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은 2015년 7월17일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세를 뚫고 양사 주주총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삼성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합병안이 통과된 날부터 두 회사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합병 주총일이었던 2015년 7월17일 각각 10.39%, 7.73% 하락 마감했고, 다음 영업일인 2015년 7월20일에도 2거래일 연속 하락해 삼성물산은 6만원(전 거래일 대비 3.38% 하락), 제일모직은 17만5천원(2.23% 하락)에 장을 마감했다. 주가가 연일 내려가면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기가 가진 주식을 회사에 ‘이 값에 사달라’고 청구하는 가격인 ‘주식매수청구가’(삼성물산 5만7234원, 제일모직 15만6493원)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었다. 자칫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 아래로 더 빠지면 많은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제일모직은 사흘 뒤인 23일 자사주 취득 계획을 발표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그해 7월24일~10월23일까지 제일모직이 자사주 250만주를 장내매수하고, 이를 통해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게 되면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시장에서는 삼성이 양사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합병 가결 이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비율 1:0.35에 연동해 움직여, 제일모직 주가가 오르면 삼성물산 주가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21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직원 10명의 ‘그룹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 네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강아무개 삼성증권 수석은 이런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의 구체적인 계획안을 세운 인물이다. 2015년 7월 삼성증권 홀세일본부에 근무하며 기업의 자사주 매입 업무 등을 담당한 강씨는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업무도 맡아 밑그림을 그렸다. 강씨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1일까지 모두 세 번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안 작성 배경, 자사주 매입 주문 당시의 상황 등에 관해 설명했다.
■ 7분 만에 2천원 상승한 주가는 삼성증권의 고가매수 주문이 신호탄이었나
검찰이 강씨를 증인으로 부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이 삼성물산의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결정된 것이 아닌지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과정에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시세조종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시세조종 혐의를 두고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이 제일모직 주식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해 주식 가격을 상승시키는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을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시세조종이라고 지목한 행위는 △단주주문 △고가매수주문 △물량소진주문 세 가지다.
단주주문은 10주 이하의 매수주문을 반복적으로 제출해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행위다. 많은 물량을 매수해야 하는 증권사는 일부 수기로 주문을 넣기도 하지만 상당량을 프로그램 매매를 활용해 자동주문을 넣는다. 초 단위로 몇 주씩 자동으로 매수주문을 넣는 시분할 매매방식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업무를 위탁받은 삼성증권 등이 시분할매매를 활용해 직전가(가장 최근 주식매매가 체결된 가격. 매도가 중 가장 낮은 가격인 매도1호가와, 매수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인 매수1호가 중에서 결정됨) 대비 한 호가(500원) 높은 값에 10주 매수주문을 제출해 체결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시세조종성 단주주문을 했다고 본다.
반면 변호인단은 증권사가 대량매수에 나서는 경우 시장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분할 매매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이 사건의 경우 가격을 ‘매도1호가’로 설정하고 자동주문을 걸어놨기 때문에 직전가가 매수1호가인 경우 불가피하게 직전가보다 한 호가 높은 매도1호가의 고가주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반박했다.
고가매수 주문이란 매수자가 직전가 또는 상대호가(매도1호가)보다 높은 가격의 매수주문을 반복적으로 내 주가가 강하게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행위다. 검찰은 삼성증권이 자사주 매입 기간(2015년 7월24일~2015년 10월23일)과 주식매수청구권 기간(2015년 7월17일~2015년 8월6일)이 겹치는 시기에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가주문이 발생했다고 본다. 검찰은 그해 7월31일 증인 강씨와 제일모직 실무자 최아무개씨와의 통화 녹취록, 당시 제일모직이 주문했던 호가장을 번갈아 제시하며 인위적인 시세조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① 2015년 7월31일 오전 10시17분~10시18분 강씨(삼성증권)-최씨(제일모직) 통화 녹취록 일부
“저희 매물이 계속 쌓이네요.”
(최씨)
“(괴리율) 3% 안에 들면 그때….”
(강씨)
“저는 사실 뭐 그렇게 급한게 아닌데.”
