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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해뜰날’ 온다고? 학생들에게 ‘오늘’을 돌려줘야

등록 2009-04-19 19:19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교육 인터뷰]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배경내

1990년대 초·중반 민주화 흐름을 타고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의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다. 학생 체벌, 교사에 의한 성추행, 두발·복장 단속 등 학생 인권은 특히 더 문제가 많다. 학생 인권은 왜 지켜야 할까? 경쟁 교육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 학생 인권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 교육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배경내(37)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지난 2000년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를 통해 학교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쟁만 강조하는 ‘좀비’ 학교서
무덤덤하게 ‘청소년 인권’ 무너져
교사도 희생물? 면죄부 달라는 꼴

-어떤 계기로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나.

“1991년, 한 대학생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겪었다. 응급실로 실려와 영안실로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한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어이없이 (국가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갈취당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인권문제 가운데서도 학생 인권에 특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후 학교생활, 집안에서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내가 고민하던 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세포가 다 죽어 있는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무력한 사람들,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20년 동안 학교·사회에서 길들여진 것이 문제라 생각했다. 결국 학교 교육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사람들은 ‘좀비’가 돼서 사회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를 바꿔야 하는데 어떤 열쇳말로 학교를 재구성할까. 그 열쇳말을 찾는 가운데 학교의 위계화한 구조,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가 눈에 보였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현장의 인권을 높이는 데 학생 인권 운동이 긍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보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은 민주적 학생회 건설, 체벌 금지, 교사에 의한 성폭력 방지 등 다양한 학생 인권 문제를 제기해왔다. 1990년대 초·중반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 요구에 발맞춰 ‘중·고등학생복지회’가 1995년 온라인상에서 최초로 만들어졌고, 그 뒤로 학생 인권 선언, 두발 자유 운동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 기존 교육운동 단체들도 학생 인권에 관한 고민을 하나의 담론으로 받아들이면서 “학생이 불쌍하다”에서 “학생도 사람이다”로, “청소년 문제”에서 “청소년 인권”으로 인식의 폭을 넓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입시경쟁 강화 흐름은 그동안 제기했던 학생 인권 문제들을 묻히게 하고 있다. 입시경쟁 교육구조 변화 속에서 학생을 다시 상품으로 만드는 구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상품이 인간을 좀먹는다. ‘학생은 인간이다’란 선언뿐인 명제 또한 좀먹고 있다.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은 학생 인권의 후퇴다.”

-학생 인권의 후퇴라고 했는데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사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제고사가 제일 큰 문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행하는 학습노동으로 인해 이미 충분히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일제고사 시행으로 ‘건강권 침해’ ‘청소년 자살 증가’ ‘학습부진 학생들의 분리·배제·차별’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치열해진 경쟁 구조는 물리적 폭력과 인격적 모욕을 수반한다. 학교 성적이란 유일한 잣대로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좋지 못한 성적을 받은 학생은 ‘공부 못하는 아이’ ‘모자란 아이’ ‘덜떨어진 아이’라는 낙인을 받고, 끊임없는 모욕에 의해 무력화된 사람, 자기 부정의 증거만을 쌓아가는 사람으로 길러진다. 그렇게 길러진 공격성은 학교폭력 증가로, 자학적인 성향은 청소년 자살 증가와 청소년 우울증 증가로 이어진다.”

-활동을 통해 학생 인권이 구체적으로 개선된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

“예전 학생들은 학교에서 체벌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맞을 짓 했다” “졸업만 기다리자” “졸업과 동시에 탈출이다”란 말을 하는 ‘죄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감방’ 안에서도 자기 존엄에 대한 선언을 한다. 그리고 자기 권리를 당당히 주장한다. 학생들 스스로 학내 인권 문제(체벌, 강제 이발)를 해결하기 위해 ‘불복종운동’ ‘서명’ ‘점심시간을 이용한 학내 집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 뒤엔 꼭 학교의 징계가 뒤따른다. 우리는 학생들이 학교로부터 당할 부당한 대우나 징계를 막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부 지침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지침들이 4·15 학교자율화 조처로 무력화됐다.”

-교사 또한 학교 구조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교사 인권은 어떻게 생각하나?

“교사 또한 구조 속에 끼어 있는 톱니바퀴로써 ‘희생자’이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 인권 실태에 대응하는 교사의 무관심한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방식이 돼선 안 된다. 물론 교사 혼자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래도 교사는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틈을 열어볼 생각도 없이 “나도 희생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면죄부를 달라는 것이다. 교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 이때 교사는 학교의 주체로서 권한이 강화돼야지, 기존의 전통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만 강화하는 것은 안 된다. 교사는 교실을 자신의 왕국으로 여기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생활지도부에 편승해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겠다는 생각 또한 버려야 한다. 동료교사의 교육철학은 건드려선 안 된다는 교사들 사이의 ‘침묵의 담합구조’를 깨는 동시에 교사의 권한을 강화할 때 교사의 인권 또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교육정책이 점점 더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정부 정책이 학생들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은?

“학교가 두려워하는 것은 여론과 상급기관인 교육청이다. 그래서 이전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교육청과 협상을 했다. 그런데 4·15 학교자율화 조처 이후 교육청으로 가서 문제제기를 하면 “알아서 해라”라고 한다. 학교는 자율화됐으니 개별적으로 해결하란 식이다. 학생 인권의 경우 유사한 인권 피해 사례가 많기 때문에 교육부 지침을 이끌어내 그것을 단위 학교에 내려 보냄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안 된다. 학교마다 쫓아다니며 해결해야 할 판이다.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사, 학생은 반드시 자율화돼야 하지만 학교 조직은 자율화돼선 안 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이 축소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권위는 인권교육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권위가 축소되면 학생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학생 인권 관련 진정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학생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때 해결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인권위에 진정한다. 학생 인권 문제는 학교가 학생에게 보복 조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자칫 인권위에서 학교로 실제 권고가 내려갔을 때는 이미 학생이 전학 조처된 뒤인 경우도 있어 실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변화된 교육 구조에서 늘어나는 학생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들 인권위로 달려갈 텐데, 인권위 조직 축소로 인해 앞으론 신속한 처리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배경내(37)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배경내(37)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학생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주체(학생, 교사, 학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학생이 잘되라고 교육하고 있다’란 명분을 내세워 ‘오늘 조금 힘들더라도 내일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 한다. 그러나 오늘 불행한 사람은 내일 행복할 수 없다. 오늘 불행한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미래의 자기 행복을 주체적으로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오늘’을 돌려줘라. 지금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라. 지금의 경쟁 구조는 ‘죽음의 교육’과 ‘삶의 교육’의 갈림길에 설 것을 강요한다. 그래도 내 아이는 성공할 것이란 환상과 기대를 버려라. “학교가 바뀌면 좋은데 내 아이는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내 아이도 다른 아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쁨 받는 것 따위 중요치 않아!’ ‘나는 나를 사랑할 거야!’라고 외치며 친구간의 관계를 만들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글·사진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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