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석차경쟁 유지되면 교육정보화도 ‘무용지물’

등록 2009-05-31 18:40수정 2009-06-28 16:51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에게는 교육정보화로 인한 변화가 스트레스라기보다는 즐거움이다. 사진은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제공.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에게는 교육정보화로 인한 변화가 스트레스라기보다는 즐거움이다. 사진은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제공.
‘사이버 가정학습’ 콘텐츠 무기삼아 사교육과 전쟁중
입시 거치며 경쟁력 하락…“암기식 교육 이제 그만”
세계 첫 ‘디지털 교과서’ 구축 온힘…학습혁명 기대




교육인터뷰 / 송재신 케리스 초·중등교육정보센터 소장

나, 지인이는 시골의 작은 분교 학생이다. 경남 칠북초등학교 이령분교. 전교생이 고작 15명이었다. 엄마는 “학생 수가 더 줄어들면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면서 매우 걱정하셨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한 학년이 두 세명 밖에 되지 않아 1·2학년, 3·4학년, 5·6학년이 함께 공부하는데, 이런 학급을 ‘복식학급’이라 불렀다. 나는 두 학년 수업이 싫었다. 40분 중에 20분은 선생님과 수업하고 나머지 20분은 과제를 푸는 풀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런 내게 “선생님과 공부하는 20분이 아닌 과제를 해결하는 20분은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퇴임하는 담임선생님 대신 새로오신 젊은 선생님은 “우리 동네에는 학원도 없고, 서점도 없고, 문제지도 없기 때문에 새미 학습이 새로운 선생님이 되어준다”고 하시면서 ‘새미학습’을 소개해주셨다. 컴퓨터실로 우리를 데려가서 새미학습 사이트에 가입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교과서에 대한 예습·복습도 하고, 문제지도 풀고,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 유시시(UCC)도 만들면서 새미학습에 푹 빠졌다. 이제는 혼자서도 공부에 자신감이 생겼고, 영어말하기도 잘한다. 어느새 ‘게임광’에서 ‘새미광’으로 변했다.

송재신 케리스 초·중등교육정보센터 소장
송재신 케리스 초·중등교육정보센터 소장


지인이 이야기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케리스·KERIS)과 전국 시·도 교육청이 협력·운영하고 있는 ‘사이버 가정학습’의 우수활용 사례집(제4호)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새미학습은 경남 사이버 가정학습을 부르는 이름이다. 지난 2005년부터 전국 단위에서 개통된 사이버 가정학습이 개통 5년째를 맞아 사교육비 절감과 지역 간 학력격차 해소,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맞춘 수준별 학습 실현이라는 목표를 이뤄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현재 전국 가입자는 300만명을 넘어섰고, 하루 이용자도 30만명에 이르렀다. 설문조사 결과 이용 학생의 80% 이상이 “사이버 가정학습이 학습적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70% 이상은 “학교 수업을 보충하는 이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한국 교육정보화의 요람이라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송재신(50) 초·중등교육정보센터 소장은 교육정보화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사다. 그가 벌이고 있는 전쟁은 스스로의 표현처럼, “사교육과의 전쟁”이다. 5월26일 서울 중구 퇴계로 케리스 사무실에서 만난 송 소장에게 “사이버 가정학습이 교육 현장에서 뿌리를 내렸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뿌리를 내리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이미 자리잡았다”고 잘라 말했다.

“처음에는 교사가 학생의 옆에 있지 않고 학생 혼자서 인터넷으로 공부한다는 개념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의구심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콘텐츠의 우수성과 효과성이 입증됐기 때문이죠. 이용률이 너무 높아져서 요즘에는 시·도 교육청 컴퓨터 서버가 견디지 못할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사교육비 경감이나 교육격차 해소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농촌·산촌·어촌 지역에서는 사이버 가정학습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죠.”

