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⑪
[난이도 수준-중2~고1] 어린 학생들이 보는 건전한 난에서 술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술버릇’이다. 아마도 초·중딩 자녀들이 아빠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음주 습관일 수도 있다. 바로 ‘동어반복’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횡설수설’이다. 술 취하면 집에 돌아와 곱게 잘 일이지, 아이들 앉혀놓고 지루한 훈계를 늘어놓는 철없는 어른들이 있다. 괴롭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이야기 또또 하고…. 잡초 뽑기 시리즈 3탄이다. 마지막 잡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죄다 솎아내는 거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어, 즉 같은 단어다. ‘고장난 녹음기’라는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번 쓴 말을 되도록 아껴 써야 한다.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이런 문제를 잘 의식하지 않는다. “날라리들은 인맥이 넓다. 아주 먼 학교라도, 날라리들은 관계를 맺는다. 초등학교 날라리가 중학교에 오면서 다른 초등학교서 온 날라리들에게 친구 날라리를 소개시킨다. 친구 날라리 두 명은 서로 모른다. 그러다가 두 날라리가 서로 전부 한 명씩 날라리를 소개시킨다. 그러면서 날라리는 모인다.”(준석의 ‘날라리에 관하여’) ‘날라리’ 범벅이다. 중딩 준석은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에서 62번이나 썼다. 아무리 ‘날라리’가 주제여도 그렇지, 62번은 심했다. “우리 오빠의 자전거는 크다. 차라리 내 자전거 이야기를 하지, 왜 남의 자전거 이야기를 하냐고? 그 이유는 오빠의 자전거가 나의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전거를 따로 안 산다. 아빠는 오빠의 자전거를 펌프질만 하고 연습해서 타면 된다고 우기신다. 하지만 그 자전거는 내 나이에 맞지 않는다.”(은서의 ‘자전거 이야기’) 초딩 은서는 더 가관이다. A4 용지 반장도 안 되는데 역시 주제어인 ‘자전거’를 30번이나 사용했다.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고심 끝에 적절한 말을 고른다는 뜻과 같다. 제발 생각하자! 단어를 엄선하자!! 그밖에도 준석과 은서의 글에선 1인칭 주어가 무한 반복됐다. 나는…나는…나는…나는…나는…. 글 한 편당 보통 20번은 나온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좌를 할 때도 발견하는 현상이다. ‘나는’으로 시작하면 정말 하늘을 ‘나는’ 글이 된다^^. ‘그는’이나 ‘그녀는’이라는 3인칭 주어도 마찬가지다. 생략해도 되는데, 무의식중에 같은 주어의 재생산을 주체하지 못한다. 원로 소설가 최일남씨는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밝히는 글에서 “퇴고를 할 때 같은 단어가 하나도 없도록 끝없이 손질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벽증을 느낄 정도였다. 한 영화평론가는 글을 쓸 때 ‘영화’라는 말을 대체할 수 없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작품’이 있지만 뉘앙스가 달라 선뜻 쓰지는 못한단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단어’라는 말이 남발되어 애를 먹었다. 동어의 반복은 어휘력의 빈곤을 의미한다. 내 단어장의 비축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말과 표현에 대한 편애도 문제다. 여러분도 자신의 단어 창고와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예전에 썼던 글을 한꺼번에 찬찬히 읽으면 알 수 있다. “아, 내가 요걸 자주 썼구나” 하면서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때로는 퇴고 과정에서 한글프로그램의 ‘찾기’기능을 통해 검색해보라. 동어반복, 이제부터 경각심을 갖는 거다. 잡초 뜯기 끝!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난이도 수준-중2~고1] 어린 학생들이 보는 건전한 난에서 술 이야기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술버릇’이다. 아마도 초·중딩 자녀들이 아빠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음주 습관일 수도 있다. 바로 ‘동어반복’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횡설수설’이다. 술 취하면 집에 돌아와 곱게 잘 일이지, 아이들 앉혀놓고 지루한 훈계를 늘어놓는 철없는 어른들이 있다. 괴롭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이야기 또또 하고…. 잡초 뽑기 시리즈 3탄이다. 마지막 잡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죄다 솎아내는 거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어, 즉 같은 단어다. ‘고장난 녹음기’라는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번 쓴 말을 되도록 아껴 써야 한다.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이런 문제를 잘 의식하지 않는다. “날라리들은 인맥이 넓다. 아주 먼 학교라도, 날라리들은 관계를 맺는다. 초등학교 날라리가 중학교에 오면서 다른 초등학교서 온 날라리들에게 친구 날라리를 소개시킨다. 친구 날라리 두 명은 서로 모른다. 그러다가 두 날라리가 서로 전부 한 명씩 날라리를 소개시킨다. 그러면서 날라리는 모인다.”(준석의 ‘날라리에 관하여’) ‘날라리’ 범벅이다. 중딩 준석은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에서 62번이나 썼다. 아무리 ‘날라리’가 주제여도 그렇지, 62번은 심했다. “우리 오빠의 자전거는 크다. 차라리 내 자전거 이야기를 하지, 왜 남의 자전거 이야기를 하냐고? 그 이유는 오빠의 자전거가 나의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전거를 따로 안 산다. 아빠는 오빠의 자전거를 펌프질만 하고 연습해서 타면 된다고 우기신다. 하지만 그 자전거는 내 나이에 맞지 않는다.”(은서의 ‘자전거 이야기’) 초딩 은서는 더 가관이다. A4 용지 반장도 안 되는데 역시 주제어인 ‘자전거’를 30번이나 사용했다.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고심 끝에 적절한 말을 고른다는 뜻과 같다. 제발 생각하자! 단어를 엄선하자!! 그밖에도 준석과 은서의 글에선 1인칭 주어가 무한 반복됐다. 나는…나는…나는…나는…나는…. 글 한 편당 보통 20번은 나온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좌를 할 때도 발견하는 현상이다. ‘나는’으로 시작하면 정말 하늘을 ‘나는’ 글이 된다^^. ‘그는’이나 ‘그녀는’이라는 3인칭 주어도 마찬가지다. 생략해도 되는데, 무의식중에 같은 주어의 재생산을 주체하지 못한다. 원로 소설가 최일남씨는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밝히는 글에서 “퇴고를 할 때 같은 단어가 하나도 없도록 끝없이 손질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벽증을 느낄 정도였다. 한 영화평론가는 글을 쓸 때 ‘영화’라는 말을 대체할 수 없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작품’이 있지만 뉘앙스가 달라 선뜻 쓰지는 못한단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단어’라는 말이 남발되어 애를 먹었다. 동어의 반복은 어휘력의 빈곤을 의미한다. 내 단어장의 비축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말과 표현에 대한 편애도 문제다. 여러분도 자신의 단어 창고와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예전에 썼던 글을 한꺼번에 찬찬히 읽으면 알 수 있다. “아, 내가 요걸 자주 썼구나” 하면서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때로는 퇴고 과정에서 한글프로그램의 ‘찾기’기능을 통해 검색해보라. 동어반복, 이제부터 경각심을 갖는 거다. 잡초 뜯기 끝!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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