(최씨)
“위에서 그러시는 거예요? 일단 오전에 한번 올리는….”
(강씨)
검찰은 이 대화를 두고, 제일모직 주식이 체결되지 않은 채 쌓이자 최씨가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마친 뒤 강씨가 ‘오전에 한번 주가를 올리’기 위해 고가주문을 넣어 매수세를 유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삼성증권의 2015년 7월31일 오전 10시20∼27분 호가장 일부 재구성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삼성증권의 호가장을 보면, 그해 7월31일 오전 10시20분 삼성증권이 직전가(16만5500원) 대비 한 호가 높은 16만6천원에 제일모직 33주 매수주문을 내 체결돼 주가가 상승했고, 이어 오전 10시22분 16만6500원(직전가 16만6천원)에 29주 제출·체결돼 주가가 상승했다. 오전 10시23분엔 16만7천원(직전가 16만6500원)에 10주 제출·체결돼 주가상승, 10시27분 16만7500원(직전가 16만7천원)에 10주 제출·체결돼 주가가 상승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제일모직 주가 및 거래량 그래프를 제시하며, 삼성증권이 고가매수를 넣은 10시20분께부터 거래량이 증가해 7분 만에 주가가 2천원 상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증권의 고가매수 주문이 다른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유인했다는 것이다.
② 2015년 7월31일 오전 10시30분 강씨(삼성증권)-최씨(제일모직) 통화 녹취록 일부
“지금 수준에서 어떻게 받치실 계획인가요, 아니면….”
(최씨)
“예, 여기서 이게….”
(강씨)
검찰은 주가가 2천원 오르고 3분 후인 같은 날 10시30분, 최씨가 다시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지금 수준에서 받칠 것인지”를 묻는 전화를 했다는 것도 시세조종 의심을 사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증인은 최씨와 오전 10시17분 통화에서 ‘올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후 오전 10시20분~10시27분 주가가 16만5500원에서 16만7500원으로 2천원 상승했습니다. 10시30분 통화는 최씨가 ‘지금 수준에서 받칠 것인지 더 올릴 것인지’를 물은 것 같은데 어떤가요?”
(검사)
“저희는 지정가 주문을 내지 않고 시장 흐름에 따라 매도1호가로 주문을 내기도 하는데, (매도1호가 주문은) 시장 흐름에 따라 같이 움직입니다. 시분할 매매 수량이 10주, 20주인데 (소량 주문이기 때문에) 호가를 잡고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때문에 주가가 오른 게 아니라, 주가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시분할 매매가 들어가다 보니 직전가 대비 매도1호가로 주문이 들어가면서 당연히 높은 호가로 주문이 들어갔습니다.”
(증인)
“증인이 오전 10시18분에 ‘올린다’고 했고 10분 사이에 2천원이 올랐습니다. 그러고 3분 뒤 제일모직 쪽에서 ‘이 수준에서 받칠 거냐’라고 물었는데, 이때 주가 2천원이 오른 게 우연이라는 건가요?”
(검사)
“매수 수량으로 볼 때 저희가 끌어올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증인)
■ 매도1호가 잔량 186주에서 1150주 주문은 ‘물량소진’ 주문?
검찰은 삼성증권이 이날 비슷한 시간대에 매도1호가에 쌓인 호가잔량을 흡수하기 위한 물량소진성 주문도 냈다고 주장했다. 물량소진 주문은 매수자가 매도1호가에 나온 물량을 지속해서 흡수해 매도1호가를 올리거나, 마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다른 투자자들을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다.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강씨가 7월31일 ①번 통화를 마쳤을 때인
오전 10시19분 제일모직 매도1호가는 16만6천원에 형성되어 호가잔량이 6600여주인 상황이었다. 삼성증권은 10시22분9초~48초까지 16만6천원에 1213주, 721주 등 대량의 수기주문을 냈고, 오전 10시22분48초 호가잔량이 186주 남은 시점에 삼성증권이 16만6천원으로 1150주 매수주문을 내면서 매도1호가가 16만6500원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검찰은 이런 행위들이 모두 물량소진을 통한 시세조종성 주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오전 10시22분 제일모직의 매도1호가가 16만6천원, 호가잔량이 6600여주인 상황에서 삼성증권이 16만6천원에 5904주 주문을 제출해 740주를 제외한 대부분이 체결됐습니다. 매도1호가 물량 대부분이 소진되면 매도1호가가 올라가고, 다음 주식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높은 가격에 주문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검사)
“저희만 매도1호가로 주문하는 게 아니라 시장도 (같은 가격에) 사는 거라 매도1호가를 (삼성증권이) 소진했다고 보긴 곤란합니다.”
