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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안진 ‘합병비율 보고서’는 사서 고생한 리포트”…삼성 압박 시인?

등록 2021-08-16 04:59수정 2021-08-16 08:28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 ⑦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사회 앞두고
안진, 양사 ‘합병비율 평가 보고서’ 제출에 난항
자문사 삼성증권 직원 “안진, 물산 가치 안내려”
검찰 “‘합병비율 타당’ 보고서 위해 안진 압박”
삼성쪽 변호인 “평가 과정에 삼성 압박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가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정농단 사건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된 지 207일 만에 가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안진 리포트(수정본 드래프트, 사서 고생한 리포트)입니다. 일단 결론 수정했고, 보고서 타임라인은 오늘 중으로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사회를 하루 앞둔 2015년 5월25일, 두 회사 합병 절차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 합병 티에프(TF)로 파견 나간 이아무개 당시 삼성증권 기업금융팀 부장은 직속 상사인 한아무개 삼성증권 기업금융팀장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여기서 ‘안진 리포트’란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이하 안진)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1:0.35)이 타당한지를 검토한 ‘합병비율 약식 보고서’다. 삼성물산으로부터 보고서 용역을 받은 안진은 데드라인까지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1:0.35란 합병비율은 적정하다’는 취지의 약식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보고서를 직접 받아본 이씨는 상관 한씨에게 이를 보내면서 “사서 고생한 리포트”, “결론 수정”이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그룹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11번째 공판에서 두 번째 증인인 이아무개 현 삼성증권 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마무리됐다.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두 회사를 동시에 자문했는데, 이씨는 삼성물산 합병 티에프에서 안진 등 삼성물산 쪽 자문사들의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간사 역할을 했다. 그랬던 이씨가 안진의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듯한 정황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나자, 검찰과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를 두고 긴 시간 공방을 벌였다. 앞서 안진 회계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삼성이 요구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제일모직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식으로 보고서 내용을 조작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 검찰 “안진 압박한 것 아니냐”

검찰은 삼성증권·삼성물산이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등의 지시에 따라 안진 회계사를 압박해 ‘두 회사 합병비율은 타당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어냈다고 보고 있다. 통상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일정 기간 주가 평균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보고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이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점, 즉 ‘제일모직 주가는 고평가, 삼성물산 주가는 저평가’된 시기를 골라 합병을 진행했기 때문에 합병비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하였고, 이에 따라 ‘합병비율은 적정하다’는 외부기관의 평가보고서를 받아두려 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삼성이 독립적으로 평가작업을 해야 하는 회계법인에 삼성물산 평가치를 낮추라고 압박했다는 게 ‘안진 압박 의혹’이다.

검찰은 합병 자문사인 삼성증권이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합병비율 적정성 평가보고서를 회계법인에 의뢰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이 재판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한아무개 전 삼성증권 기업금융팀장은 2015년 4월28일 회계법인·법무법인 등 합병 자문사에 맡길 업무가 무엇인지를 정리한 ‘자문사별 아르앤아르(R&R)’ 문건 초안을 본 뒤, 회계법인의 역할에 “약식평가 보고서(현 합병비율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작성”이란 말을 넣으라고 지시한다. 평가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처음부터 ‘합병비율이 적정한 범위 내에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쓰라고 못 박아뒀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지난달 8일 증인 이씨에 대한 검찰 주신문에서는 안진이 ‘1:0.35 합병비율이 타당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어내기 어려워한 정황이 나타난다. 안진은 당초 2015년 5월15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도 보고서를 만들지 못하다가 일주일 뒤인 22일에서야 제출했다. 공판에서는 증인 이씨가 ‘합병비율은 타당하다’고 평가한 제일모직 쪽 자문사인 삼정케이피엠지(KPMG) 회계법인(이하 삼정)의 평가결과를 안진에게 알려주는 등 보고서 작성에 관여한듯한 이메일도 공개됐다. 2015년 5월20일, 이씨는 당시 제일모직 합병 티에프에 파견 나간 삼성증권 동료직원 김아무개씨로부터 삼정의 합병비율 평가보고서를 받아보고 ‘삼정 결괏값을 안진에 넌지시 알려주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안진은 물산영업가치를 5.7조, 삼정은 3조, 2.7조만큼 (평가) 차이가 나는 거 같습니다. 모직 가치는 바이오 부문을 나스닥 상장 상대가치도 구하면서 늘리려고 하는 것 같고요. 물산 가치를 낮추면 상대적으로 모직 가치 증대 부담이 덜한데…. 잘 안 내리네요. 안진과 회사에 삼정 결과 넌지시 알려주면서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회계법인에 다른 회계법인의 수치를 알려주며 여기에 맞추라고 압박을 가한듯한 메일에 대해 증인은 “안진의 상황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물산 가치를 낮추면 모직 증대 가치가 덜한데 잘 안 내린다’라는 건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취지인가요?” (검사)

