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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천원 아낀 토슈즈 신고…오늘도 엄마 웃게 할 ‘도약’ 연습해요

등록 2022-06-09 05:00수정 2022-06-09 08:32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발레리나 꿈꾸는 중학생 주은이
재능이 있어 발레 선택했지만
엄마는 빠듯한 형편에 막막
주은(가명)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연습실에서 발레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은(가명)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연습실에서 발레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라베스크, 이걸 아라베스크라고 해요.”

1일 오후 서울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중학교 1학년 주은(가명·12)이는 발끝을 세워 균형을 잡고 다른 발을 등 뒤로 세우는 발레의 ‘아라베스크’ 동작을 선보였다. 발레라면 바로 떠오르는 동작 중 하나지만, 보기만큼 쉽지는 않다. 다리를 올리는 데에는 생각보다 배와 등에 강한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은이는 연습실 한편에서 몸을 풀고 난 뒤, 가볍게 아라베스크 동작을 취했다. 주은이는 “이 자세는 등 근육을 많이 써야 해서 다들 어려워하는데 이것만큼은 특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신체 근력과 유연성 덕에 주은이는 발레에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아이, 발레복을 입다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원래 주은이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주은이는 축구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게 좋았다. 유치원에서 걸스카우트단에 들어가 전국을 누빈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제 주은이는 실내 연습실 안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답답한 공간에서 버텨야 하지만, 그래도 주은이가 축구가 아닌 발레를 선택한 것은 무대에 올랐을 때의 희열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서 박수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요. 저를 응원해주는 것 같고요. 그동안의 스트레스도 사라져요.” 주은이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주은이가 본격적으로 발레에 입문한 건 주변 사람들의 권유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다’며 엄마(47)는 스포츠 바우처(기초생활 보장 가정의 아이에게 제공되는 복지 제도)로 주은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발레복을 입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발레는 주은이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취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축구든 발레든 발목을 다칠까 걱정해 오래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한 전문무용수가 주은이의 발레를 우연히 보고 “재능이 있으니 발레를 해봐라”라고 엄마에게 권유하면서 발레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엄마에겐 ‘발레를 시켜봐라’라는 소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주은이가 태어나기 직전인 2008년 말 외국에서 사업하던 주은이 아빠와 결별한 뒤 현재까지 혼자서 주은이를 키워왔다. 엄마는 “주은이는 호기심이 많고 두려움도 없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여서 혼자 키우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고 주은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가 일을 할 때면 지인이 주은이를 친딸처럼 봐줘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더 잘 키워보고자 했던 선택은 매번 실패로 돌아왔다. 주은이 엄마는 2019년 식당을 개업하기도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수입을 거의 거두지 못하고 2년 만에 약 1억원의 빚만 남기고 청산했다. 현재는 대구의 월세방 보증금 500만원이 유일한 자산이다. 다른 사람의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주은이 엄마는 당시에 겪은 과로와 스트레스 탓인지 자궁경부의 이형성증 진단을 받은 상태다.

주은(가명)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연습실에서 토슈즈를 신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은(가명)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연습실에서 토슈즈를 신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는 발레 이야기에 웃지 못했다

엄마가 발레를 권유받고 한 달을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 때문에 자식의 꿈을 가로막지는 말자’였다. 이전까지 발레에 문외한이었던 주은이 엄마는 그때부터 포털사이트에서 ‘발레’, ‘발레 교육’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주은이가 발레를 하기엔 너무 늦거나, 이른 나이는 아닌지, 장학금을 받고서 교육을 받을 수는 없는지를 수소문했다. 엄마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주은이가 많은 무용수 지망생 중에서 뚜렷한 재능을 보일 수 있는지였다. 주은이의 ‘의지’가 중요했다. 고민하던 엄마는 주은이에게 물었다. “전문무용수는 정말 힘들어. 그래서 그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겠어?” 주은이의 답은 바로 돌아왔다. “응, 발레가 재밌어. 그리고 행복해.” 주은이가 본격적으로 발레를 시작한 뒤 엄마는 주은이에게 “전문무용수의 꿈을 꾸는 것이라면 가벼운 마음이어선 안 된다”고 늘 강조한다.

다행히 주은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발레에 재능을 보였다. 이날 엄마는 주은이가 최근까지 받은 상장을 한 아름 들고 와 펼쳐 보였다. 주은이는 지난해 국제 콩쿠르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고, 올해는 발레로 유명한 중학교에도 입학했다. 영국로열발레스쿨 최종오디션 참가 자격도 최연소로 받았다.

