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토요일 학급자치 시간인데, 회장(여학생이다)이 와서 학급회의를 해야겠으니 시간을 달란다. 애들이 수업 시간에 너무 떠들어 모든 교과 선생님들에게 완전히 찍혔단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도 힌트는커녕 꾸지람만 듣는다는 것이다. 아이구 웬수들! 속으로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데, 그래도 학급회의를 하겠다는 발상이 갸륵해서 냉큼 시간을 떼 주었다.
그런데 막상 회의를 지켜보니 회의록도 없이 얼렁뚱땅에 속전속결이다. 회의 결론도 저희들 수준에 맞게 쉽고 경쾌했다. 떠드는 놈이 수업방해의 주범이다. 떠들다 걸리는 인간에겐 벌금 500원을 물린다.(논란이 다소 있었다.) 떠드는 아이들을 누가 지적할 것인가? 교과 선생님께 쪽지를 드려서 부탁한다. 자리를 바꿔 앉는 놈도 위험 인물이다. 이런 인간에게도 벌금 500원을 때린다. 혹, 인간이 뻔뻔해서 벌금을 안 내고 버틸 경우는? 낼 때까지 청소를 하게 한다. 징수한 벌금은 어디에다 쓸 것인가? 그건 복잡하므로 다음에 정한다. 땅땅!!
벌금에, 벌 청소라. 나는 잠시 고민스러웠다. 20년 담임을 하면서 벌 청소를 시켜본 적도, 벌금을 매겨본 적이 없다. 기꺼이 감당해야 할 신성한 노동을 어찌 벌과 바꿀 수 있으며, 또한 어린 나이에 돈과 잘못을 맞바꾸는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럴지라도 놈들이 난상토론 끝에 저러한 결론을 떡하니 내렸으니 어찌 한다? 담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결과를 엎었다가는 앞으로는 회의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회나 학급회의가 실종된 것도 사실은 아이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존중해 주지 않은 탓이 크다.) 그래, 일단 눈 딱 감고 아이들의 현재를 인정하자. 그래서, 우선 두 달만 해보자고,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는 말로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그 뒤 어찌 되었는가. 회장이 와서 전하는 말에 따른즉 ‘약발’이 당장 나타나서 회의 다음날부터 자리를 바꾸는 아이도, 떠드는 아이도 없다는 것이다. 가끔 걸려서 지적을 당하면 군말 않고 벌금도 제꺽제꺽 낸다고 했다. 돌연한 변화에 선생님들이 놀라는 것이야 당연하고. 허, 이 웬수들 좀 봐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따져 물었다.
“야, 녀석들아! 선생님이 그렇게 인간적으로 호소할 때는 들은 척도 않더니 500원 벌금 물린다니까 태도가 싹 달라져? 결국 담임 샘 말씀은 500원짜리도 못 된다는 거지?”
그랬더니, “그럼요. 500원이 두 번이면 피시방이 한 시간인데요”하며 벌쭉 웃는다. 이 천연덕스런 웬수들을 보노라니 나까지도 웃음이 스멀스멀 나오는데,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유치찬란한 수준이기는 하되,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스스로 존중하는 태도는 어쨌거나 싹수 있는 가능성 아니겠는가. 다듬고 정비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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