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려 돼지가 된 마르코는 돼지의 모습으로 세상이 얼마나 인간적 또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관조한다. 그에게 비행은 인간적일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미야자키 하야오 <붉은 돼지>
‘대중문화’라는 말에는 묘하게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언어 사용의 관습상 ‘문화’라는 말의 가치에 견줘 ‘대중’이란 말은 한 세기 이상 폄하돼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서로 반대말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의 반대말이 아니다. 고급문화의 반대는 저급문화이며, 대중문화의 반대는 소수문화이거나 특수계층문화다. 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화의 질이며, 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화의 향유자이기 때문이다. 질적인 가치를 높이면 고급화하는 것이며, 향유자를 넓히면 대중화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대중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사람들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즐기며 또한 창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사람들의 문화’ 가운데서도 애니메이션 작품은 예술의 여러 장르와 연계돼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 만화, 동화와 밀접하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 작품은 형식 면에서든 내용 면에서든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비상과 변신은 플롯의 쌍두마차
살육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마르코
돼지로서 비인간적인 세상을 관조
일본 ‘아니매’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삶에 대한 ‘물음표’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 물음표들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은 인문학 텍스트로서도 소중하다.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1992년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완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극장 상영되었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 풀어가기 장치’들을 활용한다. 비상과 변신이 그것이다. 중력을 어기고 ‘난다는 것’과 정상의 모습에서 다른 것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야기에 출력을 주는 쌍발 엔진과 같다. 마르코 파고트 중위는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공중전에서 맹활약한 바 있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과 동료의 죽음,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에 충격을 받고 돼지로 변한다. 가히 ‘비행정의 시대’라고 할만한 1920년대 말의 아드리아해는 하늘의 해적 또는 ‘공적(空賊)’들이 횡행하는 곳이다. 마르코는 그들을 표적으로 삼는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으로 살아간다. 공중전에서 도저히 그를 당할 수 없는 공적들은, 그와 붉게 칠한 그의 비행정을 포르코 로쏘(이탈리아어로 ‘붉은 돼지’라는 뜻)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붉은 돼지는 ‘하늘의 협객’인 것이다. 그런데 포르코로 변신한 마르코의 마법은 풀릴 것인가? 그를 연모하는 아드리아노 호텔 여사장 지나도 “어떡하면 당신의 마법을 풀 수 있을까요?”라며 고뇌한다. 하지만 마르코에게는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지탱해 주는 것이다. 살육의 전쟁에서 스타 파일럿이었으며 동료의 안위보다 공중전에 더 몰두했던 자신의 삶은 비인간적이었다. 남들이 모두 더럽고 흉측하게 여기는 돼지로 변한 그는 이제 현상금 벌이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번듯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온갖 비인간적인 짓들을 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포르코에게는 이 세상이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이다. 풀려야 할 마법은 바로 그 마법이다. 그 마법은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그는 돼지의 모습으로 오히려 이 세상이 얼마나 인간적 또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포르코의 비행정을 수리해준 17세 소녀 정비사 피오는 마르코 중위가 세계대전 당시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추락한 적군 조종사를 구해주었다는 전설적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 받았는지 모른다고 그에게 고백한다. 이 말에 포르코는 “네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인간이 다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한다. 붉은 돼지를 상대하기 위해 ‘공적 연합’은 미국인 조종사 커티스를 고용한다. 포르코와 커티스는 현상금을 걸고 공중전으로 결투한다. 공중전에서는 누가 상대방의 ‘꼬리’를 잡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다. 커티스는 포르코 로쏘의 꼬리를 잡을 때마다 기관총을 난사하지만, 포르코는 커티스의 꼬리 뒤를 집요하게 쫓아도 쏘지 않는다.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찾는다. 지상에서 손에 땀을 쥐고 공중전을 추적하던 공적의 두목도 이를 알아차린다. “알았다. 포르코 저 녀석은 끝까지 안 쏠 작정이야. 지금 쏘면 미국 놈이 총알에 맞을 수도 있거든. 비행정 엔진에만 몇 방 갈기고 끝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저 돼지 녀석 대단해!” 피오는 마르코의 전담 정비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들어왔던 전설적 파일럿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멋진 파일럿으로서 마르코를 흠모해왔다. 하지만 피오가 흉측한 포르코에게 결정적으로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그것도 결투의 상대인)의 목숨을 보존하려는 바운티 헌터의 이 처절한 인간미…. 