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결혼식’ 의 한장면
‘연극’임을 알리지 않은 ‘지하철 결혼’ 상황극
누리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던 ‘지하철 결혼식’은 연극학도들의 ‘상황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화제를 부른 ‘눈물의 지하철 결혼식’이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 ‘연극사랑’ 동아리 학생 7명이 만든 ‘결혼식’이란 상황극이라는 사실이 16일 알려졌다.
16일 쿠키뉴스는 호서대 연극동아리 ‘연극사랑’이 2개월간의 연습을 한 뒤 지하철을 공연장소로 정하고, 세 차례 상황극을 공연한 것이 ‘눈물의 지하철 결혼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파장을 부른 연극은 지난 10일 서울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을 지나는 전동차 안에서 펼친 공연이다.
‘눈문의 결혼식’이 인터넷에 알려진 건 ‘이신범’이란 ID의 누리꾼이 14일 오후 1시쯤 한 사이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동영상을 올리면서부터다. 동영상에는 달리는 지하철 5호선에서 승객들을 하객으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 남녀의 애틋한 모습이 담겨 있다. 결혼식은 여자의 손을 잡은 남자가 자기소개를 한 뒤 결혼식을 지하철에서 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소개하면서 시작했다.
14일 오후 쿠키뉴스는 누리꾼의 제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 인터넷에 띄웠다. 쿠키뉴스는 신랑 신부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누리꾼을 감동시켰다고 주요하게 보도했다. 쿠키뉴스는 이 기사 이후로 이들을 돕겠다고 밝힌 사람들이 나오고 있고, 곳곳에서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는 후속기사까지 내보냈다.
‘눈물의 지하철 결혼식’이 보도되자 지하철5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는 5호선 역사 곳곳에 ‘이 신혼부부’를 찾는 안내문을 붙이고 언론은 이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한국, 문화, 조선, 오마이뉴스, 매일경제 등 유력 신문과 인터넷언론들이 가세했다. 이들 언론은 동영상의 내용을 근거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거나 감동이 넘쳐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들은 이 동영상과 기사를 보고 “돈을 모아 신혼여행을 보내주자”, “무료로 결혼식을 치르도록 돕겠다”는 등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지하철 커플, 신혼여행 보내줍시다’라는 네티즌 청원이 시작돼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약 7000명의 누리꾼이 서명했다.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푸쉬킨의 시 ‘삶’을 낭송하는 논평을 내는 등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틀 뒤 ‘진상’이 밝혀졌다. ‘지하철 결혼식’을 첫 보도한 쿠키뉴스는 16일 이 동영상이 ‘연극’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연극’의 연출을 맡은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 신진우(26)씨는 “각박한 세상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며 “감동을 받으신 분들에게 이 상황이 연극이라고 말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된 것 같아 죄송하다”고 쿠키뉴스는 전했다. 연극의 주인공 이아무개(21·남)씨와 도아무개(24·여)씨가 누리꾼과 시민들의 상상 이상의 반응에 마음 고생이 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론의 보도태도는 문제 없나?
문제는 언론이었다. ‘감동의 결혼식’을 보도한 언론들은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이를 사실로 단정하다시피 했다. 일부 기사는 끄트머리에서 ‘결혼식의 주인공을 찾지 못했다’며 ‘연극이 아니냐’는 일각의 의구심을 전달했지만, ‘감동적 사연’에 파묻혔다.
동영상을 첫 보도했던 쿠키뉴스는 “결혼식은 연극”이라며 자신의 보도를 뒤집는 보도도 가장 먼저 했지만,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은 첫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단독보도’만을 강조했다. 포털사이트들은 결혼식 동영상 내용이 알려진 뒤 메인화면에 주요하게 노출해, ‘연극의 감동’을 확산시켰다.
‘지하철 결혼식’이 첫 보도된 것은 14일 오후 4시 전후. 쿠키뉴스는 이날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 젊은 남녀가 ‘도깨비 결혼식’을 올린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네티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며 “한 네티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달리는 지하철 5호선에서 승객들을 하객으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린 남녀의 애틋한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쿠키뉴스는 “해프닝이 아니냐는 의견과 결혼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견이 빗발쳤다”며 “지하철 결혼식을 올린 이들의 신상과 진상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도 동영상을 포함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고, 기사에는 1만여건의 댓글이 달리며 누리꾼의 열띤 반응으로 이어졌다. 이 기사들은 포털사이트에서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고, 온-오프라인 언론사들도 앞다퉈 기사를 받았다. 여기에 누리꾼 반응이 곁들여져 목메인 ‘지하철 결혼식', ‘지하철 결혼식' 주인공 아시는 분~’, ‘지하철 결혼 커플, 신혼여행 보내주자’ 등 검증없는 후속보도가 이어졌고, 연극이라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연출이 아니라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을 돕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 태도를 유지했다.
