검찰 손에 넘어왔다. 고발장을 받은 검찰은 사건 접수 하루 만에 배당 절차를 마무리했다. 문재인 정부 정보당국 수장들이 단숨에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전방위 전 정권 사정의 국면이 한 단계 격화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대검찰청으로부터 넘겨받은 두 사건 가운데 박지원 전 원장 고발 사건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에, 서훈 전 원장 고발 사건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에 각각 배당했다고 7일 밝혔다. 국정원은 전날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이 각각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법 등을 위반했다며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숨진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첩보 보고서 등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원장은 2019년 11월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당시 국정원의 합동 조사를 서둘러 마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앞서 공공수사1부는 이대준씨 유족이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고발한 사건을 이미 수사하고 있었다. 청와대·국방부·해경이라는 기존 수사의 삼각구도에,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까지 더해져 수사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공공수사1·3부 인원에 반부패수사부 인력을 포함한 대규모 특별수사팀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칼날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 정권 사정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이전까지 진행되던 ‘블랙리스트’ 사건 등이 인사·정책 등 통상업무 수행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탈법이 문제라면, 이번 사안은 예민한 안보 사항을 소재로 한다. 보안을 강조하는 특성 탓에 위법 사실이 발견될 경우, 핵심 권력층으로 곧장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중대한 국가범죄”로 규정하고 “검찰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조상준 기획조정실장이 이번 사정 작업을 기획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국정원은 대검찰청 형사부장 출신인 조 실장이 부임한 뒤, 1급 부서장 27명 전원을 대기 발령하고 전 정권 업무에 대해 고강도 감찰을 벌여왔다. 이번 고발 역시 이 감찰 과정에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전직 원장 2명을 고발할 정도 사안이면 당연히 조 실장이 감찰을 진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기관 핵심 포스트마다 대통령과 친밀한 검사를 임명하고, 검찰 수사를 도구 삼아 형사사법의 논리로 국정을 이끄는 ‘검찰 공화국’의 모습 그대로다. 윤 대통령은 앞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최근까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혀왔다.
다만 향후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전망은 엇갈린다. 공안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국정원 자료를 협조받을텐데, 국정원이 수사에 적극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이 확보한 자료와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 강도에 따라서 전 정권 대북관계 전반을 겨냥한 수사로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공안통 출신 변호사는 “보고서 삭제(박 전 원장)나 조사를 빨리 진행하라(서 전 원장)는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할지 법리적 다툼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국정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을 신속히 털고 가는 수준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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