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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얘들아, ‘말하지 않은 사랑’도 알아주렴

등록 2007-05-06 16:23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함께 교사 발령을 받은 다른 학교 5학년 선생님께서 해준 이야기다.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자기 반 아이들이 손을 씻으면서 “공부도 못 가르치는 게 재수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자 화장실 특성상 안에서 볼일을 봐도 밖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반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음을 완전히 놓고 욕을 했던 것이다. 그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욕을 들으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랐지만, 별세계 이야기겠거니 했다. 나는 아직 순진한 3학년을 2년째 해서 그런 상황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올해, 교직 3년째 되던 해에 주위의 “힘들거야”라는 만류를 뒤로 하고 5학년에 지원했다. 초임 때 우리 반이었고, 성장이 늦었던 미현(가명)이 때문이었다. 반 아이들이 미현이에게 너무 잘해 주길래 나는 항상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천사에요”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렇게 항상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르다고 주장해 왔는데, 나도 오늘 크게 충격을 받았다.

사건은 내가 평소 우리 반 한 남학생을 줄곧 칭찬해온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남학생은 창의성이 뛰어나고 모든 것에 재능이 있어서 교사 입장에서는 천 명 중 한 명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아이다. 일부러 그 녀석에게 희망을 주려고 자주 발표시키고 “넌 천재다!”하면서 기를 살려줬더니, 다른 아이들은 그게 샘이 났던 것이다. 실상 자기한테 칭찬을 백 번 해도 다른 아이 칭찬 한 마디에 질투하는 게 아이들이란 것을 왜 몰랐을까?

그런 와중에 오늘 여학생 두 명이 2교시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나에게 혼이 났다. 수업 시간에 둘이 쪽지를 주고 받은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 여학생들 손바닥을 몇 대 때리고 야단을 친 뒤 운동장으로 내려 보냈다. 마침 운동회 총연습이라 밖에 나가서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들 야단치고 허겁지겁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갈아 신는데, 오늘따라 내가 소머즈가 된 것처럼 1층에서 두 여학생이 하는 이야기가 4층에 있는 내 귀에까지 아주 또렷이 들렸다. “우리 엄마가 말이야, 우리 선생님이 막 차별한다고 선생님 정말 싫대.” “우리 엄마도.”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잠시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학부모 총회 때 학부모님들 만나면 항상 내가 미현이 돌본다며 “힘드시죠?” 그렇게 다정히 말해주던 엄마들이었는데. 그 두 아이의 “싫대” 소리를 들으니 정말 좌절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내려가서 그 여학생들의 어깨를 잡고 “뭐라고 했어!” 하면서 흔들었다. 내가 평소에 아주 굳게 믿었던 아이들이었다. 크게 화를 내면서 운동장 뒤 켠에 벌을 세웠다. 마음이 뒤죽박죽이라 뭐라고 소리쳤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꼭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 사랑하는 거니?”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들었는지 아이들도 벌서면서 모두 울었다. 내 정말 짧은 교직생활 동안 그 누구하나 덜 이뻐하고, 더 이뻐한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한 번 해보려고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아이들이 너무 섭섭했다. 감정이 복받쳐서 아이들을 등지고 소리 없이 울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아이들 처음 만났을 때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지금 내 모습은 아이들을 차별하는 선생님, 화 난다고 소리치는 선생님, 억지로 마음을 구겨 넣기를 강요하는 선생님이었다. 오후에 아이들 부모님과 통화를 해서 확인해보니, 아까 영어 시간 문제로 혼난 친구들이 우니까 아이들이 기분이 울컥해서 엄마 핑계를 댄 것이었다. 반성문 쓰는 아이들을 웃으면서 달래서 다들 정말 죄송하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마음 달래는 것이 너무 힘든 하루였다. 그래도 나는 변명 같지만 크게 외치고 싶었다. 내가 언제 너희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 있냐고.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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