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어느덧 방학도 중반부에 들어섰다. 늘 그렇듯이 처음의 계획은 거창했으나 뭘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간 경우가 많을 것이다. 처음에 만들었던 동그라미 계획표는 언제 이런 것을 만들었나 싶게 벌써 낯설어졌을지도 모른다. 애초의 계획은 왜 얼마 되지 않아 흐트러지고 말았을까?
대부분의 초등학생에게 하루는 계획적으로 끌어가기에 길다. 계획은 짜는 단계까지는 그저 상상 놀이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천 단계부터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아직 실천할 수 있는 힘도, 체계적인 태도도 부족하다. 이 시절의 아이들은 많은 상상을 하지만 그 상상의 대부분은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한다. 계획표도 수많은 실현 불가능한 상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계획표 만들기는 의미 없는 행위일까? 그렇지는 않다. 발달 수준에 맞는 계획표를 만들고 실천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자신감은 부모의 칭찬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신을 조절해 가는 데 성공할 때 더 강해진다. 자기가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달성했을 때 긍정적인 자기상이 만들어지고, 진취적인 자세가 강화된다.
대부분의 초등학생 계획표에는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 규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외부 스케줄, 그리고 저학년들은 한 개, 고학년들은 두 개 정도 자신이 일부러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하는 시간만 표시돼야 한다. 그럼 남는 시간은 어떻게 할까? 당연히 모두 자유시간이다. 아예 표시할 필요조차 없다. 시간표는 동그라미로 그리면 오히려 혼란스럽다. 간단히 꼭 필요한 시간만 적어두는 편이 좋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시작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자신이 10시부터 영어 테이프를 듣는다고 약속했다면 미루지 않고 그 시간에 시작해야 한다. 미리 계획되지 않았다면 다른 이유를 대서 그 시간을 바꾸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월간 일정표를 만들자. 월간 일정표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달력 모양의 표에 정해진 일과를 지킬 필요가 없는 날을 적어두기만 하면 된다. 방학 숙제를 위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는 날,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한 날,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만들기 방학숙제를 하는 날. 이런 일정표를 같이 만들어서 방문에 붙여두고 꼭 확인하게 하자.
방학이 짧지도 길지도 않게 남았다. 새삼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계획 세우기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야 할 인생의 기초 체력 중 하나이다. 단순 일일 계획표와 월간 일정표. 이 두 가지를 통해 아이가 자기 수준에 맞는 계획 세우기를 배우고, 실천을 통해 자기를 조절한다는 느낌을 얻도록 하자. 남은 방학이 아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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