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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실이데아’ 지금도 유효하다

등록 2012-10-31 20:36수정 2012-11-01 08:58

우리도 자치하고 싶어요

대다수는 학생회조차 무시
인권조례 시행에도 반영안돼
경기도교육청 초중고 설문
‘학교 민주적 문화’ 요구 많아
최훈민(17·서울 강북구)군은 재작년 중학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교칙개정운영위원회에 학생위원으로 참여했다. 친구들과의 논의 끝에 복장·두발 규정을 바꿔야 할 이유를 꼼꼼하게 정리해 회의에 들어갔지만, 교사가 발언을 못하게 막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규정에 나와 있는 학생회 임원 구성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예산 수립 권한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체벌과 외투 착용 금지 문제를 다룬 기사도 학교 신문에 실을 수 없었다. 경기도의 한 정보통신 관련 특성화고에 진학해선 휴대전화 사용 금지에 대한 의견을 학교 공청회 때 전달하려다 가로막혔다. 이런 일을 겪으며 그는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최군은 “‘(학교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선생님이 말하더라”며 “그때 이게 구조적 문제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올해 초 자퇴했고, 지난 5월 탈학교 청소년들이 중심이 된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들어 청소년 참여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학생인권과 자치에 대한 담론들은 넘쳐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선 여전히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9~10월 초등학생 566명, 중고생 17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학생인권이 더욱 잘 보장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학교의 민주적 문화 및 분위기 정착’(23.0%)을 꼽았다. 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정치적 권리는 학교 현장에서 더 필요한 것이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두발 제한으로 강제 이발을 당하거나 체벌을 겪으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참여위원회에서 활동중인 중학교 3학년 서준영(15)군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됐음에도 학교에선 체벌·복장 등에 대해 옛 교칙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서태지의 ‘교실이데아’가 나온 1990년대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고교 2학년인 고준우(17)군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들의 발언권을 높여달라는 건의를 하고, 몇몇 선생님들도 함께 고민해주시지만 학교 자체가 학생회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인데다 학생들도 자신이 참여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퇴행적인 학교 현실에 교사들이 느끼는 답답함도 크다. 서울의 한 중학교 김영희(가명·34) 교사는 “최근 두발지도에서 학생들이 심하게 규제를 당해 교장에게 항의를 했지만, 항의할 때뿐”이라며 “학교 규정 개정이나 복장 단속 등도 학생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하는데, 거의 모든 학교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0년 펴낸 ‘아동·청소년 발달권·참여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고생의 80.7%가 두발규제 경험이 있고, 70.1%가 부당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교지나 학교 신문 제작 때 자율권을 보장받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48.9%에 머물렀다. 징계 대상 학생에게 소명권을 주지 않는다는 응답도 24.5%나 됐다. 교내·외 동아리 활동을 모두 허용하는 경우는 18.4%로 매우 적었고, 응답자의 절반이 약간 넘는 51.4%는 청소년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제교육협의회(IEA)의 2009년 국제시민의식교육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청소년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은 조사 대상 36개국 중 35위,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능력’은 꼴찌였다. 정부를 신뢰하는 학생 비율은 20%(조사 대상국 평균 62%), 학교를 믿는다는 비율은 45%(조사 대상국 평균 75%)에 그쳤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고 김원태 교사는 “유럽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학교폭력,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심화되면서 2002년 이미 16개국에서 ‘시민교육’을 별도 교과목으로 분리했다”며 “우리도 학생들을 ‘시민’으로 인정하면서 학교 운영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기술과 책임 있게 행동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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