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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미 관계정상화 없인 북핵 또 꼬인다

등록 2007-02-16 18:18수정 2007-02-16 21:28

북-미간 주요합의
북-미간 주요합의
‘5대 불안’을 벗자 5부 평화 ② 북핵문제 뿌리와 해법
“북핵 문제는 해법을 몰라서 풀지 못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의지의 부족이 핵심 문제다.”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이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 발생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이미 나와 있는 해법의 핵심은, ‘핵 폐기 대 북-미 관계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북-미, 북-일간 불신이 핵문제 본질
부시 ‘악의 축’ 발언뒤 벼랑끝 치달아
“핵폐기 전제 체제보장·경제 지원을”

불신과 대결의 역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아메리카합중국(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도 기술적으론 ‘전쟁 상태’다. 외교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 무역관계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껏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지역이 휴전선이라는 사실이 둘 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역사를 보여준다.

둘 사이에 핵문제가 불거진 건, 1990년대 들어서다.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붕괴로 ‘보급선’과 ‘배후지대’가 사라진 북한이 체제안보와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나 〈코리안 엔드게임〉의 셀리그 해리슨 등 나라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북-미, 북-일 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냉전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에서 일했던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은 핵문제의 본질을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군사적 압박과 북한의 생존전략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미 사이에 맺은 세 개의 중요한 외교문서(정전협정 제외)를 잠깐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1994년 10월 제네바기본합의,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 2005년 6자 회담 9·19공동성명이 그것이다. 세 문서는 차례대로 1차 북핵 위기, 대포동1 발사 및 이른바 ‘금창리 지하핵시설’ 논란, 2차 북핵 위기로 불거진 북-미간 불신과 대결을 풀려는 외교 노력의 산물이다. 조금씩 강조점이 다르지만, 결국 ‘핵’과 ‘관계 정상화’가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상호위협 감소 접근법=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원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첫째가 억지력 확보, 곧 안보다. 북한이 누구를 억지한다는 것인가? 그건 바로 미국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북한한테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북한은 우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99년 방북 직후 〈피비에스〉(PBS)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다. 이런 인식은 ‘페리 프로세스’ 및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 ‘북-미 공동코뮈니케’로 현실화했다. 당시 북-미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및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 예방,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예방을 통해,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및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당시 한-미간 외교협상에서 핵심 구실을 한 임동원 이사장은 ‘김대중 프로세스’라고도 불린 ‘페리 프로세스’의 핵심은 ‘상호위협 감소’(mutually reducing threat)라고 지적했다.

핵문제에 집중하라=그러나 2001년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상호 위협 감소’라는 호혜적 인식은,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일방주의적 인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미국은 실체가 모호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제기하며 ‘현존하는 위험’인 플루토늄 프로그램 동결 합의를 무력화했고, 탈북자 등 인권문제, 위폐·마약 제조·유통 등 불법 혐의 등을 전방위로 제기하며, 북한의 ‘체제변화(또는 정권교체)’를 추구했다. 몰리던 북한은 핵실험 감행이라는 벼랑끝 전술로 대응했다.


지금 북-미는 5차 6자 회담 3단계 회의에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처’에 전격 합의해, ‘잃어버린 6년’을 되돌리려는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일지 장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즈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나라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은 ‘핵문제에 집중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지난해 11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만났을 때 ‘외교의 부재’를 힐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북핵 문제는 체제변화와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핵 폐기를 전제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해 주고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북한 같이 힘 없고 약한 나라를 상대로 주변 나라들이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그야말로 외교의 공백이다.”

짐 리치 전 미 하원 아태소위 위원장의 지적처럼, 북-미 관계도 미국-베트남 관계처럼 달라질 수 있을까? 어쩌면 지난달 베를린 협상으로 시작한 북-미간 외교 노력이 이런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b>김 위원장 생일 경축보고대회</b>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65회 생일을 하루 앞둔 15일 평양에서 2·16(김정일 위원장 생일)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열렸다. 대형 조선노동당 깃발 조형물 앞에 마련된 주석단의 북한 당정 간부들이 보고를 듣고 있다. 평양은 6자 회담 초기조처 타결에 고무된 듯 대규모 경축행사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
김 위원장 생일 경축보고대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65회 생일을 하루 앞둔 15일 평양에서 2·16(김정일 위원장 생일)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열렸다. 대형 조선노동당 깃발 조형물 앞에 마련된 주석단의 북한 당정 간부들이 보고를 듣고 있다. 평양은 6자 회담 초기조처 타결에 고무된 듯 대규모 경축행사 사진을 공개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

“북-미 정상회담 통해 신뢰구축 꾀해야”

북핵 궁극적 문제 해소 차관보급 6자회담 한계
“정상간 정치적 합의 필요”…동시행동 원칙 병행

9·19공동성명은 △북핵 폐기 등 한반도 비핵화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 △에너지·교역·투자 분야의 경제협력 △한반도평화체제 협상 및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 방안 및 수단 모색 등을 명시하고 있다. 또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상호 조율된 조처’를 취하자는 이행 기준도 담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의도가 어떻든, 나라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이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줄기차게 제기해온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 원칙에 충실하다.

그러나 2005년 9월 공동성명 채택 이후 1년 반 남짓한 기간 북-미는 금융제재, 대포동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유엔 안보리 제재를 둘러싸고 충돌을 거듭해왔다. 결국 ‘불신’이 문제인데, 실은 이를 눅일 방법론의 대강은 이미 나와 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의 체제불안과 위협 인식, 경제적 낙후가 핵문제의 근원”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하려는 현실주의로 돌아오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북핵 실험 뒤 북-미관계’라는 글에서 “하향식 접근과 동시행동 원칙 을 둘러싼 북-미간 거리 좁히기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좀 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기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북-미 수교라고 할 때, 북한의 독특한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고려할 때, 이제까지 별 성과 없이 추진돼왔던 통상적 ‘상향 접근’보다 ‘하향 접근’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은 “6자회담으로 실무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북-미)신뢰 구축 및 문제의 궁극적 해소엔 역부족”이라며 ‘차관보급 6자회담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북-미) 관계정상화의 전망이 서지 않는 한 북한은 핵을 카드로 쓰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미 또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높은 수준의 정치적 합의로 한반도에선 평화체제, 북-미 사이엔 관계정상화를 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3일 채택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처’ 합의문은 이런 문제의식과 상당 부분 만난다. 북한과 다른 5개국이 해야 할 일들을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병렬적’으로 취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의 핵심 핵시설에 대한 폐쇄·봉인·검증 조처가 취해지는 대로 6자 (외무)장관급 회담도 열기로 했다. 이는 정상급 대화는 아니지만, 6자 회담 틀에 각국 정상의 리더십을 불어넣어 정치적 신뢰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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