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타고 강원도 번져 주민 수천명 대피 산불 국가위기경보 ‘심각’ 발령 축구장 4621개 산림 사라져…10년간 최대 피해
4일 경북 울진에서 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북쪽인 강원 삼척까지 번지는 가운데 삼척시 원덕읍 고적마을 일대 산림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삼척시 제공
경북 울진군에서 난 산불이 강원도 삼척까지 번지면서 3300㏊가 피해를 당하고 주민 5천여명이 대피했다.
산림청 등은 4일 울진군에서 난 산불로 울진 3240㏊, 삼척 60㏊ 등 모두 3300㏊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축구장 4621개에 이르는 면적으로 최근 10년 동안 최대 피해 규모다. 산불 영향구역은 산불로 실제 탄 곳만이 아니라 연기, 재 등으로 피해받는 지역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실제 피해 면적과는 차이가 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이번 산불 영향구역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울진군과 삼척엔 건조특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져 있다.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강원과 경북에 오후 10시부로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이로써 인력·장비·물자의 동원, 위험구역 설정 및 대피명령, 응급 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 산불 대응에 필요한 긴급조치가 가능해졌다.
이날 울진군에서만 주택 75채가 불에 탔고, 북면, 죽변면 등 11개 마을에서 2525가구, 주민 4525명이 대피했다. 밤 11시46분께 울진국민체육센터 3층 체육관에는 산불을 피해 대피한 주민 160여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 대부분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로,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 보조기구를 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대피에 일부 주민들은 반려견을 담요에 감싸 품에 안은 채 센터 안으로 황급히 들어오기도 했다.
울진읍 봉평 2리 마을 주민 음연옥(85)씨는 “군청 직원들이 ‘몸만 빨리 피하라’고 하도 난리 쳐서 갑자기 나왔다. 이게 무슨 난리냐"고 말했다. 같은 마을 주민 신동애(72)씨도 “불길이 거세지니까 얼른 대피하라고 해서 치아 교정기도 못 끼고 나왔다. 큰일이다”라고 했다. 울진군 북면 검성리 마을이장 박영철(73)씨는 “우리 마을이 전체 50가구 정도 되는데, 절반 정도 화재로 피해 입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산불이 북상 중이기는 하지만 새벽에 바람 방향이 바뀔 가능성도 있어 울진 방향으로 다시 확산할 것을 대비해 경북 지원 인력을 울진군 소곡2리, 사계2리 쪽으로 전원배치했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울진군에 이어 삼척에도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산불이 2개 도에 걸쳐 진행되어 산불진화 통합지휘권을 경북도지사에게서 산림청장으로 이양했다. 오후 6시께는 울진에서 난 산불은 북쪽인 강원도 삼척 엘엔지(LNG)생산기지 2㎞ 인근까지 번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엘엔지 생산기지인 이곳에는 12기의 저장탱크가 있다. 소방당국은 화재진화차량 14대 등 장비와 인력을 집중 배치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산불이 7번 국도 인근 야산을 타고 확산하면서 해당 국도도 전면 통행이 금지됐다. 삼척시는 원덕읍 월천리 일대 주민 278명 등 인근 주민 1천여명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고 복지회관 등으로 이동하도록 돕고 있다.
산불은 국가보안시설인 한울원자력발전소 인근까지 번졌지만 초기에 불길이 잡혔다. 한울원전은 “원전 주변 산불은 초기에 진화됐다. 운행 중인 5기의 원전은 원자로 정지 등 설비 손상 없이 안전한 상태이며 인명 피해나 방사능 누출은 없다”고 밝혔다. 대형 펌프차 26대가 동시에 물을 뿌리는 효과를 내는 대용량방사포시스템 장비가 울산119화학구조센터에서 울진 원전에 출동해 있는 상태다.
산불은 이날 오전 11시께 울진군 북면 두천리 산154번지에서 발생해 강풍을 타고 계속해서 번져갔다. 그 영향으로 울진군 북면 일대가 한때 정전됐고, 북면 한국수력원자력 사택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도 정전으로 오후 1시30분께부터 2시간가량 업무가 중단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울진의 산불 상황을 보고받은 뒤 “최우선적인 목표를 인명피해 방지에 두고, 가용자원을 총동원해서 조기 진화에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한울원전 안전 조치에도 만전을 기하고, 산불 진화 소방대원의 안전에도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당부했다.
소방당국이 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산154번지에서 난 불을 진화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