“안진이 저한테 (가치평가 작업에 대해) 물어보기에, 물산은 (안진의 평가금액과) 시가총액 사이에 괴리가 있는데 잘 안 낮추고 있구나 생각한 겁니다.” (증인)

“증인은 삼성물산 합병 티에프 소속이잖아요.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협상의 기초가 될 합병비율 적정성 평가보고서에서 오 히려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어야 한다는 취지로 의견을 밝힌 이유는 뭔가요?” (검사)

“제가 (의견을) 밝힌 게 아니라 안진의 의견을 전달한 겁니다.” (증인)

“안진에 삼정 결과 알려주면서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도록 하겠다’는 건 삼정 결과를 안진에 제공하고 압박해서 안진도 삼정과 마찬가지로 ‘합병비율이 적정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겠다는 것 아닌가요?” (검사)

“압박이 아니고 일정상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가 안 되면 최종 결과물이 안 나오니까 최종적으로 내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상의 제한을 드린 겁니다.” (증인)

“증인은 ‘안진이 물산가치를 잘 안 내리네요’라고 썼습니다. 증인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내리네요’라는 거지 안진 (의견을) 전달하는 게 아니잖아요.” (검찰)

“제가 내려야 한다는 건 아니고 제가 봤을 때 삼성물산 가치를 조정 안 하면서 계속 징징대니까 ‘○○(메일 상대방)아 얘네 안 내려’ 이런 겁니다.” (증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서 고생한 리포트’는 무슨 뜻?

2015년 5월20일 이씨는 평가 업무를 맡은 안진 회계사 ㄱ씨에게 삼정의 결괏값인 ‘적정 합병비율 최소를 0.319로, 최대를 0.520으로 해서 0.35는 적정하다’는 내용을 “모직 측 가치평가 요약. 아래 참고용으로 메모 드립니다”라며 보내주었다. 그 다음 날인 21일에는 증인 이씨의 직속상사인 한아무개 기업금융팀장에게 메일을 보내 “안진은 모직 가치를 삼정 수준으로 (17~18조원)로 맞췄는데, 물산 가치에 대해서는 약 3조원을 다운시키지 못해 잠시 후 우아무개 삼성물산 부장과 미팅을 통해 최종 협의·확정할 예정입니다”라고 보고한다. 그리고 이날 증인 이씨와 안진 회계사 ㅇ씨, 우아무개 삼성물산 부장 3자 미팅에서 우 부장이 ㅇ회계사를 질책하듯 큰 소리를 냈고, 그 다음날이자 합병 이사회 전날인 22일, 회계사 ㅇ씨는 1:0.35 값에 맞춘 합병비율 평가보고서 중간본을 삼성물산과 삼성증권에 송부했다. 같은 날 이씨는 상사 한씨에게 “안진 리포트(수정본 드래프트, 사서 고생한 리포트)입니다. 일단 결론 수정했습니다”라며 안진의 평가 보고서를 송부하는 것으로 ‘안진 보고서 사태’는 마무리된다.

안진이 ‘1:0.35란 합병비율은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만들긴 했으나, 안진의 ㅇ회계사는 이를 송부하며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기존에 1조원으로 평가받았는데 이번 보고서에 5조원으로 평가해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되며 △제일모직 건설부문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매출 10배, 영업이익 5배 크지만 양사를 동일 값으로 평가해 평가금액 적정성에 문제 제기가 있을 것 같고 △제일모직 바이오 지분 가치를 셀트리온의 평가값보다 높이 평가해 이 또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며 ‘평가값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아 외부에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이처럼 “(안진이) 물산 가치 3조원을 다운시키지 못하고 있다”, “(안진 보고서는) 사서 고생한 리포트”라는 표현이 안진을 압박해 원하는 보고서를 받아낸 정황이라고 본다. 반면 이씨는 ‘3조를 낮추려 한 건 안진 쪽’이라고 반박했다.

