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숲 이야기 / 진달래꽃
진달래꽃이 가고 있어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등학교 시절 제가 가장 먼저 외운 시입니다.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시를 보면, 진달래꽃은 정말 우리 부모님들이 사시던 시골마을 뒷산 어디든 지천에 피고 지고 떨어져, 봄에 어딘가로 떠나는 이들은 이 슬픈 꽃잎을 밟고 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 시는 식물 생태적으로 매우 적절한 표현을 하고 있구나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진달래꽃이 가고 있습니다. 진분홍빛 꽃잎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파릇한 잎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진달래꽃이 핀 뒤 연이어 피어나 연달래라는 별명을 가진 연분홍빛 철쭉꽃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으니 ‘가고 있는’ 셈이지만, 이 강산에 지천이던 진달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옛 산엔 소나무 숲과 어울어진 진달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삶 속엔 소나무가 깊이 깊이 들어가 있고, 진달래도 보는 즐거움을 주는 것 말고도 삼짓날이면 아낙들은 참쌀 반죽에 진달래 고운 꽃잎 얹어 화전도 부쳐 먹고 아이들은 꽃술을 엮어 꽃싸움도 했다지요.
그런데 이 소나무 숲도, 진달래 무리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나무가 어울어진 아름답고도 애잔한 봄 풍경이 사라져 섭섭하기도 하지만,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숲을 잘 보전해 비옥해진 땅 위에서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크게 자라 올라 소나무를 밀어내고 있고, 숲이 우거지지 않아 볕이 들고 아주 많이 척박한 산성 토양이어서 다른 식물들은 살 수 없던 곳에 자리잡았던 진달래이니, 이 진달래가 가고 있는 것은 우리 강산이 그만큼 푸르고 비옥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꼭 지켜가야 하는 소나무 숲에도 문화가 있고 진달래꽃과 함께 어린 향수도 있지만, 자연의 흐름을 우리의 기호나 추억 때문에 거스르는 것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자연에게 가장 좋은 일은 자연에 맡기고, 우리가 좋은 것은 자연이 아닌 우리 곁에 만들어 두고 느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숲 속에서 가는 진달래꽃 대신, 우리 동네 공원에 색깔 야릇한 철쭉품종 대신 우리 진달래를 흐드러지게 심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국립수목원 연구원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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