하지만 성장하는 주은이를 보면서 엄마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경제적 부담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 주은이의 진학을 고민하던 주은이 엄마는 진학상담 교사로부터 “주은이에게 더 좋은 무용교육 환경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실력만 있다면 주은이가 대구든 어디에서든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좋은 환경’이란 서울을 의미했다. 고민 끝에 숙소를 제공하는 서울의 한 예술중학교로 주은이를 홀로 보냈다. 엄마가 가진 돈으로는 서울에서 둘이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주간에 식당 일을 하며 110만원을 번다. 건강 문제도 있고, 주은이를 챙기러 서울에 자주 다녀와야 해서 일을 더 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80만원(일반 수급자)과 주은이에게 들어오는 개인 후원금 등을 합쳐 225만원이 한달 소득이다. 주은이의 분기별 학비(200만원), 월 숙소비 80만원과 소그룹레슨비(월 40만~80만원)를 내고 나면 부족할 때가 많다.

그나마 주은이가 발레용품을 또래들보다 오래 사용하면서 버티고 있다. 엄마는 토슈즈에 들어가는 5천원 때문에 고민하고 한다. “가장 저렴한 발레용 신발이 5만원이에요. 그보다 좀 더 좋은 게 5만5천원이고요. 그래서 주은이한테 물어봤죠. ‘혹시 발이 좀 더 편하다는데 어때?’라고 말이에요. 사실 비용이 더 들어가는 거니까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주은이는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했어요.” 엄마는 주은이가 가정형편을 알아서인지 별다른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게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쪽에서 비우호국가에 토슈즈를 수출하지 않아 값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신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발레는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주로 배우기에 주변에선 엄마에게 ‘배부른 소리 한다’는 등의 핀잔과 손가락질도 많이 했다고 한다. “발레라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배우면 안 된다는 식의 인식이 힘들었어요. 전혀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무모한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주은이가 묵묵히 노력해서 발레에서 재능을 보여줘서 고마웠어요.”

주은(가명)이가 수상한 표창장 및 상장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은(가명)이가 수상한 표창장 및 상장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상을 받아도 앞길이 막막해요”

주은이는 일주일에 한번 엄마를 만나는 것 외에는 오롯이 혼자서 서울살이를 감당하고 있다. 현재 주은이에게 가장 힘든 건 외로움보다 ‘피곤함’이다. 주은이는 ‘졸리다’를 입에 달고 산다. 한창 친구와 놀기에도 바쁜 나이지만, 주은이는 일주일 내내 연습에 매달린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오후 2시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밤 9시까지 레슨을 받는다. 레슨이 없는 날에는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수업을 보충하거나 영어공부를 한다. 영어공부는 혹시나 찾아올 해외에서의 연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게 주은이는 매일 자정에야 잠이 든다. 콩쿠르가 있는 시기면 끼니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연습에 시간을 쏟는다.

혼자서 고된 훈련을 감당하면서도 주은이는 되레 엄마를 응원했다. 힘들 때면 주은이는 “엄마,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대”라고 말하는 아이다. 영국의 발레 오디션을 준비하던 때에는 주은이는 숙소에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적어 놓고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는 그런 주은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다른 전공생 아이를 보면 항상 가까이에 부모가 있어요. 아침저녁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부상이라도 생기면 그때마다 챙겨줄 게 많거든요.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이런 것들을 보면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져요.”

주은이는 이날 피곤한 기색을 보였지만 연습 때만큼은 줄곧 밝았다. “발레를 안 해본 친구들은 저한테 그래요. 발레가 뭐가 힘드냐고. 근데 진짜 힘들어요.” 말은 힘들다고 했지만, 주은이는 웃으며 얘기했다. “롤모델은 김연아 선수예요. 저는 멘탈이 약한 편인데 김연아 선수는 넘어지고 또 쓴소리를 들어도 그거에 별로 연연하지 않고 금방 털고 일어나잖아요.” ‘네가 꿈꾸는 발레리나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주은이는 “발레로 많은 감정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했다.

📌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주은이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네이버 해피빈에서도 후원에 참여하실 수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 대표번호(02-2078-7000)로 문의해주세요. 또한 후원에 참여하신 뒤 월드비전으로 연락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3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주은이 꿈을 잃지 않도록 발레 레슨비와 관련 용품 구입비 등을 지원하고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숙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월드비전은 주은이가 목표했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후원금을 투명하게 전달하고 보고하겠습니다. 목표 금액인 3천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주은이 가정의 뜻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가정에 지원됩니다.

📌 보도 이후
<한겨레>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한 ‘2022 나눔꽃 캠페인’에 파이퍼 증후군 앓는 락이 사연(<한겨레> 5월12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301분께서 “락이의 건강을 빕니다”, “락이가 엄마 아빠 옆에서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랍니다”라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122만6123원(6월6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소중한 후원금은 락이네 가정의 의료비, 긴급생계비로 전달하겠다. 목표액을 넘은 후원금은 락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락이네 가족을 위해 귀중한 나눔을 결심하고 실천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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