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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요약, 뼈와 살을 고르는 밤

등록 2010-07-18 16:27수정 2010-07-18 16:29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13
[난이도 수준-중2~고1]

“응? 뭐가 어쩌고 어째?”

귀마개를 쓰고 과장스럽게 악을 쓰는 연예인. 상대방은 연방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곤 뒤돌아 다음 사람의 귀에 대고 어떤 소리를 내지른다. 고함치기와 의아한 대꾸의 릴레이. 한국방송의 장수 오락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의 오래된 풍경이다.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제목이었던가. 네댓 명으로 구성된 양 팀끼리 처음에 뿌린 특정 단어나 문장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느냐를 놓고 겨루던 게임이었다. 다들 귀가 막힌 채 입 모양이나 감으로만 맞히다 보니 애초의 말이 생뚱맞게 바뀌곤 했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배꼽을 잡았다.

현실세계에선 어떨까. 귀마개를 착용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다.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라면,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을 무리 없이 옮길 수 있을까. 책이나 영화에서 본 내용을 제3자에게 쉽게 전할 수 있을까. 오늘의 주제는 ‘남의 말 요약하기’다.

<가족오락관> 게임에선 기껏 몇 개의 음절로 구성된 낱말이나 짧은 문장이었지만, 현실에서 오고 가는 것은 복잡한 사실관계가 얽힌 ‘이야기’다. 물리적인 듣기를 넘어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뒤 또다른 이에게 간결하고 센스 있게 배달하는 일은 글쓰기 실력의 내공을 판가름할 만한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면 귀마개를 쓰지 않고도 악을 쓰게 된다. “무슨 말이야? 뭐가 어쩌고 어째?”

“한낮에 이도령이 산책을 나가서 춘향이를 만났지. 둘은 본 순간 사랑을 하게 되었어. 또 어느 날 이도령은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에 가고 말았지. 춘향이는 슬펐어. 사또는 춘향이를 만났어. 춘향이가 수청을 거부하자, 춘향이를 엄청나게 괴롭혔지. 하지만 다행히도 이도령이 과거시험에서 급제해서 암행어사로 돌아와 사또를 붙잡고, 춘향이를 구해서 춘향이와 사이좋게 오랫동안 살았대.”(고은서)

소설 <춘향전>을 읽고 초딩 은서가 요약한 내용이다. 은서는 무려 여섯 번을 줄였다. 처음엔 에이(A)4 종이 한 장 반을 채웠다. 절반을 줄이라고 했다. 그런 뒤 또 절반을 쳐내라고 했다. 그러길 여러 차례. 짧은 분량에 <춘향전>의 요점을 정리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사또의 등장’은 특히 뜬금없다. 중딩 준석의 다음 글은 상대적으로 노련한 편이다.


“16살 이도령은 방자와 함께 남원 광한루에 갔다가 춘향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도령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간다. 그 사이 새로운 사또가 등장,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지만 지조 있는 춘향이가 그것을 거절함으로써 감옥에서 칼을 쓰고 있게 되며, 이도령은 어사가 되어 옛 고향인 남원으로 오는데 그곳에서 춘향이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춘향을 구한 다음 사또를 혼내준다는 것.”(고준석)

준석의 글은 정확하고 조리 있는 편이다. 재미는 없다. “정확하게, 조리 있게, 재미있게”는 남의 이야기를 요약할 때 필요한 세 가지다. ‘정확하게’는 팩트(사실)의 엄밀성을 말한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파하기도 만만치 않다. 사소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꼭 생겨서다. ‘조리 있게’는 간추리는 능력이다. 뼈와 살을 잘 골라내 상대방이 알아먹기 쉽게 구성하기다. ‘재미있게’는 말을 흥미롭게 주무르는 테크닉이다. 여기선 생략한다.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압축하기는 ‘창의력’에 해당한다. 창의적 요약은 튼실한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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