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옛 고려궁터에 있는 외규장각.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고, 그와 관련된 많은 유적이 전해지고 있다.
테마별로 떠나는 체험학습 / 강화도 유적지를 찾아서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대 개화기까지 수많은 역사 유적이 남아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가장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은 강화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6만여기 가운데 절반 정도가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전북 고창 및 전남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강화도에는 고조선시대 유적인 참성단이 있다. 마니산에 자리잡고 있는 참성단은 기원전 51년에 단군 왕검이 봄과 가을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참성단의 기초는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쌓았고, 단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로 쌓았다. 또 마니산의 위치는 백두산 천지와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중간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전국체육대회 성화가 이곳에서 채화된다.
고려시대의 유적지로는 고려궁지와 강화성이 남아 있다. 고려 제23대 고종 때 중국에서 득세한 몽고군이 도성인 송도(지금의 개성)에 침범하자 그해 8월에 도성을 강화로 천도했다. 고종은 강화도에 성곽을 쌓고 송도를 모방해 궁궐과 사직을 짓게 했고, 이를 근거지로 삼아 몽고와의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끝내 몽고군에 의해 강화도가 점령되고, 24대 원종 때 수도를 다시 송도로 옮기게 된다. 강화도의 궁궐은 이후 모두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승평문만 남아 있다.
조선 임진왜란 무렵 조선 왕실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 위한 사고(史庫)가 강화도에 설치된다. 사고란 왕실의 실록을 보관하던 서고를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내사고 외에 충주, 상주, 전주 등 지방 세 곳에도 외사고를 설치해 운영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강화도에 마니산 사고를 설치해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이관해 보관한다. 그러나 마니산 사고도 병자호란과 화재로 피해를 보자, 전등사에 정족산 사고를 설치하고 문서들을 이관해 보관했다.
조선 인조 때는 옛 고려 궁터에 강화유수부를 설치했고, 국난 때 왕이 강화도로 피난하기 위한 행궁을 건립했다. 조선 17대 효종은 강화도에 성곽을 축조하고 군량을 비축했다. 또 19대 숙종은 바다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중앙 직할부대인 진무영을 강화도에 설치했다.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강화도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왕실을 지키는 배후 지역으로서의 기능을 한 셈이다.
정조 때는 왕실의 도서를 관리하기 위하여 강화유수부가 있는 곳에 외규장각을 설치하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한 해 궁궐 안에 설치해 역대 왕들의 친필과 서화, 유언 등 왕실의 문서를 관리하던 곳이었는데, 궁궐 밖인 강화도에도 외규장각을 설치해 왕실의 도서와 문서들을 보관했다.
조선 말 서양 열강들의 군함이 조선을 위협할 때 강화도는 한양 도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많은 전란을 겪게 된다. 병인양요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인 병인박해에 대한 보복으로 고종 3년에 프랑스군이 침략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강화행궁의 전각과 외규장각 등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서 많은 도서와 문화재를 약탈해간 사건이다. 신미양요는 미국이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강화도의 초지진과 광성진을 포격으로 초토화시키고 상륙해 강화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던 일본은 서해안 측량을 핑계로 군함을 강화도에 파견해 무단으로 영토를 침범하고 조선군의 포격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삼아 조선과 일본 간에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은 마침내 개국을 하게 된다. 글·사진 김정주/모든학교(schoolall.com) 체험학습연구소장 ▶관련 교과: 초등학교 <사회> 4-2 1. 문화재와 박물관, <사회> 5-2 3. 우리 겨레의 생활문화, <사회> 6-1 1.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립, <사회> 6-1 2. 근대 사회로 가는 길 ▶관련 사이트: 강화군청(ganghwa.incheon.kr), 고려시대 문화재(ssrr.new21.net/inchon/5_culture_source/4_culture_korea.htm), 전등사(jeondeungsa.org)
조선 말 서양 열강들의 군함이 조선을 위협할 때 강화도는 한양 도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많은 전란을 겪게 된다. 병인양요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인 병인박해에 대한 보복으로 고종 3년에 프랑스군이 침략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강화행궁의 전각과 외규장각 등을 파괴하고 외규장각에서 많은 도서와 문화재를 약탈해간 사건이다. 신미양요는 미국이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강화도의 초지진과 광성진을 포격으로 초토화시키고 상륙해 강화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던 일본은 서해안 측량을 핑계로 군함을 강화도에 파견해 무단으로 영토를 침범하고 조선군의 포격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삼아 조선과 일본 간에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은 마침내 개국을 하게 된다. 글·사진 김정주/모든학교(schoolall.com) 체험학습연구소장 ▶관련 교과: 초등학교 <사회> 4-2 1. 문화재와 박물관, <사회> 5-2 3. 우리 겨레의 생활문화, <사회> 6-1 1.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립, <사회> 6-1 2. 근대 사회로 가는 길 ▶관련 사이트: 강화군청(ganghwa.incheon.kr), 고려시대 문화재(ssrr.new21.net/inchon/5_culture_source/4_culture_korea.htm), 전등사(jeondeu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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