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여성취업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를 작성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번쯤 하며 큰다. 자식에게 부모는 가장 가까운 본보기라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묻어둔 어머니의 삶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딸들에게 오히려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와는 다르게 살고자 했던 딸들은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었지만 직업세계의 ‘유리천장’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다. 고학력이지만 일과 결혼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금의 40~50대 여성들은 진로선택의 중요한 시기에 선 십대와 이십대 딸들의 어머니가 됐다. 이들은 이제 딸들에게 ‘마음껏 세상을 살아보라’고 격려하는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들의 딸들이 약진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 최종합격자 가운데는 여성이 86.3%에 이른다. 전통적인 여성 선호 직업이었던 교사 직종에서만이 아니다. 올해 신임 법관 가운데 70%가 여성이며, 신규 의사면허 취득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30%를 넘어섰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수석도 매년 여생도가 차지하고 있다. 전문직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고 남성을 압도하는 현상에 언론은 ‘여풍’이라며 주목한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그리 화려하지 못하다. 각종 전문직에 여성의 진출이 급격히 늘고 있으나 고위 임직원이나 관리자에서 여성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교사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초등학교에서조차 여성 교장은 전체의 9.3%에 불과하다. 많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남녀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여성 고학력자가 늘고 있지만 아직 직업세계에서 처지가 남성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적 관행과 구조적으로 관련돼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성별에 따라 직업의식이나 진로 준비 과정이 다른 데서 오는 까닭도 있다. 일례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를 보면 여학생이 선호하는 직업은 교육계·의약계·예술계에 집중된 반면, 남학생이 선호하는 직업은 좀 더 다양했다. 여성에게 맞는 직업이 따로 있다는 인식이 여전하여 여학생들의 진로 선택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진로발달 과정의 차이도 있다. 초등학교 때는 여학생의 발달이 더 빠르다. 그러나 여성스러워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10대 후반부터 소녀들은 자부심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진로 선택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보고가 많다.
딸들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당당히 제구실을 하길 원한다면 먼저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야 한다. 모험을 받아들이는 법, 경쟁상황에 대처하는 법, 남성과 동료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삶이 온갖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여성이 우주인도 되는 시대다. ‘여자 직업은 교사가 최고’라는 식의 고정된 성역할 인식을 부모가 먼저 넘어서야 한다.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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