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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모든 학생에 아이패드 주고 수업에선 ‘해킹과 윤리’ 가르쳐

등록 2014-01-08 21:19수정 2014-01-09 14:58

존 팰프리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교장(맨 왼쪽)이 지난해 겨울학기에 진행한 ‘해킹’ 수업 장면. 이 수업에 참여했던 졸업생 가브리엘 피셔(왼쪽 둘째)는 “토론이 예측할 수 없고 흥미로워서 수업 외 시간에도 학생들은 페이스북 그룹 채팅으로 토론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필립스고교 제공
존 팰프리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교장(맨 왼쪽)이 지난해 겨울학기에 진행한 ‘해킹’ 수업 장면. 이 수업에 참여했던 졸업생 가브리엘 피셔(왼쪽 둘째)는 “토론이 예측할 수 없고 흥미로워서 수업 외 시간에도 학생들은 페이스북 그룹 채팅으로 토론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필립스고교 제공
[2014 기획] 미국 필립스 고등학교
부시 대통령 부자 배출한 명문고
디지털 전문가 팰프리 교장 초빙해
교육 과정에 디지털 기술 적극 활용
디지털 세계 탐구하는 수업도 개설

“디지털시대 위기보단 기회가 중요
신기술의 건설적 사용법 교육해야”
2012년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필립스고교)는 한 디지털 전문가를 교장으로 초빙하겠다고 발표해 미국 교육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초빙 인물은 하버드 법대 교수이자 하버드대 부설 인터넷과 사회연구소(버크먼센터) 선임연구위원인 존 팰프리 교수였다.

1778년 설립된 이 학교는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등 유명인사들의 출신교로도 유명하다. 매년 졸업생의 3분의 1가량은 아이비리그와 스탠퍼드·매사추세츠공대(MIT)로 진학한다. 경제지인 <포브스>는 이 학교를 2010년 전미 고교 중 3위로, 한 입시정보업체(Top Test Prep)는 2013~2014년 최고의 기숙학교로 선정했다. 왜 이런 명문 고교가 디지털 전문가를 교장으로 모셔왔을까?

팰프리 교장은 지난달 1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235년 전통의 필립스고교는 미국 최고의 교육을 하는 학교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적응할 필요를 느꼈고 그래서 나를 초빙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팰프리 교장은 2008년 로스쿨 교수로 재직할 때 국내에도 소개된 <그들이 위험하다>(원제 Born Digital)를 비롯해 디지털 시민의식 교육과 법률 문제에 관한 여러 저서를 펴낸,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미국 명문 사립고교도 디지털 시대의 물결을 적극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디지털 교육 전문가를 교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는 “내 역할은 학생들이 중국 상하이나 미국 뉴욕 같은 국제 경제계에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 활용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팰프리 교장이 부임한 이후 필립스고교에는 변화가 시작됐다. 모든 학생들에게 태블릿피시인 아이패드가 지급됐고, 어떤 교칙도 부과되지 않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와 달리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을 수업시간에 써도 처벌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대학생처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팰프리가 온 이후 디지털 시대에 관해 토론하고 배우는 수업이 생겨났다. 우선 팰프리 교장 자신이 ‘해킹: 실험 수업’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강의계획서엔 “부정적인 해킹부터 긍정적이고 사회를 위한 해킹까지 넓은 관점으로 바라본다. 위키리크스처럼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선 해킹을 해도 되는가?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 국가안보국(NSA) 도청 폭로로 본 정부의 해킹은 옳은가? 이런 질문을 다룬다”고 나와 있다. 해킹을 둘러싼 윤리 문제를 다루는 수업으로, 대학 수준의 토론이 이뤄지는 것이다. 학교가 개설한 300개 넘는 과목에는 ‘뉴미디어 연구’, ‘저널리즘’처럼 디지털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여럿이다. 지난해 ‘해킹 수업’을 들은 졸업생 가브리엘 피셔 학생은 “수업 때 스카이프로 ‘칸 아카데미’의 대표 살만 칸과 같이 토론을 하면서 책 너머에 있는 전문가들의 생각을 직접 접한 것은 인상이 깊다. 나는 이 수업에서 ‘해킹당했고’, 나 스스로를 ‘해커’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시스템을 개선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 말이다”라고 말했다.

필립스고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간다. 2012년 11월 미국 대선일엔 ‘저널리즘’ 수업과 ‘뉴미디어 연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트위터와 블로그에 실시간으로 감상평을 썼다. 지난해엔 한 학생의 제안으로 필립스고교에서 지식공유 행사인 ‘테드 엑스 필립스 아카데미’(TEDx)를 열기도 했다. 대부분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페이스북으로 채팅방을 만들어 토론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

필립스는 고교 중 처음으로 ‘칸 아카데미’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 학교 수학 교사들이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보내면, 칸 아카데미에서 이를 동영상 무료 강의로 만들어 온라인에 공개한다. 살만 칸 ‘칸 아카데미’ 설립자는 필립스 교지 인터뷰에서 “우리 사명은 세계 수준의 교육을 누구든, 세계 어디든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계 수준이라고 하면 필립스고교 같은 곳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이 학교를 국내 고교와 평면 비교하기는 어렵다. 1년 등록금이 통학생은 우리돈 3912만원, 기숙사생은 5032만원으로 웬만한 대학교보다 비싸, 재정이 풍족하다. 수업당 수강생은 평균 13명이고, 교사 1인당 학생이 5명이다. 교사 222명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45명, 석사는 125명으로 교사의 수준도 높다.

대입 경쟁이 국내처럼 치열한 미국 명문 사립고에서 디지털 교육 전문가를 교장으로 초빙하고 뉴미디어를 교육하는 수업을 한다는 사실은 교육의 미래에 시사점을 준다. 팰프리 교장은 “많은 학교가 태블릿피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누구도 교육에서 기술의 역할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급속히 커지고 있다는 전제를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필립스고교가 이런 흐름에서 가장 앞장서야 하고, 좋은 방향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디지털 신기술을 교육에 도입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미래 교육은 전통적 접근방식과 첨단 기술의 짜릿한 접근방식이 융합되어 이뤄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대전환기에 실패와 성공 모두로부터 어떤 교육방식이 효과가 있는지 또는 없는지를 배워갈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신기술을 어떻게 건설적으로 사용할지, 동시에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떠나서 스크린 바깥에서 하는 활동을 해야 할지 배우도록 도울 것이다. 디지털 신기술엔 위기와 기회 모두 있다. 그러나 기회가 위기보다 중요하며 학교가 디지털 사용을 가르치고 개입하는 것은 학생의 미래에 절대적인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보스턴/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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