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비턴의 홀리필드 학교 컴퓨터 교실에서 지난달 20일 대런 본힐 교사(오른쪽)와 학생인 크리스틴(16·가운데), 샤이앤(16·왼쪽)이 안전한 인터넷 사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국 런던 홀리필드 학교
디지털 안전교육 앞서
학생들 달라진 관점·경험 이해
교사·부모 모두 신뢰 보여주며
함께 논의하고 때론 적극 개입
학교선 정보통신기술 교육 강화
학부모에게도 메일 등 정보 제공
“젊은 세대에 기술의 진보가 가진
위험성도 알리는 게 우리의 역할”
디지털 안전교육 앞서
학생들 달라진 관점·경험 이해
교사·부모 모두 신뢰 보여주며
함께 논의하고 때론 적극 개입
학교선 정보통신기술 교육 강화
학부모에게도 메일 등 정보 제공
“젊은 세대에 기술의 진보가 가진
위험성도 알리는 게 우리의 역할”
지난달 20일 찾은 영국 런던 외곽 서비턴의 홀리필드 학교 교정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아담한 2층짜리 학교 본관 건물 2층에 있는 컴퓨터실에 들어서니 이번 학기 마지막 정보통신기술(ICT) 수업 마무리를 앞둔 담당 교사와 아이들이 취재진을 맞았다. 아이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었고, 대런 본힐 부교감 겸 정보통신기술 교사는 한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5살 아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을 내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학교에서 형들이 하는 것을 본 뒤에 따라 받았다고 하더라고.”(교사) “큰일이네요. 유료는 아니었나요?”(여학생 크리스틴·16) “유료 앱은 아니었어.”(교사) “저도 무료 게임을 다운받아 시작했는데 게임을 하다 보니 결국 돈을 쓰게 되어 있더라고요. 조심하세요.”(여학생) 본힐 교사는 이밖에도 아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화제 삼아 크리스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본힐은 “인터넷 안전에 대한 우리의 기본 방침은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사례를 화제로 학생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디지털 기기 사용 증가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영국 역시 청소년의 디지털 사용이 빠르게 늘면서 그에 따른 각종 문제점으로 고민이 깊다.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하는 영국의 방송통신 담당 부처인 ‘오프콤’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영국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12~15살 청소년의 비율은 62%로, 2011년 41%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2012년에 이미 6~19살 아동·청소년의 스마트 기기(스마트폰과 태블릿) 보유율이 64.5%에 달했다.
이날 만난 영국 학생들이 겪고 있는 경험은 우리나라 어느 중·고등학교에서나 맞닥뜨릴 수 있는 비슷한 문제들이었다. 벤(16)은 많은 영국 남학생들처럼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엑스박스 게임을 주로 하는데 길면 하루 6~7시간도 한다”고 말했다. 엑스박스는 텔레비전 화면에 연결해 작동시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콘솔형 게임기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컴퓨터 온라인 게임을 주로 하는 데 비해 영국 청소년은 주로 콘솔 게임을 즐긴다. 오프콤 조사를 보면 지난해 영국 청소년(12~15살)의 주간 평균 게임 시간은 10.7시간이다.
샤이앤(16·여)은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주로 사용하는데 지난해 겪은 상황을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일주일가량 휴가를 떠났는데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인터넷을 쓸 수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어요. 스스로 무기력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니까요.”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 등 어른들의 접근법에서 국내와 차이가 있다. 본힐 부교감은 “학생들의 달라진 경험과 관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홀리필드 학교는 지난해 9월 전교 7~11학년 학생 9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7~11학년은 우리나라 중1~고2에 해당하는 나이로, 학생들은 이 과정 뒤에 대학을 준비하는 ‘식스폼’(sixth form)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게 된다. 이 학교는 설문을 통해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 습관과 방식은 물론, ‘친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다분히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까지 물었다고 한다. 본힐 부교감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통적 개념들도 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올 1월 식스폼 과정 학생 200명에 대한 조사까지 마친 뒤 결과가 나오면 이를 디지털 안전 교육에 활용할 방침이다.
디지털 안전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은 편이다. 오프콤 조사를 보면 영국 부모 가운데 85%가 자녀들의 디지털 안전을 위해 개입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45%가 자녀들의 디지털 경험에 대해 자녀들과 정기적으로(적어도 한달에 한번 이상)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부모가 기기 사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전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조처(43%)를 비롯해 기술적 개입을 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62%에 달했다. 샤이앤은 자신이 중독과 비슷한 증상을 느꼈을 때 “엄마와 이에 관해서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와 동시에 ‘자신의 아이들이 인터넷을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답한 부모의 비율도 83%에 이르렀다. 부모로서 가능한 조처를 적극 취하되 아이들을 신뢰하는 편인 셈이다.
이런 현상에는 높은 사회적 관심과 정부 조처가 바탕에 깔려 있다. 영국 정부는 2008년 디지털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기반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 뒤 학교 수업에서 디지털 안전에 대한 교육을 강화했다. 영국은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영어, 수학, 과학 등 3개만 핵심과목으로 두고 나머지 9개 기초과목을 학교마다 재량권을 두고 골라서 가르치게 하고 있다. 인터넷의 안전한 사용은 이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과목에 포함되어 있다. 본힐 부교감은 “정보통신기술은 올해 우리 학교에서 기초과목 가운데 학생 선호도 1위를 차지한 중요 과목이다. 디지털 안전은 교과 내용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술·가정 등에서 부분적으로 정보통신기술에 대해 가르칠 뿐 인터넷 안전에 대한 정규 교과 내용이 따로 없는 우리와 차이를 보인다.
디지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이 학교는 다른 과목들의 교육과 학교 운영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학교 수업 과목 가운데 10개가 학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의 ‘홀리필드 채널’을 통해 동영상으로 제공된다. 학생들은 필요하면 집에서도 언제나 수업 내용을 다시 볼 수 있다. 또 학부모들이 자녀들에 비해 디지털 정보에 뒤처지지 않도록 매 학기 한번씩 디지털 안전에 대한 학부모 강좌를 하는 한편 가정통신문, 학부모 전자우편, 누리집 안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홀리필드는 영국 전역의 공립학교 3079개 가운데 1090위 수준인 보통의 영국 학교다. 디지털 교육에 특화된 학교도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관련 교육이 다음 시대에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다. 본힐 부교감은 “기술의 진보는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항상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 점을 지속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올해 9월부터 정보통신기술 과목을 기존의 컴퓨터 사용자 중심의 내용에서 개발자 중심의 내용으로 전면 개편한 ‘컴퓨팅’이라는 과목으로 확대해 가르칠 방침이다.
런던/글·사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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