“증인이 안진의 삼성물산 평가 값에 대해 ‘3조 다운을 못 시킨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검사)

“안진이 못 하고 있다는 걸 전달한 겁니다.” (증인)

“무려 3조원이나 낮춰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검사)

“그건 모르겠고 시총이랑 (평가 금액) 괴리 정도가 3조원이었던 걸로 보여서요.” (증인)

“‘(제일모직 가치는 삼정과) 맞췄네, (삼성물산 가치는) 다운 못 시키네’ 이런 (정해진) 값에 맞추는 듯한 표현을 왜 썼나요?” (검사)

“안진이 그렇게 목표를 설정한 거고, 그들의 행위를 제가 묘사한 겁니다.” (증인)

“안진이 알아서 (삼성물산 가치를) 내려 잡아 합병비율을 맞추지 못하고, 삼성물산 티에프의 요구를 받자 비로소 억지로 낮춰 수정한 걸 증인이 ‘사서 고생한 리포트’라고 한 것 아닌가요?” (검사)

“(안진 회계사들이) 밤에 사우나가고 이런 게 안 좋아 보여서 얘기한 겁니다.” (증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 변호인단 ‘삼성 압박 없었다’ 총력 대응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지난 12일 공판에서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안진이 시총에 맞춰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어 했고, 삼정의 결괏값을 알고 싶어 한 것도 안진이었다는 것이다. 안진의 평가 과정에 삼성의 압박은 없었다는 얘기다.

또한 기업의 객관적인 가치는 시총이기 때문에 시총과 현저한 차이가 있었던 안진의 평가값은 애초에 조정이 불가피했다고도 말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주신문에서 제시된 이메일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고자 했다.

“증인의 이메일처럼 안진은 시가총액과 평가값에 큰 차이가 발생해서 여러 조정을 검토하던 중이었지요?” (변호인)

“네.” (증인)

“상장사에 대한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평가자는 여러 전제를 달아서 적정하다고 판단되는 추정치를 대략 산출하고, 시장주가와 비교하면서 추정치를 변경하거나 유지하는 과정 반복하고 그 과정을 거쳐서 평가결과를 산출하는 거지요?” (변호인)

“네.” (증인)

“(2015년 5월20일 보낸 메일 속) ’물산 가치를 낮추면 모직 증대 가치가 덜한데 잘 안 내린다‘ 이 부분은 삼성물산 시총이 그때 9조원 가까이 됐는데, 영업가치에서만 2.7조원 차이가 나니 조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편하게 얘기한 것 아닌가요?“ (변호인)

“네 맞습니다.” (증인)

“같은 메일에서 ‘안진에 삼정 결과 넌지시 알려주면서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무슨 의미인가요?” (변호인)

“제가 (워킹그룹) 반장인데 2015년 5월20일까지 책임지고 진도를 끝내야 하는데 (보고서가) 안 나오니까, 안진에서 삼정 값도 알고 싶어하니 결괏값 정도 알려주겠다 이런 뜻으로 쓴 것 같습니다.” (증인)

“안진은 딜로이트와 제휴한 4대 회계법인입니다. 그런 전문가가 다른 회계법인 평가를 보더라도 자신들이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변호인)

“삼성물산 분석 리포트는 많거든요. 그런 리포트도 보면서 했을 거라, 그 정도 수준에서 참고자료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증인)

“증인은 상관 한아무개 팀장에게 ‘안진은 제일모직 가치는 삼정 수준으로 맞췄는데 삼성물산 가치는 3조원 다운을 못 시키고 있어 우아무개 삼성물산 부장과 미팅해 최종 협의하겠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변호인)

“ㅇ회계사가 계속 저한테 ‘3조원 조정을 못 하겠다’고 해서, 저도 ‘더는 저한테 얘기하지 마라, 현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당신들이 보고서 마무리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삼성물산에 얘기해라, 내가 배석하겠다’ 해서 2015년 5월22일까지 리포트를 내든지 매듭을 짓자 이런 내용의 이메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증인)

증인 이씨는 안진이 먼저 삼정의 결과치를 알고 싶어했다며 두 회계법인을 학생에 비유했다. 그는 “똑같은 시험문제고 학생 두 명이 있는 것”이라며 “서로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궁금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변호인단은 이씨와 ㅇ회계사, 삼성물산 우 부장 3자 미팅에서 우 부장이 큰 소리로 ㅇ회계사를 질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보고서 제출 일정이 임박한 상태에서 안진이 추가 자료 요청을 하니 분위기가 안 좋지 않았냐’, ‘우 부장 목소리가 원래 크지 않냐’고 했고, 이씨는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ㅇ회계사가 중간 보고서를 제출하며 ‘세 가지 부분에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으니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서도 “최종본 보고서에서는 안진이 해당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보완했다. 일부는 처음부터 문제가 안 됐던 것”이라고 방어했다.

다음 기일인 오는 19일에는 삼성증권 소속으로 미전실에 파견되어 삼성증권 직원들과 합병 업무에 대해 소통했던 최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지난 13일 법무부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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