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부전공 활동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진로 탐색도 돕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라피티를 하는 지윤용군.
학생기자들, 10대에게 묻다
문제풀이만 할 줄 아는 아이들
‘악기 하나쯤 연주하는’ 사회 만들기
그라피티…마술…천문…탈춤…
전문 ‘개인기’ 계발하는 청소년 많아
“구체적 진로·진학 탐색에 도움”
사회인들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전공인 공부에 더해 시간을 쪼개 자신만의 부전공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들은 남을 가르칠 정도의 수준으로 부전공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다. 올해 고3인 지윤용(경기 부천 시온고)군의 부전공은 그라피티(Graffiti,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를 하듯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거리 벽을 꾸미는 작업)다. 지군은 고교생활 동안 학교 안 그라피티 동아리 ‘일탈’에서 활동하며 거리나 학교 벽 등을 꾸며왔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지만 부전공 활동은 단순 취미 차원을 넘어 남을 가르칠 정도의 전문적인 수준까지 왔다. “부천 중앙공원에서 ‘그라피티 축제’를 열기도 했고, 부천시 청소년 문화축제 때 자원봉사로 작품을 전시한 경험도 있어요. 학교 벽에도 제가 참여한 작품이 있고요. 부천 중앙공원에서 저희가 주체적으로 축제를 열었을 땐 시민들에게 그라티피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직접 해보도록 가르쳐주는 일도 해봤죠.” 지군이 그라피티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텔레비전에 나온 시온고 그라피티 동아리를 보고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이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온고에 입학했다. “공부에 지쳐서 의욕을 잃었을 때 그라피티를 알게 됐는데요. 자유분방하면서 독특한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멋져 보였어요.” 지군은 처음 그라피티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라피티에 ‘꽂힌’ 다음 시도한 일은 관련된 전문교육을 받는 거였다. 지군이 찾았던 곳은 다름 아닌 청소년수련관. 비교적 학업 부담이 덜한 고1 때부터 산울림청소년수련관을 다니며 그라피티 강의를 듣고 전문가에게 실습 지도를 받았다. 흔히 학생들의 이런 관심과 실천을 ‘학과외 활동’으로 부르며 학업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군은 “오히려 부전공 활동을 통해 공부에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창의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라피티는 늘 새로운 표현 기법들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런 걸 위해서 연구도 하고, 연습도 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움직임이 있는 작업이라 그런지 학업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고요.”
지군이 부전공 활동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구체적인 전공 진로탐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군은 “실은 진로를 정하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일탈’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며 “그라피티와 관련이 있는 미술 분야(조소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밖에 얻은 게 참 많죠. 학교 밖에서 부전공 활동을 하면서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직접 보게 됐거든요.”
대학생 정재홍(공주사대 지구과학과 2년)씨는 부전공 활동 덕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인생 설계를 하고 있다. 전공인 교사 일을 하면서 부전공인 마술을 평생토록 해보는 게 그의 목표다. 지군이 그라피티 실력을 갖춘 것처럼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의 전문적인 마술 실력을 갖춘 정씨는 충남 천안에서 꽤 유명한 중앙고 마술동아리 ‘매직’ 출신이다.
중2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마술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던 게 계기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이면 다 해보라”고 하셨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 그 가운데 놓치거나 못 이룰 것도 있다”는 담임교사의 반대도 있었지만 정씨는 “이거 한다고 성적 떨어졌단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정씨의 부전공 활동은 주로 점심,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다. 지금도 동아리 후배들은 11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점심시간에 짬을 내 모여 마술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다양한 기법들을 공유하고 있다.
정씨는 “마술 덕에 공부만 했던 남들과는 다르게 기억에 남는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 “복자여중, 천안여중, 천안북중 등 충남 천안 지역 학교 축제를 찾아 마술공연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마술은 아이디어 싸움이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어서 두뇌 운동과 몸 운동이 모두 되거든요. 물론 공부에도 도움이 됐어요. 부전공을 하면서 성적 떨어졌단 소리를 들을까봐 더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성적은 안 떨어졌습니다.(웃음)”
마술 덕에 덤으로 얻은 건 사회성이었다. “중3 때까지 저 스스로는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 말로는 제가 조용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술쇼를 준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면서 성격이 많이 활발해진 것 같아요. 마술에선 멘트(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정씨는 “고교 때를 회상해보면 공부만 미친 듯이 하는 친구, 아니면 대책 없이 놀기만 하는 친구로 학생 유형이 딱 두 가지였던 것 같다”며 “대학에 들어와 보니 당신의 특기가 무엇이냐고 할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게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입학 때 오리엔테이션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매직에서 배워둔 마술을 선보여서 박수를 받았거든요. 요즘 같은 시대엔 이렇게 부전공 수준의 개인기가 있으면 여러모로 좋죠. 물론 부전공을 갖는 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인생 전반을 위해서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김주환(과천외고)·최연재(수일고) <아하! 한겨레> 학생수습기자 3기
문제풀이만 할 줄 아는 아이들
‘악기 하나쯤 연주하는’ 사회 만들기
그라피티…마술…천문…탈춤…
전문 ‘개인기’ 계발하는 청소년 많아
“구체적 진로·진학 탐색에 도움”
사회인들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전공인 공부에 더해 시간을 쪼개 자신만의 부전공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들은 남을 가르칠 정도의 수준으로 부전공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다. 올해 고3인 지윤용(경기 부천 시온고)군의 부전공은 그라피티(Graffiti,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를 하듯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거리 벽을 꾸미는 작업)다. 지군은 고교생활 동안 학교 안 그라피티 동아리 ‘일탈’에서 활동하며 거리나 학교 벽 등을 꾸며왔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지만 부전공 활동은 단순 취미 차원을 넘어 남을 가르칠 정도의 전문적인 수준까지 왔다. “부천 중앙공원에서 ‘그라피티 축제’를 열기도 했고, 부천시 청소년 문화축제 때 자원봉사로 작품을 전시한 경험도 있어요. 학교 벽에도 제가 참여한 작품이 있고요. 부천 중앙공원에서 저희가 주체적으로 축제를 열었을 땐 시민들에게 그라티피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직접 해보도록 가르쳐주는 일도 해봤죠.” 지군이 그라피티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텔레비전에 나온 시온고 그라피티 동아리를 보고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이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온고에 입학했다. “공부에 지쳐서 의욕을 잃었을 때 그라피티를 알게 됐는데요. 자유분방하면서 독특한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멋져 보였어요.” 지군은 처음 그라피티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라피티에 ‘꽂힌’ 다음 시도한 일은 관련된 전문교육을 받는 거였다. 지군이 찾았던 곳은 다름 아닌 청소년수련관. 비교적 학업 부담이 덜한 고1 때부터 산울림청소년수련관을 다니며 그라피티 강의를 듣고 전문가에게 실습 지도를 받았다. 흔히 학생들의 이런 관심과 실천을 ‘학과외 활동’으로 부르며 학업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군은 “오히려 부전공 활동을 통해 공부에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창의성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라피티는 늘 새로운 표현 기법들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런 걸 위해서 연구도 하고, 연습도 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움직임이 있는 작업이라 그런지 학업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고요.”
탈춤 하는 강윤호군.
천체관측을 하는 창원여고 동아리 ‘빅뱅’ 멤버들.
중2 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마술을 보고 호기심을 가졌던 게 계기였다. 다행히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것이면 다 해보라”고 하셨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 그 가운데 놓치거나 못 이룰 것도 있다”는 담임교사의 반대도 있었지만 정씨는 “이거 한다고 성적 떨어졌단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마술 하는 정재홍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