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
직업체험은 직업 현장을 방문해서 하는 일을 살피고 어떤 일은 직접 해보며 직업에 관한 이해를 도모하는 활동으로, 진로교육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정작 그럴 만한 현장을 찾기는 어렵다. 시간을 다투어 일을 처리해야 하고, 성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터에서 교육적 목적으로 별도의 기획을 하고 따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손쉽게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의 직장을 방문해서 견학하거나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로주간이나 방학 때 부모 직장체험 보고서 쓰기 같은 과제를 내주는 학교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모 직장체험은 인기 있는 진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부모 직장체험이 갖는 장점은 접근성이 좋다는 점뿐만이 아니다. 의미가 부여돼야 배움이 활기를 얻고, 친밀감을 느껴야 사물의 뜻이 깊게 다가오는 법이다. 여느 일터가 아니라 부모가 일하는 곳이라는 점 때문에 아이들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일터와 사람들을 관찰할 것이다.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직업인’으로서 부모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평소와는 다른 경험이 될 것이며, 아이들이 관찰하고 겪었던 모든 것들은 이후 진로를 위해 좋은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 부모 직장체험은 청소년이 성인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문화체험이기도 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각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한정된 시간 안에 업무가 이루어지는 과정, 간간이 터지는 잡담과 웃음 같은 장면들은 미래에 자신이 속할 세계의 일단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부모 직장체험을 개인적 노력으로 만들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상당한 지위에 있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녀를 데리고 직장에 와서 조직과 업무를 설명하고, 이런저런 일터 장면을 보여주고, 일정한 역할을 떼어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 직장체험이 교육적 효과를 높이려면 일터 차원의 조직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부모 직장체험을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조금씩 늘고 있다. 대개는 회사 홍보물 상영, 사무실 및 시설 견학, 약간의 오락성 행사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효과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교육적 효과를 더 높이려면, 자녀를 직장에 초대한 부모들끼리 서로의 자녀들에게 일일 안내자가 되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좋겠다. 일터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학습의 장이다. 전화 받는 법 같은 작은 일부터 회의에 참석하여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경험까지 교육 프로그램 목록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서양 속담처럼, 자라나는 세대를 건강하게 기르는 데에는 온 사회의 합심이 필요하다. 우선 부모들이 속한 일터의 작은 프로그램부터 시작해보자.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지난해 제1회 직업세계 체험 주간 선포식 때 지엠대우 부평공장을 찾은 청천중 학생들의 모습.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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