그것이 소녀의 가슴에 꽂히고 만 것이다. 혹자는 포르코가 너무 인간적인 것을 바란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립적인 의미의 ‘인간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은 항상 저 높은 곳을 향한다. 인간은 동물의 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코에게 비상의 의미는 각별하다. 난다는 것이 자유를 의미해서만은 아니다. 날면서 자연을 관조할 때 자연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니다. 추악한 모습의 자신을 사랑한 두 여인을 서로 친구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낭만이 가능해서만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삶은, 업보를 지고 돼지로 변한 자신에게는 저 높은 곳을 향할 수 있는 푸른 창공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붉은 돼지에게 비행의 의미는 인간적일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이다. 그래서 포르코, 아니 마르코는 말한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영산대 교수
살육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마르코
돼지로서 비인간적인 세상을 관조
일본 ‘아니매’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삶에 대한 ‘물음표’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 물음표들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은 인문학 텍스트로서도 소중하다.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감독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1992년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완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극장 상영되었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 풀어가기 장치’들을 활용한다. 비상과 변신이 그것이다. 중력을 어기고 ‘난다는 것’과 정상의 모습에서 다른 것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야기에 출력을 주는 쌍발 엔진과 같다. 마르코 파고트 중위는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공중전에서 맹활약한 바 있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과 동료의 죽음, 그리고 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에 충격을 받고 돼지로 변한다. 가히 ‘비행정의 시대’라고 할만한 1920년대 말의 아드리아해는 하늘의 해적 또는 ‘공적(空賊)’들이 횡행하는 곳이다. 마르코는 그들을 표적으로 삼는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으로 살아간다. 공중전에서 도저히 그를 당할 수 없는 공적들은, 그와 붉게 칠한 그의 비행정을 포르코 로쏘(이탈리아어로 ‘붉은 돼지’라는 뜻)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붉은 돼지는 ‘하늘의 협객’인 것이다. 그런데 포르코로 변신한 마르코의 마법은 풀릴 것인가? 그를 연모하는 아드리아노 호텔 여사장 지나도 “어떡하면 당신의 마법을 풀 수 있을까요?”라며 고뇌한다. 하지만 마르코에게는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지탱해 주는 것이다. 살육의 전쟁에서 스타 파일럿이었으며 동료의 안위보다 공중전에 더 몰두했던 자신의 삶은 비인간적이었다. 남들이 모두 더럽고 흉측하게 여기는 돼지로 변한 그는 이제 현상금 벌이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번듯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온갖 비인간적인 짓들을 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포르코에게는 이 세상이 마법에 걸려 있는 것이다. 풀려야 할 마법은 바로 그 마법이다. 그 마법은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그는 돼지의 모습으로 오히려 이 세상이 얼마나 인간적 또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 관조하고 있는 것이다. 포르코의 비행정을 수리해준 17세 소녀 정비사 피오는 마르코 중위가 세계대전 당시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추락한 적군 조종사를 구해주었다는 전설적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 받았는지 모른다고 그에게 고백한다. 이 말에 포르코는 “네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인간이 다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한다. 붉은 돼지를 상대하기 위해 ‘공적 연합’은 미국인 조종사 커티스를 고용한다. 포르코와 커티스는 현상금을 걸고 공중전으로 결투한다. 공중전에서는 누가 상대방의 ‘꼬리’를 잡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다. 커티스는 포르코 로쏘의 꼬리를 잡을 때마다 기관총을 난사하지만, 포르코는 커티스의 꼬리 뒤를 집요하게 쫓아도 쏘지 않는다.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다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찾는다. 지상에서 손에 땀을 쥐고 공중전을 추적하던 공적의 두목도 이를 알아차린다. “알았다. 포르코 저 녀석은 끝까지 안 쏠 작정이야. 지금 쏘면 미국 놈이 총알에 맞을 수도 있거든. 비행정 엔진에만 몇 방 갈기고 끝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저 돼지 녀석 대단해!” 피오는 마르코의 전담 정비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들어왔던 전설적 파일럿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멋진 파일럿으로서 마르코를 흠모해왔다. 하지만 피오가 흉측한 포르코에게 결정적으로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그것도 결투의 상대인)의 목숨을 보존하려는 바운티 헌터의 이 처절한 인간미…. 그것이 소녀의 가슴에 꽂히고 만 것이다. 혹자는 포르코가 너무 인간적인 것을 바란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립적인 의미의 ‘인간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것은 항상 저 높은 곳을 향한다. 인간은 동물의 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