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개인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에 대한 이 부회장 변호인단의 항변은 이렇게 요약된다. 두 회사 합병으로 합병 전 삼성물산 주식이 하나도 없던 이 부회장이 합병 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리스크도 해소됐지만, 합병은 이 부회장 개인이 아니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각각의 회사, 각각의 주주들에게 모두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5회 공판에서는 증인 한아무개씨에 대한 이 부회장 쪽의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한씨는 전직 삼성증권 아이비(IB)본부 기업금융팀장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작업 및 관련 문건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변호인단 “프로젝트지, 대주주 지분 아니라 그룹 지분 높이자는 문건”
이 부회장 변호인(김앤장)은 이날 재판에서 상당 시간을 할애해 프로젝트지 문건이 나온 배경 및 문건 내용을 설명했다. 변호인의 설명을 종합하면, 프로젝트지가 작성된 2012년 12월은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당시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등 주요 후보들의 공통 공약은 재벌그룹의 고질적 문제였던 순환출자 규제 및 금산분리 강화였다. 대선 이후 순환출자 규제 입법이 이뤄진다면 재벌그룹들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지분을 팔아야 했고, 금산분리 강화 법안이 도입되면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의결권이 제한되거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에스디아이(SDI)→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에스디아이’ 순환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순환출자를 끊기 위해 삼성에스디아이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7.4%를 처분하게 되면 삼성물산에 대한 ‘그룹지분’(계열사 보유지분+대주주 보유지분) 13.8%가 6.4%(이건희 회장 등 대주주일가 1.4%)로 줄어들게 되고, 변호인단은 이 경우 헤지펀드 등의 공격대상이 되어 삼성일가가 경영권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4년 외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당시 그룹지분 10.8%) 지분을 대거 매입해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듯 동일한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 그룹 경영권을 이 부회장 일가가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 등 대주주들이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순환출자 규제·금산분리 규제 같은 각종 규제가 도입돼도 ‘지분을 강제로 팔아야 할’ 위험이 적은 이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의 삼성물산 지분을 늘리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논의 끝에 대주주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계열사 삼성에버랜드(당시 기준 31.37%, 이후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와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합병 전 삼성물산에 대한 그룹지분은 13.8%(대주주 지분 1.4%)였지만, 합병하게 되면 통합물산에 대한 그룹지분은 40.5%(대주주 지분 25.4%)로 급격히 늘어난다. 합병 전 삼성물산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 부회장의 통합물산 지분도 16.4%가 된다.
“결국 문건에서 ‘대주주의 삼성물산 및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 취약’이라고 언급해놓은 것은 ‘금융사 지분이나 순환출자 지분은 언제든 감소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대주주 지분은 감소 위험이 없다, 그런데 그런 대주주 지분이 취약하다, 그래서 현 지배구조가 취약하다’ 이런 논리로 보이는데요.”
(변호인)
“전체적으로 그런 내용이고요, 금산결합이나 순환출자 이슈가 없도록 하는 방법이 결국에는 대주주가 지분을 많이 보유하는 방법인데, 기본적으로 대주주가 가진 지분이 취약하다는 측면을 표시한 것 같습니다.”
(증인)
“증인 문건에서 ‘대주주 지분이 취약’하다고 언급한 취지는 금산결합 구조나 순환출자하고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이건희) 회장님 지분이 너무 적습니다, 회장님 지분 올려드려야겠습니다’ 또는 ‘(이재용) 부회장님 지분이 아예 없습니다, 부회장님 지분 만들어드려야겠습니다’ 이런 의미의 기재였나요?”
(변호인)
“그건 아닌 것 같고요, 계열사 지분, 대주주 지분 포함해 그룹지분을 어떻게 할지가 일차적 포커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증인)
(중략)
“프로젝트지는 삼성물산과 에버랜드 합병 후 지분율을 표로 정리했는데, (중략) 대주주 지분은 25.4%로 증가하고 계열사 지분은 15.1% 증가해 결과적으로 그룹지분이 40.5%로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어 있습니다. 보면 대주주 지분 증가를 별도 항목으로 분석한 게 아니라 그룹지분 요소 중 하나로 분석했는데, 대주주 지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대주주 지분 증가를 통해 그룹지분을 올리고 이를 통해 지배구조를 안정화하는 게 주된 목표였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변호인)
“중요한 건 그룹지분이 얼마나 나오는지가 제일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중 대주주는 구성요소 중 하나였고 (중략) 해당 (대)주주가 얼마나 (지분이) 늘었냐는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증인)변호인단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이 부회장과 삼성물산만이 아니라 에버랜드에도 이득이라고 덧붙였다. 프로젝트지가 작성될 무렵인 2012년 12월 에버랜드의 계열사 상대 매출(내부매출) 비중이 50%에 가까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내부거래 비중 30% 이상)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내부매출 비중이 작은 삼성물산과 합병할 경우 내부매출 비중이 감소하면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변호인단은 또 두 회사의 합병은 사업적 측면도 고려된 결과라고도 했다. 변호인은 증인 한씨에게 “에버랜드는 삼성물산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합병하는 경우라도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는데 삼성물산과 합병을 검토한 이유”를 물었고, 증인은 “삼성물산과 에버랜드가 사업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에버랜드 사업양수도도 “계열사들 이해관계 충분히 반영” 해명
