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희망이정표 ‘5대 불안’을 벗자 4부 교육 ① 사교육비 눈덩이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사교육비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13조6천억원과 견주면 3년 만에 무려 47% 는 셈이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시로 대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연말에는 범부처 차원의 ‘사교육대책추진단’까지 꾸렸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교육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의 뿌리에는 서열화된 대학체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 입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결국 학벌주의 해소와 관련된다. 최영란 이화여대 교육학과 강사는 “줄세우기식 대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제도적 접근이나 대책도 사교육 과열을 막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당장 이달에 자녀에게 들어갈 학원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해야 하는 서민·중산층들에게 이는 한가한 소리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가시적인 조처가 절실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과열을 벗어나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사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는 방법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작년 사교육비 20억…‘교육 주도권’ 내준지 오래
수업·평가방식 개선 구호보다 강력한 실행 필요
학습동아리등 활성화 교사-학생 소통길 넓혀야 사교육을 받을 필요성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공교육 내실화’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학교 시험이나 대학 입시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면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질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다. 채병갑 구로중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학원에서 미리 배워오고, 교사들은 기본개념 설명 등을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 고리를 끊으려면 교사들이 좀더 책임의식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평가방식에 대한 개선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지필시험이 80~90%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가 수행평가나 실기다. 김성천 안양 충훈고 교사는 “정형화된 교과서를 바탕으로 지필고사를 치는 방식은 사교육 업체가 따라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정답 고르는 요령, 출제 경향 분석만을 연구하는 사교육 기관이 학교보다 훨씬 앞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교사가 수업시간마다 발표 내용이나 수업 참여도, 퀴즈 결과, 수행평가 보고서 등을 기록해 놓고 나중에 이를 합산해 전체 성적으로 매기는 방식을 활용한다면, 내신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이 학원에 갈 이유가 줄어든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질 높은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학교 교육여건 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선진국에 견줘 매우 열악하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출액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평균 대비 초등학교는 75%, 중·고등학교는 92%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초등 29.1명, 중·고등 20.4명), 학급당 학생 수(초등 33.6명, 중·고등 35.5명)는 최하위다.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대표는 “공교육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사교육으로 빠져나가는 욕구를 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학습동아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큰 돈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이우중·고등학교의 경우 공부동아리가 50개를 넘는다. 이 학교 이수광 교감은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동아리별로 교실에 모여 두세 시간씩 토론식 공부를 진행한다”며 “학생들이 원하면 교사들이 언제든지 달려가 보충설명을 해주고 있어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거창고, 논산 대건고, 민족사관고 등에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공부동아리가 활성화돼 있다.
이런 사교육 필요성 억제 방안들은 기본적으로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공교육이 어떻게 변하든 사교육 수요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남보다 한발 앞서가기 위한 사교육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사교육의 질을 높여 투자 대비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종태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은 “정부와 시민단체, 학부모들이 함께 나서 사교육 콘텐츠 검증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한 수준 미달의 강사들을 거르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전직 고교 교사 박소영씨는 “고작 3~4일 교육을 받은 학습지 교사들이 대한민국 유아들의 첫 교육을 맡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나서 3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다만 지금의 방과후 학교는 교사들 대신 외부 강사들이 주로 참여하고, 프로그램 구성도 입시 과목 위주로 돼 있는 게 한계다. 이규철 안양 성문고 교사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특기·적성 위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고삐풀린 학원 수강료 일벌백계를”