교육격차 해소에 사이버 가정학습이 효과를 내는 이유에 대해 그는 “공교육 영역의 투입요소는 전국적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데 비해 사교육의 투입요소는 차이가 많이 나는 데서 교육 격차가 생긴다고 볼 수 있는데 사이버 가정학습이 이 격차를 줄이는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이버 가정학습 사업의 질적인 도약을 위해 콘텐츠의 확대와 다양화에 힘을 쏟고 있다. 교과별·수준별(기본형·심화형·보충형) 콘텐츠를 확대하면서 다양한 동영상 자료를 확보해 학생 소비자의 학습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사이버 가정학습의 또 하나의 강점으로는 진단처방 학습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고1 학생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학생별로 학력과 학습 방법의 취약점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맞춤형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사이버 가정학습의 인지도와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도교육청 교육감 선거에서 사이버 가정학습 강화를 핵심 정책공약에 포함시키는 후보의 수도 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송 소장이 사이버 가정학습과 함께 힘을 쏟고 있는 분야가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종이로 돼 있는 기존의 교과서를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꾸며진 교과서로 바꾸는 사업이다. 현재 태블릿 피시(tablet PC)와 전자칠판 등을 갖추고 시범적으로 디지털 교과서로 가르치는 반을 둔 학교가 전국에 112개나 된다. 이런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무선랜을 갖춘 노트북을 펴놓고 전자칠판을 보면서 수업을 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송 소장은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인류가 맞이한 문명사적인 대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특정한 시기에 지식전달체계에 근본적 변화가 이뤄졌어요. 수사학으로 지식이 전달되는 시기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서책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죠. 이제는 디지털 도구가 그 역할을 점점 대신하게 되겠죠. 수사학에서 책의 단계로 넘어가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다면 책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데는 10년이 채 안 걸릴 겁니다.”

디지털 교과서는 활자로 된 텍스트 이외의 그래픽, 음성,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서 마라톤의 황영조 선수를 소개한다고 하면 디지털 교과서에서는 황 선수가 몬주익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과 인터뷰 장면을 동영상으로 교과서에서 제공함으로써 그 당시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는 식입니다.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게 달라질 수밖에 없죠.”

디지털 교과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디지털 네이티브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디지털 키드’를 위한 학습 패러다임이 변하기 위해서 새로운 학습 인프라가 구축되고, 교수-학습 전략에서도 근본적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등 앞으로 남은 과제도 많다. 그러나 그는 ‘학습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거북선이라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이 세계 최초의 디지털 교과서 상용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교육정보화가 제 궤도를 가기 위해서라도 “한국 교육의 미스터리가 풀려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말하는 한국 교육의 미스터리는 국제적인 학업성취도 조사와 관련이 있다. 피사(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와 같은 데서 한국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왜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시험에서 한국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은 암기 위주의 지필고사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능력은 다른 데 있죠. 바로 문제 해결력, 의사소통 능력,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힘들어하는 겁니다. 서울대가 세계 대학 순위에서 100위권 밖으로 밀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는 본질적인 능력 계발 교육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저학년까지는 어느 정도 시도되다가 그 이후로는 대학 입시를 위한 석차 경쟁 교육으로 넘어가는 데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봤다. “교육정보화에 성공하게 되면 학생들이 지식을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생성하기도 하는, 이른바 지식의 프로슈머로서 길러질 수 있는데 대학입시를 위한 석차 경쟁 시스템에 매몰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는 ‘이러닝’(e-learning) 이후도 내다보고 있다. 이른바 ‘유러닝’(u-learning)이다. 유비쿼터스 교육은 “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인데, 쉽게 말해 “어디를 가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세종도시와 같은 곳에서는 도시를 설계할 때부터 이런 개념을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학교라는 공간에서만 이뤄지는 공교육에도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그가 꿈꾸는 교육정보화 사회의 미래도 계속 진화중이다.

글·사진 김창석 기자 kimcs@hanedui.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