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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공문’에 시달리는 학교…‘교육’은 없다

등록 2009-05-10 15:49

서길원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
서길원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
잡무 처리에 바쁜 교사 ‘관료화’…학생은 뒷전
폐교 직전 초등학교 부임해 ‘학교 살리기’ 작업
교사가 ‘교육’ 전념하니 학생수 늘어 ‘작은 성공’




교육 인터뷰 / 서길원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정책’이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자율’과 ‘경쟁’의 교육철학 위에 세워진 교육정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대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때 10년 가까이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해오며 현장으로부터의 변화를 꿈꾸는 서길원(48·경기 성남북초 교사) 작은학교 교육연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작은 학교’의 성공 비결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작은 학교’의 성공을 디딤돌로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쿨디자인21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2000년 가을쯤이었다. 전교조 합법화가 있던 해 전교조 전임자 근무를 마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가까운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교생이 26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를 앞두고 있는 남한산초등학교를 함께 살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거시적인 제도개혁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2001년 1월 복직이 결정되자마자 남한산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출발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폐교 직전이던 남한산초등학교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통해 현재 전교생이 150명에 이를 정도로 학부모들이 보내고 싶은 학교가 됐다.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왜 떠날까’에 대해 교장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말 교장과 교사, 학부모 등 10명 안팎으로 전입학추진위원회(이후 학교살리기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위원회를 통해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과 모델을 논의하고 합의해 나갔다. 우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가 단지 사회적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학교의 가치’에 대해 교육 주체들이 제대로 논의하거나 합의해 본 적이 없고, 기존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이 학생들에게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은 무엇이었나?


“당시 전입학추진위원회 구성원들은 모두 학교교육의 가장 큰 폐해가 ‘관료주의’에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작은 학교’는 학교 내 관료주의 타파를 운영 원칙 1순위에 뒀다.”

-학교 내 관료주의와 그 폐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학교 내 관료주의는 ‘학교의 사사화(私事化), 교육의 행사화, 교사의 석고화’로 풀어서 말할 수 있다. 학교의 사사화는 학교와 교실의 폐쇄성에서 비롯된 ‘그들(교장 또는 교사)만의 왕국’을 뜻한다. 교육의 행사화는 인사권을 지닌 교육청에 잘 보이기 위해, 학생들의 배움에 도움이 되기보다 각종 이벤트성 행사들에 치중하는 학교 행정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석고화는 ‘그들만의 왕국’에 갇혀 전문성을 상실해 가는 교사 집단을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관료화의 근간엔 무분별한 ‘공문’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일 동안 교내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내가 받은 공문의 개수가 무려 168건이나 됐다. 읽기에도 벅찬 개수다. 과도한 공문은 교사가 학생에게 집중하기보다 행정업무 처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공문 처리에 바쁜 교사들은 수업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교장이나 교감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교육의 중심이자 출발점이 되어야 할 학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작은 학교’의 모델이 된 남한산초등학교는 관료주의를 어떻게 극복했나?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은 단순했다. 학교교육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학교교육 정상화’라 불렀다. 이 원칙에 교장과 교사, 학부모가 합의하니 할 일들이 분명해졌다.

교장은 교사가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교사에게 ‘공문’ 처리를 하달하지 않았다. 보여주기식의 각종 학교 행사들은 가급적 지양했다. 또 학교마다 월요일 아침이면 관습적으로 하던 조회도 없앴다.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정과 교육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니, 시수 채우기 급급한 교과별 진도형 교육과정에 문제가 많았다. 우리는 시수벽, 교과벽, 담임벽을 뛰어넘어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체험 중심의 통합형 교육과정을 개발했다.

지금 남한산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하루를 교실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교사와 함께 숲속을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러한 아침 활동에 이은 수업은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사 강의, 그룹별 토론과 발표 등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최소한 8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계절학기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다.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로 당당하게 참여했다. 학교의 중요한 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 학년별 학부모회에서 먼저 협의하고 그 결과를 학교운영위원회에 반영했다. 여름·겨울방학 때에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모여 지난 학기를 평가하고, 새 학기 교육계획을 마련했다.”

‘공문’에 시달리는 학교…‘교육’은 없다
‘공문’에 시달리는 학교…‘교육’은 없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현재까지의 성과와 극복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가?

“남한산초등학교가 공교육의 대안적 모델로 자리잡자 뜻 있는 여러 학교에서 관심을 표명했다. 남한산초등학교의 모델은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전북 완주 삼우초등학교, 경북 상주 남부초등학교, 부산 금성초등학교, 순천송산분교 등으로 확산돼 갔다. 지난 1월 삼우초등학교에서 열린 작은학교교육연대 겨울 워크숍에 23개 학교에서 교장·교감·교사 56명이 참석했다. 빠르진 않지만 차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본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단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는다. 또 한두 사람의 리더십이나 열정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 주체들의 지속적 합의와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4년이 지나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 순환근무제도도 ‘작은 학교’ 모델 정착에 적잖은 어려움을 준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뿐 아니라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도 벌이고 있는데,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이란 무엇인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공교육의 대안적 모델이긴 하나, 그 대상이 주로 전교생이 100명 안팎인 ‘작은 초등학교’들이었다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은 이 대상의 한계를 넘어 공교육의 보편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의 핵심은 ‘작은 학교’의 운영 원칙과 동일하다. 학교교육은 ‘관료들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상급학교 학생 선발에 초점이 맞춰진 입시 중심의 교육시스템에서 학생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시스템으로의 변환을 꾀하는 것이다.

스쿨디자인21은 이를 위해 만든 단체다. 현재 경기도 지역 100여명의 선생님들이 참여하고 있다. 스쿨디자인21은 ‘새로운 학교’ 모델에 적합한 교육과정 등을 개발하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학교’에서 일할 교사 양성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1차 비전은 경기도내 시군별로 ‘새로운 학교’의 모델이 될 거점학교들을 세워가는 것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15개 시도별로 ‘새로운 학교를 꿈꾸는 사람들’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한다.”

-지난 1월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교들을 방문했는데,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과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에 시사점을 준 것은 무엇이었나?

“스웨덴 공교육의 대안으로 각광 받고 있는 푸투룸스콜라(미래학교)를 방문했다. 통합형 수업이나 모둠 학습 등은 ‘작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유사해 보였다. 그러나 푸투룸스콜라는 교육의 ‘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핀란드의 학교들은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이 조화를 이뤘다. 특히 뒤처지는 아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교육시스템은 인상적이었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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