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에 열렸던 1차 집회 현장의 모습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교육청소년] 2007년, 대중문화를 바꾸기 시작한 팬클럽
바이러스는 연말기획으로 각계각층에서 올 한해 세상을 바꾸려고 나선 주역을 선정해 보도합니다. 그들은 바로 대중문화의 일방적인 수용자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한 ‘팬클럽’, 대선에서 선거법 규제 속에서도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려고 한 ‘네티즌’, 인권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수원지역 청소년’입니다. 이들이 각자의 현실에서 어떤 노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지 살펴봅시다. -편집자 주
독일에 아동심리학자인 레빈은 “청소년기란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중간적 위치에 처해 있는 주변인(또는 위계인)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정말 청소년은 주변인일까? 적어도 2007년 청소년들은 ‘주변인’이 아닌 주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오지 않을 시간을 ‘주체적’으로 살았다.
주변인에서 문화의 당당한 주체로 거듭난 팬클럽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낸 ‘팬클럽’은 더 이상 대중문화의 주변인이자 수용자, 스타에 맹목적인 ‘빠순이’가 아닌 ‘문화의 주체’임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22일, 서울 청담동에 자리잡은 SM엔터테인먼트사 앞이 또다시 시끄러웠다.
연예기획사 SM소속 댄스그룹 ‘슈퍼주니어’의 새로운 멤버 영입을 두고 회사와 팬들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팬들이 항의 집회를 벌인 것이다. 이 항의집회는 지난 11월 3일에 이은 두번째 공식 집회로 400여명이 참가해 시위를 벌였다. 이번 집회에서는 태안반도에 보낼 성금 1300원도 함께 걷어 어려움에 처해있는 분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을 보탰다. 성금을 1300원만 걷는 이유는 ‘슈퍼주니어=13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팬들은 전했다.
슈퍼주니어 팬클럽, 소중한 것 지키고자 거리로 나서다
이들의 행동은 맹목적으로 스타를 추종하는 기존 팬클럽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요구를 사회에 알려내고 바꿔내고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슈퍼주니어는 SM에서 키운 댄스그룹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새 맴버 영입 논란’은 팬들을 힘들게 했다. 슈퍼주니어가 언제든 새 멤버가 영입되고, 기존 멤버가 빠질 수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 아닌 13명의 정규그룹이길 원했던 팬들은 새 멤버 영입을 반대했다.
‘only13’을 원하는 팬들은 뭉쳤다. 기획사의 결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기획사의 결정을 바꾸려고 시도했다. 특히 11월 3일과 12월 22일 두 번의 집회에서 보인 팬들의 모습은 스타에 대해 맹목적으로 쫓기만 하는 팬클럽이라는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슈퍼주니어의 팬들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거리에 나섰다면, 또 다른 방향에서 목소리를 낸 팬클럽이 있다. 바로 동방신기 팬들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편협된 시각과 행동 등 부당한 대우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더이상 빠순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이들이 기성세대에 대항하여 펼쳤던 활동은 슈퍼주니어 팬들과는 달리 ‘온라인’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시작은 지난달 17일 서울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MKMF 뮤직페스티발’이었다. 이날 동방신기가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안 팬들은 행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날 MKMF에는 동방신기는 출연하지 않았고 많은 팬들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과정에서 경호업체는 무리한 질서 유지를 감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언어 폭력 뿐 아니라 신체적 폭력까지 당했다고 밝혔다.
동방신기 팬들은 참지 않았다. 주최의 사과를 받기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동방신기가 왜 그날 출연하지 않았는지(동방신기 팬들은 사전에 주최측으로부터 동방신기가 참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경호업체에서는 과도하게 질서유지를 했는지 문제제기에 나섰다.
특히 경호업체의 과도한 제지는 팬클럽의 많은 분노를 샀다. 그동안 팬클럽은 행사장에서 경호업체의 과도한 제지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팬클럽 사이에서는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경호업체에서 막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돈다. 이같은 설움이 MKMF 사건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빠순이’라고 무시받았던 팬클럽이, 인간으로 자존심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맹목적 스타 추종자에서 이시대의 당당한 주역으로
올 한해는 팬클럽의 위상을 ‘빠순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격상시켰다. ‘일방적인 수용을 넘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하려는’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 팬들의 활동은 지금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본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기성세대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행사장에서 팬들을 함부러 대하는 경호업체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고, 슈퍼주니어 팬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중심에 서 있는 수퍼주니어 추가 영입 반대 팬 연합대책위원회에서 활동중인 정민희(19세, 가명)씨는 “며칠전에 SM 관계자가 우리 대책위원회에 연락을 먼저 하는 등 기획사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며 “멤버 영입이 철회된다면, 우리만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팬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책위에 참여하면서 공부에 소홀하거나 ‘슈주 때문에 못했다’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더욱 열심히 했다”며 “아직 멤버영입이 철회가 되지 않아 표면적으로 바뀐 것은 없는데,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을 바꾸는 팬클럽. 어느 누가 그들을 ‘빠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저 어떤 가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바꿔나가며 이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팬클럽을 2008년에 주목해보자.
이보람 기자 lbr5224@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충남 태안을 돕기 위해 ‘슈퍼주니어 영입 반대 팬 대책위원회’에서 진행한 성금 모금 운동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되었던 청원 글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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