(증인)
“6600여주 매도1호가 물량이 삼성증권의 5900주 주문으로 다 소진됐습니다. 제일모직 쪽과의 통화 직후 매도1호가 물량을 소진한 것은 ‘주가를 올린다’는 목적하에 이뤄진 것 아닌가요?”
(검사)
“저희 주문형태만 보면 매도1호가 잔량이 줄어든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자사주 매수 주체로서 수급에 영향을 줄 순 있는데, 매도1호가로 주문하는 게 사는 입장에선 일반적이어서요.”
(증인)
이 부회장 쪽도 호가장을 제시하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7분만에 2천원이 올라 매도1호가가 16만7500원이 됐다곤 하나 그 과정에서 삼성증권의 주문 수량이 적어 영향을 미칠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이마저도 매도1호가로 프로그램 매매를 걸어놓은 상태라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고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7월31일 사례 외에도 다른 날짜의 사례를 들며 삼성증권이 물량소진성 주문을 냈다고 했는데, 변호인단은 자사주 매입량이 워낙 많은데다 시장에서 확실히 매수하기 위해서는 하락장에서도 매도1호가에 주문을 내는 건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검사는 2015년 7월31일 10시20분~27분 인위적인 시세상승을 목적으로 삼성증권이 고가매수 주문을 제출해 주가를 2천원 상승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문 체결률을 높이면서도 가장 싼 가격에 매수하는 매도1호가로 지정한 시분할 자동주문 제출이었지, 직전가 대비 높은 고가매수로 지정한 게 아니었지요?”
(변호인)
“네, 그렇습니다.”
(증인)
“(강씨와 최씨의 ①번 통화 뒤인) 이날 오전 10시18분부터 (②번 통화가 있기 전인) 10시30분까지의 호가장을 보면, 이 시간대에 삼성증권이 제출한 주문은 3만2343주로 이중 고가매수 주문 물량은 1454주로 전체 물량의 4.4%정도입니다. (중략) 검사는 삼성증권이 고가매수를 시작한 10시20분부터 거래량이 증가했다고 하는데, 주문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고가주문은 전체 주문의 4%에 불과했고 매도1호가 자동주문이라 시장상황에 따라 고가주문으로 제출된 것뿐이지요?”
(변호인)
“네, 그렇습니다.”
(증인)
“검찰은 삼성증권 등이 54만여주의 물량소진주문을 냈다고 기소했습니다. 검사가 매도1호가 주문낸 것을 물량소진이라고 했는데, 매도1호가 주문은 일반 주식 투자자도 다 하는 것 아닌가요? 금지된 건가요?”
(변호인)
“아닙니다.”
(증인)
“직전가 주문만으로 체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루에 10만, 20만주를 사야 하는데 주가가 하락세라고 해서 지속해서 하락하는 게 아니고 반등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락세라고 매수1호가로만 주문해야 한다면 사야 하는 물량을 다 사지 못하게 됩니다.”
(변호인)
“네, 맞습니다.”
(증인)
한편, 강씨 증인신문 이전인 지난달 16일 증인으로 소환됐던 삼성물산 합병티에프(TF) 실무자 박아무개씨는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 재판기일인 오는 28일에 2015년 7월 당시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트레이더였던 삼성증권 직원 김아무개씨를 증인으로 불렀다. 검찰은 자사주 매입을 직접 수행한 김씨를 상대로 매입 과정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신문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