앞서 검찰은 에버랜드-삼성물산 합병 사전작업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주축이 되어 향후 에버랜드가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동시에 에버랜드에 걸려있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부담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각 계열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에버랜드와 다른 계열사 간 사업 양수도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이다. 에버랜드가 △2013년 9월 내부거래 비중이 낮은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하고 △에버랜드 사업 중 내부매출 비중이 높은 건물관리사업(에스원에 양도)과 급식사업(삼성웰스토리로 분할)을 떼어내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회피한 것 등이 그것이다.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계열사의 이해관계가 충실히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6회 공판기일에 나온 2013년 6월 작성 ‘에버랜드 사업조정안’ 문건을 보면,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에 대해 해당 문건은 “(제일모직 주력사업인) 전자소재사업, 화학 사업과 연관성이 없으므로 에버랜드가 인수해 주력사업으로 육성, 제일모직은 소재사업에 집중”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제일모직의 전자소재사업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56.3%였고, 패션은 16.7%였다. 변호인은 2013년 9월 제일모직이 에버랜드에 패션사업을 매각하기로 한 뒤 제일모직 주가가 3.26% 오른 점, 이에 반발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이 전체 주식의 0.5%였다는 점, 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이 수차례 가격협상을 벌였고 에버랜드가 당시 업계 1위인 엘지패션의 시가총액보다 30% 높은 1조500억원에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한 점을 들어 회사 및 주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사업 양수도라고 주장했다. 에스원이 에버랜드로부터 건물관리사업을 양수한 것도 에스원의 건물보안사업과 시너지가 있기 때문에 양수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단은 앞서 검찰 주신문에서 제시됐던 메일 내용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앞서 검찰이 제시한 2013년 8월 삼성증권이 작성한 ‘거래진행 명분’ 문건 및 관계자들의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양도에 대해 ‘제일모직이 먼저 패션사업 매각을 결정했고, 에버랜드에 패션사업 양도 의사를 타진했다’는 ‘거래 명분’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 제일모직 임원이 “패션사업 양수도를 제일모직이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에버랜드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정리해 달라. 제일모직 패션사업이 연 6% 성장하고 있는데, 지금 와서 제일모직이 매각하는 건 논리가 없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제일모직 경영진 의사와 무관하게 패션사업 매각이 결정됐고, 삼성증권이 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거래진행 명분을 지어냈다는 의심을 살만한 내용이다.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거래진행 명분’문건에 나온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매각결정의 배경이 “제일모직은 전자재료 분야를 향후 성장분야로 선정했고,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 사업조정 필요성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이전에 나온 문건 및 이사회 논의 등을 고려했을 때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했다. 변호인은 또 증인에게 “에버랜드 제안, 미전실 제안으로 (패션사업 양수도가) 거래됐다고 하면 사업적 측면은 다 무시되고 마치 에버랜드나 미전실 의사에 따라 매각이 결정된 것처럼 오해될 상황이지 않았나”라고 했고, 증인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너무 걱정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회의에서 제일모직 임원이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이 연 6% 성장하니 매각하는 건 논리가 없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그동안 제일모직이 주주 상대로 패션사업도 성장시킬 거라고 얘기해왔다”며 “패션사업을 성장시키겠다고 얘기해놓고 제일모직이 먼저 매각을 제안했다고 하면 입장이 곤란해지니 ‘매각엔 찬성하지만 에버랜드에서 제안했다고 정리해달라’고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증인은 “(해당 임원) 본인이 하고 있던 업무와 매각을 선제안했다는 게 상충하지 않나 하는 부담이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고 답했다.
프로젝트지 전제는 ‘이건희 일가의 그룹 경영권 유지’
한편, 반대신문에서는 ‘이건희 일가가 그룹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취지의 질문도 나왔다. 증인도 “그런 전제로 프로젝트지 문건을 만들었다”고 했다.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프로젝트지 검토 이유에 대해 ‘이건희 일가의 그룹에 대한 지배력 유지하는 측면에서 검토했던 것이고, 그것이 기업의 경쟁력 유지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전반을 검토했다’고 말했습니다. 증인을 비롯한 삼성증권 아이비본부는 이건희 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하는 게 삼성 기업집단 및 소속기업 경쟁력 유지에 도움된다고 판단한 거 같은데요.”
(변호인)
“검토할 때 전제가 현재 대주주 및 계열사, 삼성그룹이라고 하는 집단이 현재 경영권을 유지하는 게 회사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하에 경영권 유지하고 강화하는 게 전제였습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 판단할 순 없지만, 자문하는 입장에서 경쟁력 유지에 도움된다는 측면에서 전제해 검토했던 것 같습니다.”
(증인)
(중략)
“(프로젝트지를 작성할 때) 기존의 지배구조가 유지되는 걸 전제로 했다는 것도, 기존 삼성 지배구조라든가 총수에 대해 ‘아 이거 문제다, 개선하고 바꿔야겠다’ 였다면 당연히 걱정했을 텐데 그런 요구라든가 수요가 없었고, 기존 체재가 외부적 규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검토하게 된 것 아닌가요?”
(변호인)
“규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외부에서도 많았습니다. (중략) 전제는 외부에서 얘기하는 대부분 논의가 ‘경영권을 바꿔보자’가 아니라 ‘어떻게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현 체제를 개선할지’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증인)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후 기일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논란의 핵심인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란 합병비율의 정당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합병비율에 대한 변호인단의 반격 및 합병 성사를 위해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했다는 의혹, 삼성물산 주요 주주 일성신약에 대한 매표 시도 의혹 등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진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