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민(앞줄 맨 왼쪽)씨가 대입 시험을 석달 앞둔 지난 3월 생일을 맞은 반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정해민씨 제공
영국서 중고교 마친 대학생 정해민씨
인권이 최고의 아동·청소년 복지다
②저녁이 없는 아이들
한국에서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영국의 소도시 베드퍼드로 유학을 떠나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이번에 노팅엄트렌트대학 미디어학과에 입학한 정해민(19)씨가 영국 청소년의 학교 및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베드퍼드하이스쿨에 함께 다닌 친구들에게 한국 학생의 생활을 말해주면 한결같이 “그렇게 학생을 억압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한국에서 당연시되는 학생들의 경쟁을 이곳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의 친구들과 간간이 메신저를 할 때는, 대부분 ‘네가 부럽다’는 말과 함께 시작되고, ‘남아 있는 숙제 때문에 인터넷을 할 시간이 없어 가야 한다’는 소리로 끝이 난다. 그렇게 자신을 억압하면서까지 공부하는 친구들은 항상 자기 성적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적이 전보다 떨어지면 격려 대신 혼부터 난다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항상 풀이 죽어 있다. 항상 학교가 너무 싫고 집에도 있기 싫다는 소리가 태반이다.
나는 영국에서 베드퍼드에 있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영국과 한국의 학교생활은 과목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자신이 싫어하는 과목이라고 해도 필수로 영어 단어를 줄줄 외워야 하고, 수학 문제를 하루 종일 푸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고등학교(A-Level)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는다.
우리 학교는 수업시간이 종종 비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시간에 스스로 공부를 했다. 모르는 것은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주는 경우도 자주 봤다. 그 친구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억압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공부를 한다. 영국 학생들은 공부 잘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당하지도 않고, 친구들을 경쟁자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취미생활을 하며 스스로 자기계발 시간을 갖는다.
수업 분위기는 굉장히 자유롭다. 의견이 맞지 않아도 선생님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고, 내가 낸 의견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는다.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교육이 아닌,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이해하게 해주는 수업은 재미있다. 수업시간에 친구들은 항상 열성적이었다.
방과 뒤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는다. 학원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다. 아이들은 방과 뒤에 친구들끼리 모여 시내에 가거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찾아가 물어본다. 자신이 방과 뒤에 무엇을 할지는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사립학교든 공립학교든 대부분 비슷한 시간에 끝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 공원에 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보러 가는 아이들도 있다.
시차 때문에 영국에서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한국의 저녁이다. 일어나서 친구들과 메신저를 하면 그들은 항상 학원 가기 전에 인스턴트식품을 먹는다고 얘기한다. 학원 가면 휴대폰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틈틈이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대화하기보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고 한다. 영국 아이들 대부분이 집에서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하는 것과는 많이 비교됐다.
가끔 주말에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했다. 한국의 친구들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어도 부모님과의 대화는 결국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해”라는 소리로 끝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 학생들은 “드디어 해방이다”라고 외치고 영국 학생들은 학교와 선생님들이 보고 싶을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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