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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가난한 학생에게 ‘성공신화’보다 ‘사회연대 신화’를

등록 2008-06-22 21:38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집안의 자녀가 성실과 끈기로 과학영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학에 진학한 이야기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사람들은 성공담에 끌린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도 용기를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성공담은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판타지 이면의 현실은 냉정하다. 가난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교사를 했던 이를 알고 있다. 그에게서는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보살핌도 받지 못하여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아이들, 아무런 계획 없이 놀면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나 찾아 용돈을 쓰며 사는 아이들, 부모뿐 아니라 자신도 스스로를 포기한 것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가난한 아이들은 꿈조차 가난하다.

부의 격차가 학력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이와 더불어 심각한 것은 희망의 격차다. 어떤 아이들은 글로벌 리더를 꿈꾸지만, 빈곤에 눌리거나 부모의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래’라는 단어조차 힘겹다. 우리 사회가 그려 보이는 미래라는 것이 대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낙오할 것이라는 위협의 상상력 안에서 작동되니,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미래를 준비하라고 채근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이 되기 쉽다. 기자나 변호사같이 성공한 직업인의 특강을 들려줄수록 아이들에게 도전의식보다 오히려 패배감만 심어주는 것 같다는 그 교사의 낙담에 공감이 간 것은 이 때문이다.

한 교사가 어려운 지역에 사는 학생의 집을 방문해 상담내용을 기록하는 모습.  강창광 기자
한 교사가 어려운 지역에 사는 학생의 집을 방문해 상담내용을 기록하는 모습. 강창광 기자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물질적 지원과 아울러 적합한 진로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력에 맞춰 아이들의 포부 수준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쟁력보다는 삶을 꾸려갈 능력을 갖추도록 이끄는 진로교육이 필요하다. 넘쳐나는 성공신화에 압도되지 않고, 소박한 노력으로 이루어 내는 작은 성취의 기쁨과 가치 있는 선택이 주는 보람을 경험하도록 마련해 주어야 한다. 빈곤이 돌봄의 부재 같은 가정환경의 척박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역할은 일차적으로 학교의 몫이다. 하지만 한 번에 3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동시에 대하면서 수업과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교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학교 내 상주 사회복지사나 상담교사 제도가 확대되면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소수의 경쟁력 있는 엘리트들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20대 80’의 사회가 아니다. 다른 이의 능력에 기대어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할까. 건강한 사회는 모든 이들이 고유한 제몫을 하면서 자존감을 가지고 서로를 돕는 사회이다. 이 희망은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이다. 가난한 아이들도 미래를 그리며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 때 가능한 꿈 말이다.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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