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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세 모녀 서로 책 읽어주며 ‘영혼의 스킨십’

등록 2008-01-21 19:14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씨가 거실에서 딸 민정(맨 오른쪽)이와 민지에게 읽어줄 책을 고른 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씨가 거실에서 딸 민정(맨 오른쪽)이와 민지에게 읽어줄 책을 고른 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랑 부모랑] 책 읽어주는 엄마 김인자씨네
부모가 책 좋아하니 아이들도 절로
방과후 학원 대신 도서관이 놀이터
“속상할 땐 아이가 책 읽어주죠”

부모들은 흔히 말한다. 우리 집 아이, 책과 친해지게 하는 방법 뭐 없냐고.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필시 ‘1등짜리 학습법’류의 그럴싸한 ‘뾰족수’일 게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처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먼저 책 읽는 부모, 책 읽어주는 부모가 되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만 하면 공부 가르치듯 별도의 체계적인 ‘지도’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책을 읽을까? 김인자(42·인천 계양구)씨와 그의 두 딸 민정(12·초등 5학년)이와 민지(9·초등 2학년)는 이런 의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이 될 듯하다.

민정이와 민지는 둘 다 학교에서 소문난 ‘책벌레’다. 떡볶이 먹으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두 딸이 함께 쓰는 방과 거실에는 아이들 키보다 한 뼘쯤 큰 책꽂이가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데, 책꽂이마다 어린이책이 빼곡하다. 서고로 쓰는 방 한 칸에도 책들이 꽉 들어차 있다. 이 책들은 김씨네 집 재산목록 1호다.

책벌레들에게는 이 정도로도 부족했을까? 민정이와 민지는 방학 때는 물론이고 학기중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서관에 간다. 요즘에는 오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오후에 민정이는 가까운 공립 도서관으로, 민지는 동네 마을문고로 간다. 민정이가 입학한 해, 김씨가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학교 도서관은 아이들이 신발 벗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평상이 놓여 있다. 민정이와 민지는 평소에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 뒹굴거리며 책도 보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졸기도 하고 친구도 만난다. 이쯤 되면 ‘도서관이 곧 놀이터’라는 김씨와 두 딸의 말을 빈 말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민정이는 휴대폰 배경화면에도 학교 도서관 서가 사진을 올려놨다.

민정이와 민지가 이렇게 온종일 책에 푹 빠져 지낼 수 있는 것은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민정이가 5학년이 되면서 다니기 시작한 영어학원이 처음이자 유일한 사교육이다. 영어학원도 민정이가 “이제 학원 좀 다녀야겠다”고 스스로 원해서 등록했다. 물론 민지는 전혀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정이와 민지의 성적은 상위권이다. 혼자 교과서를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면 전과를 읽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 공부한다. 민정이와 민지 둘 다 학습지 한 번 시킨 적이 없지만, 책을 읽어주다 보니 6살 무렵에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

사실 민정이와 민지가 그동안 책과 함께해온 세월을 생각해 보면, 이런 ‘책사랑’이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김씨는 민정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줬다. 그렇다고 책으로 태교를 한다거나 뱃속에서부터 책과 친하게 해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씨는 그런 ‘극성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어른이 된 뒤에도 왠지 어린이책이 좋았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 이전부터 해왔던 취미생활을 계속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김씨는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못 읽었던 것이 한이 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여전히 민지는 물론 사춘기에 들어선 민정이에게까지 매일 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준다. 낮에는 아이들이 먼저 책을 읽어달라고 오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불러서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김씨는 “책을 읽어주다 보면 나도, 아이들도 마음이 풀린다”고 했다.

김씨는 집뿐만 아니라 학교와 동네에서도 ‘책 읽어주는 엄마’로 유명하다. 벌써 5년째 학교 아침 독서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책을 읽어주고 있다. 공립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에서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민정이와 민지 생일 잔치 때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손수 장만한 음식을 함께 먹고 책을 읽어준다. 집에 돌아갈 때는 책을 한 권씩 선물로 준다. 학교 어머니도서위원장이기도 한 김씨는 아이들에게 좀더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려고 다른 엄마들과 함께 학교에서 옛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5월5일’이라는 그림자극 동호회를 만들어, 동화 작가 현덕의 <고양이>를 그림자극으로 공연했다.

이런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민정이는 외할머니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다. 외할머니가 경기 김포 집에 계실 때는 전화로 옛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외할머니가 집에 오실 때는 옆에서 직접 그림책을 읽어준다.


“책 읽어주기는 ‘영혼의 스킨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부비는 거죠. 그러면서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고요. 저는 속상할 때 아이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하기도 해요.”

인천/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권장도서·독후감에 얽매이지 마세요”

김인자씨의 독서지도법

인천시교육청의 학부모 교육 강사이기도 한 김인자씨는 강의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매번 똑같다.

그는 무엇보다 “독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신 부모가 먼저 책을 즐기라고 말한다. 책을 읽어줄 때도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겠다거나 책과 친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의도를 갖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들이 금방 눈치채고 책과 하나되지 못한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10년 넘게 지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힘도 ‘즐거움’에서 나온다고 했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어서 마음이 두근거린단다. 요컨대 부모가 책을 즐겨 읽고, 즐겁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고를 때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눈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민정이와 민지는 도서관에 갈 때 항상 자기가 빌릴 책은 자기가 고른다. 엄마가 대신 빌려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런 점에서 부모가 권장도서목록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어른들 눈으로 고른 권장도서가 꼭 자기 아이들에게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끝으로 독후감을 강요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는 부모들에게 “입장을 바꿔,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감상문 써내라고 하면 볼 맛이 나겠느냐”고 말하곤 한다. 그는 꼭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읽은 책에다 느낌을 짧게 적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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