<오마이뉴스>만이 16일 “좀더 신중했어야 할 '지하철 결혼식' 보도, 사과드립니다”는 알림을 통해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에 참여한 축의금을 돌려준다는 공지를 내보냈을 뿐, 나머지 언론에서 잘못된 보도에 대한 사과를 찾기 힘들었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연구위원은 “언론은 기본적으로 사실확인을 해야 하는데, 특히 긍정적이고 내용이 좋은 미담기사일수록 사실확인을 안하려는 경향이 많다”며 “미담기사일수록 사실확인에 대한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기사가 양산될수록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에서 댓글과 상호작용해서 진의와 관계없이 댓글 중심의 뉴스를 재생산해 본질에서 부풀려진 측면도 크다”며 “다행히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 다행이지만 사실확인을 하지 않은 언론의 뉴스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사실 검증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리꾼 ‘neoljw83’도 “언론의 보도는 정말 믿을 게 못된다. 동영상이 진리인 양 설쳤던 낚시질 언론과 누리꾼…”이라고 언론의 보도태도를 힐난했고, ‘jungdaun88’는 “쿠키뉴스 웃긴다. 저번 기사에서는 ‘지하철 결혼식, 연극 아닐 것’이라고 기사 내고서는…”이라고 꼬집었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지하철 승객? 고아? 누리꾼? 연극참여대학생?
‘눈물의 결혼식’이 ‘연극’으로 알려진 후 반응은 엇갈린다.
어찌되었든 감동에 메마른 사회에 ‘가난하지만 소중한 사랑’을 깨닫게 해준 계기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이 결혼식은 연극이었습니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결국 ‘기만’이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감동이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한 누리꾼은 ‘가짜 결혼식’을 연출한 학생들에게 “승객을 기만했다”, “연극임을 밝혔어야 했다”, “사람의 감정을 이용했다”고 소리를 높였다. 누리꾼들은 이들 학생이 가입한 대학교 동아리 홈페이지에 “선량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난했고, 포털사이트 등에도 댓글이 8천여개의 비난글이 쇄도했다.
‘pullggot’는 “동영상을 보고 몇 번을 눈물지었다. 마음 속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부디 행복하게 살아가길 빌었고, 며칠을 가슴이 따뜻해 있었다”며 “연극이었다니 허탈감과 배신감이 밀려온다. 이제 실제상황이 생겨도 믿지 않을런지 모르겠다”고 불신 조장에 대해 씁쓸해했다.
결혼식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밝힌 ‘안산신도시'는 “이 연극을 연극 무대에 올렸다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었지만 그 두 분은 지하철에 탑승했던 승객을 기만했다”며 “나는 왜 그 두 분이 지하철에서 연극 연습을 빌미로 승객들에게 사기를 쳤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승객'은 “지하철 승객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우롱한 짓이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손님'은 “당연히 진짜인 줄 알고 마음이 아파서 동영상이 나왔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며 “기사가 나왔을 때 빨리 연극이었음을 밝혔어야 했다”고 지적했고, ‘대장'은 “진심으로 축하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수 있냐? 실험상대를 시민으로 삼았냐”고 비난했다. `cody2'는 “사람들의 감정을 허위로 자극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며 "나름대로 참신하게 연습하려 한 의도는 알겠지만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일로 사랑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이 메마르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불신풍조가 더욱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누리꾼 ‘김현'은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생겨도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선뜻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동화가 생각난다”고 꼬집었다. ‘휘리릭'은 “앞으로 이번 일과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그게 진실일지라도 사람들이 믿어줄까? 삭막한 세상이 더더욱 삭막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호서대 지도교수 “연극 맞다…학생들의 순수함을 이해해달라”
한편, 이 동아리 지도교수인 호서대 연극과 김대현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하철 결혼식은 연극이 맞다”며 “연극에 참여한 6명의 학생들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이외의 사태에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며 사태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결혼식'을 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지하철 연극을 기획했다는 보도가 맞다”면서 “시간적인 제한과 분위기 때문에 연극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학생들의 순순함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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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결혼식’ 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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