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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은유의 대포, 아는 만큼 빗댄다

등록 2010-07-11 15:46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⑫
[난이도 수준-중2~고1]
“월드컵은 닭다리다.”

네모게임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심심풀이 빈칸 채우기를 했다. 먼저 “월드컵은 ( )다.” 초딩 은서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평소에도 사랑해 마지않던 치킨의 특정 부위였다. 왜? “축구할 때마다 사람들이 집에서 통닭을 시켜 먹기 때문에.” 중딩 준석은 “월드컵은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세계대전처럼 죽기 살기로 겨루잖아.” 그밖에도 눈물, 웃음, 빨강, 휴식시간(공부 안 하고 티브이 볼 수 있어서) 등의 답이 이어졌다. 다음으론 ‘아빠’와 ‘엄마’라는 제시어를 주고 정의를 해보라고 했다. “아빠는 박카스다.”(집에서 놀게 해주기 때문에) “엄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다.”(표정이 극단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렇게 놀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 기초 트레이닝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네모게임은 결국 ‘은유놀이’다. 은유란 무엇인가? ‘은유’라는 낱말로 은유놀이를 해볼까?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은유는 대포다.” 함포, 대전차포, 야포, 박격포, 자주포, 그리고 메타포가 있는 것이다. 말장난이라고? 맞다. 메타포(metaphor)는 실제 대포가 아니라 은유를 뜻하는 영어단어일 뿐이다. 완전 엉터리는 아니다. 메타포는 비유와 상징이라는 장약과 탄환으로 작동되는 대포다. 죽은 언어들이 널브러진 울타리를 넘어 생생한 표현을 쏘아 올린다는 점에서 진짜 대포다. 메타포를 멋지게 발사하면, 빵 터진다. 감동이나 웃음으로, 또는 허를 찌르며 폭발한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은유가 없는 글은 사막이다(이것도 은유다). 곧이곧대로만 쓰면 황량하고 정감이 떨어진다.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게 이야기를 전하려면 무언가에 빗대는 비유법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며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것과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라고 하는 것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전자엔 맛이 없다.

은유를 하기 위해선 연상을 해야 한다. 무언가 밑도 끝도 없이 비슷한 낱말들을 떠올려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 사이에 구전됐던 다음 노랫말은 은유의 기초를 말해준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조금 무리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원숭이는 백두산”이라는 규정도 인과관계를 책임질 수 있다. 끊임없이 연관된 단어와 관념을 찾는 과정 속에서 은유는 완성된다.

은유의 친구는 직유다. 내 경험으로, 이 둘은 중·고등학교 국어시험에 꼭 등장했다. 지문을 주고 특정한 표현이 어떤 비유법에 해당되는지 묻는 문제였다. ‘~하는 듯’ ‘~처럼’이 직유라면 ‘A는 B다’ 식의 표현은 은유다 라고 배웠다. 국어시험에서 틀리지 않는 것보다는, 실제 쓰는 글에서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 에이(A)4용지 분량의 글 한 편을 쓴다면 직유와 은유가 5개 이상 들어가도록 해보자. 최소한 다섯 가지 표현 정도는 빗대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무젓가락이다”라는 쉬운 비유부터 시작한다. 수준이 높은 은유를 사용하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토대는 독서와 경험과 사색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빗댄다면(!) “아는 만큼 빗댄다”.

은유에 관한 글이니만큼 마지막도 은유로 끝내자. 글은 똥이다! 끙끙대면 결국 나온다. 쾌변이냐가 중요하다. 아, 오늘은 만성 변비였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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