허울뿐인 단속 탓 사교육비 연 16% 상승…온라인은 규제조차 안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분기 가구당 ‘교육비’ 지출액은 월 31만원으로 전체 가계 지출액(220만5천원)의 14%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학원 및 개인교습비’는 13만5200원으로 2005년 1분기의 11만6700원에 견줘 15.8%나 늘었다. 이 통계에는 6∼21살의 학령 인구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돼,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교육비가 한 해에 16% 가량 늘어나는 것은 치솟는 학원비 탓이 크다. 현재 학원비는 시·도교육청의 ‘수강료 조정위원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도록 돼 있다. 서울 강남교육청의 경우, 단과학원은 1회 45분 월 21회 강의에 10만7200원, 재수생들이 주로 다니는 종합학원은 월 36만8천원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따르는 학원은 거의 없다. 지난해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조사한 학원수강료 실태를 보면, 강남의 영어단과학원은 평균 20만6천원, 종합반은 49만8천원을 받았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들이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학원이 워낙 많아 일일이 손쓸 수 없다”며 “단속을 나가도 이미 허위 자료를 준비해 둬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지역 입시·보습 학원은 6천여곳, 개인 교습소는 9800여곳이다. 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수강료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교육청도 알고 있어 특별히 민원이 제기되지 않는 한 과도하게 단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교육청의 솜방망이 처분이다. 일선 교육청은 규정 위반 횟수에 따른 벌점을 합산해 누적된 점수에 따라 등록 말소 등 행정처분을 하는데, 이마저도 1년 이내의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학원들이 단속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다. 여종구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현실적으로 학원을 모두 단속하기는 힘든 만큼 일벌백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교육청들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태도다. 최근 성행하는 온라인 강의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오프라인 학원은 ‘학원법’이 적용돼 규제 대상이 되지만, 온라인 학원은 ‘평생교육법’이 적용돼 수강료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만든 뒤엔 많게는 수만명까지 이용하는 온라인 강좌의 비용이 교재비 포함 10만원을 넘어서면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교사 끌고 학생 밀고 경기 성남시 이우학교 고1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겨울방학 동안 열리는 영어특강 시간에 서로 토론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교사들이 마련한 특강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들을 수 있다. 교사들은 방학 동안 자발적으로 강의를 개설하는 한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학습동아리에도 참여해 도움을 준다. 성남/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작년 사교육비 20억…‘교육 주도권’ 내준지 오래
수업·평가방식 개선 구호보다 강력한 실행 필요
학습동아리등 활성화 교사-학생 소통길 넓혀야 사교육을 받을 필요성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공교육 내실화’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학교 시험이나 대학 입시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면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질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다. 채병갑 구로중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학원에서 미리 배워오고, 교사들은 기본개념 설명 등을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 고리를 끊으려면 교사들이 좀더 책임의식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평가방식에 대한 개선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지필시험이 80~90% 비중을 차지한다. 나머지가 수행평가나 실기다. 김성천 안양 충훈고 교사는 “정형화된 교과서를 바탕으로 지필고사를 치는 방식은 사교육 업체가 따라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정답 고르는 요령, 출제 경향 분석만을 연구하는 사교육 기관이 학교보다 훨씬 앞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교사가 수업시간마다 발표 내용이나 수업 참여도, 퀴즈 결과, 수행평가 보고서 등을 기록해 놓고 나중에 이를 합산해 전체 성적으로 매기는 방식을 활용한다면, 내신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이 학원에 갈 이유가 줄어든다.
도시근로자 가계지출 비율 / 서울지역 신규학원 설립현황
가구당 월평균 학원 및 개인교습비
“고삐풀린 학원 수강료 일벌백계를”
허울뿐인 단속 탓 사교육비 연 16% 상승…온라인은 규제조차 안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분기 가구당 ‘교육비’ 지출액은 월 31만원으로 전체 가계 지출액(220만5천원)의 14%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학원 및 개인교습비’는 13만5200원으로 2005년 1분기의 11만6700원에 견줘 15.8%나 늘었다. 이 통계에는 6∼21살의 학령 인구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돼,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교육비가 한 해에 16% 가량 늘어나는 것은 치솟는 학원비 탓이 크다. 현재 학원비는 시·도교육청의 ‘수강료 조정위원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도록 돼 있다. 서울 강남교육청의 경우, 단과학원은 1회 45분 월 21회 강의에 10만7200원, 재수생들이 주로 다니는 종합학원은 월 36만8천원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기준을 따르는 학원은 거의 없다. 지난해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이 조사한 학원수강료 실태를 보면, 강남의 영어단과학원은 평균 20만6천원, 종합반은 49만8천원을 받았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들이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학원이 워낙 많아 일일이 손쓸 수 없다”며 “단속을 나가도 이미 허위 자료를 준비해 둬 적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지역 입시·보습 학원은 6천여곳, 개인 교습소는 9800여곳이다. 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수강료 기준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교육청도 알고 있어 특별히 민원이 제기되지 않는 한 과도하게 단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교육청의 솜방망이 처분이다. 일선 교육청은 규정 위반 횟수에 따른 벌점을 합산해 누적된 점수에 따라 등록 말소 등 행정처분을 하는데, 이마저도 1년 이내의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학원들이 단속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다. 여종구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장은 “현실적으로 학원을 모두 단속하기는 힘든 만큼 일벌백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교육청들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태도다. 최근 성행하는 온라인 강의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오프라인 학원은 ‘학원법’이 적용돼 규제 대상이 되지만, 온라인 학원은 ‘평생교육법’이 적용돼 수강료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만든 뒤엔 많게는 수만명까지 이용하는 온라인 강좌의 비용이 교재비 포함 10만원을 넘어서면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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